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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대통령령으로 검수완박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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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법무부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9월 시행에 따라 없어지는 검찰의 공직자·선거·방위사업범죄 수사권의 상당 부분을 되살리기로 했다.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이하 수사개시 규정) 개정안을 11일 입법 예고하면서다. 검수완박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입법을 시행령으로 무력화하는 ‘시행령 쿠데타’이자 국회 입법 취지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법문을 해석한 ‘법 기술자’들의 꼼수”(이수진 원내대변인)라고 반발했다.

법무부의 방침은 개정 검찰청법 4조가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로 제한한 ‘부패범죄, 경제범죄 등’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부패·경제범죄에 공직자·선거·방위사업 등 세부 범죄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국회가 상위법 개정으로 축소한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를 하위 대통령령 개정(행정입법)을 통해 일부 복원한 것이어서 법적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동훈 “법체계 맞게 하위법령 정비” 야당 “법기술자 꼼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달 29일까지 입법예고한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달 29일까지 입법예고한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수사개시 규정 개정안을 직접 발표하며 “법무부가 청구한 권한쟁의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개정법 시행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강력히 반발했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9월부터 검찰개혁 법안이 시행되니 지금 진행 중인 수사를 어떻게 할 건지 검찰이 고민하다가 수사를 계속 진행할 우회적인 방법으로 ‘꼼수’를 부린 것 같다. 국회와의 전면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 쿠데타를 당장 멈추지 않는다면 국회는 헌법정신 수호를 위해 입법으로 불법행위를 중단케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협약 근거로 부패범죄 범위 확 늘려

법사위 소속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한 장관을 향해 “이런 시도는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폭거”라며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회법상 절차와 가능한 모든 사법적 조치에 나서겠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당초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중요 범죄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검수완박 드라이브 끝에 6대 범죄 중 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범죄를 빼고 부패·경제범죄 등 2대 범죄만 남기는 방향으로 지난 4월 30일 검찰청법을 개정했다. 이에 법무부는 공직자·선거·방위사업범죄 중 상당수를 부패·경제범죄에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 축소를 최소화하고, 당초 수사개시 규정에 없던 범죄도 집어넣었다.

부패범죄의 경우 부패재산몰수법·부패방지권익위법이 정의하고 있는 부패범죄·부패행위 개념을 차용해 검찰청법 개정 과정에서 삭제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허위공문서작성 등 공직자 범죄, 금권선거를 금지한 공직선거법 위반 등 선거범죄를 상당수 포함했다. 법무부는 이 같은 범죄가 유엔부패방지협약이 부패방지 대상으로 규율한 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 밖에 기존 경제범죄로 분류됐던 자금세탁 관련 범죄를 부패범죄로 재조정하고, 의료법·약사법·병역법 등이 규정한 불법 금품수수 관련 부패범죄, 보조금관리법·사립학교법 등이 규정한 보조금·학교회계 관련 부패범죄와 범죄수익·자금세탁 관련 부패범죄를 추가했다.

경제범죄에는 형법·상법상 재산범죄는 물론 조세·금융·금융거래·공정거래·기술자원보호·지식재산권·개인정보·정보통신·부동산·건설·보건·마약·사행행위 관련 경제범죄 등을 폭넓게 규정했다. 기존 방위사업 범죄로 분류되는 방산보호기본법 등도 경제범죄로 분류했다.

법무부는 또 개정 검찰청법상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에 관해 “법률에 직접 열거된 부패·경제범죄 이외에도 중요 범죄 유형을 시행령에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사법질서 저해 범죄, 검사에게 고발·수사의뢰하도록 한 범죄를 수사개시 규정에 새로 명시했다.

5·18진상규명법, 국회증언감정법,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개별 법률에서 국가기관이 검사에게 고발하거나 수사 의뢰하도록 규정한 범죄를 추가한 것에 대해선 “검사를 고발 대상 기관으로 한정한 개별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검사로서는 수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부연했다.

법 개정 취지를 넘어선 지나친 확장이란 지적에 한 장관은 “시행령 개정은 법률의 집행을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하겠다는 의지”라며 “법문언 해석을 넘어서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이 위임한 범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상위법의 위임 범위 내에서 법체계에 맞게 하위 법령을 정비하는 것에 불과하고 시행령으로 법률에 어긋나는 새로운 내용을 창출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국회와 전면전 피할 수 없을 것”

법률상 해석이 모호했던 경찰 송치사건의 ‘직접 관련성’ 규정도 정비했다. 형사소송법에 신설된 별건 수사금지 조항(198조 4항)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경찰이 송치한 사건과 범인·범죄사실·증거 중 어느 하나가 같다면 검사가 직접 이어서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편 법무부는 기존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시행규칙’은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시행규칙은 4급 이상 공무원, 혐의액 5000만원 이상일 때만 검사가 관련 중요 범죄를 수사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법무부는 “수사의 속성상 적은 액수에서 큰 액수 수사로, 하위 직급 부패범죄에서 고위급 비리 수사로 발전되는 것”이라며 “현재의 신분·금액 제한은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의 결과로 어떠한 공익이나 국민의 이익이 없다”고 폐지 배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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