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싶어서 살아요?" 반지하 사람들은 분통 터뜨렸다

중앙일보

입력 2022.08.11 19:41

업데이트 2022.08.11 21:14

11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사동 저지대 침수 주택가에서 육군 수방사 35특임대 대원들이 피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11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사동 저지대 침수 주택가에서 육군 수방사 35특임대 대원들이 피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지금 우리가 반지하에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안대요?”


11일 오후 침수 피해를 본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앞에서 젖은 집기를 씻던 50대 윤모씨는 전날 서울시의 ‘반지하 가구 안전대책’에 분통을 터뜨렸다.

▶지하·반지하를 주거 목적으로 짓지 못하도록 법을 바꾸고▶10~20년의 유예기간을 준 뒤 기존 반지하 주택을 없애도록 하며▶상습 침수 지역 지하·반지하 주택 거주자에겐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지원하거나 주거 바우처를 준다는 게 서울시 대책의 골자다.

그러나 침수 지역 반지하 세입자와 집주인들 서울시 대책에 물음표를 달고 있다. 윤씨는 “공공임대주택 입주가 쉬운 것도 아니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나마 살만한 반지하를 떠나라면 어떡하라는 거냐”고 말했다. 가사도우미로 월 200만원 안팎을 번다는 윤씨의 물에 잠긴 집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 짜리다. 신림동의 60대 주민 A씨는 “월세 20만~40만원에 방 두 칸을 구할 수 있는 동네는 사실상 서울에 여기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림동 반지하 주택 건물주 60대 권모씨는 “반지하에 어쩔 수 없이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쉽게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집주인 입장에서도 용적률을 1층 더 올려주지 않는 이상 반지하에 세를 안 받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일용직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인 경우가 많은 세입자들은 일자리가 몰려 있는 강남 등 도심과 멀어질수록 통근 비용이 치솟는다는 점도 도심과 가까운 반지하를 떠나기 힘든 이유로 작용한다. 이날 신림동 일대에는 물이 들어찬 집을 그대로 두고 일터로 나간 이들이 적잖았다. 빈집을 가리킨 한 이웃 주민은 “무릎까지 올라온 흙탕물을 그냥 두고 옆집이 오늘도 출근했다. 복구보다 먹고 사는 게 더 급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고 말했다.

부족한 공공임대… 

1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 반지하 주택 수해복구 현장. 채혜선 기자

11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대 반지하 주택 수해복구 현장. 채혜선 기자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전국 지하·반지하 주택은 32만7320가구이다. 서울에만 이중 절반이 넘는 20만849가구(61.4%)가 몰려 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엔 관악구가 2만여 가구(12%)로 제일 많다.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낸 ‘지하주거 현황분석 및 주거 지원 정책과제’에 따르면 수도권 저층 주거지에 지하·반지하 집을 빌려 사는 가구의 평균 소득은 182만원이다. 아파트 임차 가구 평균소득 351만원의 절반이 안 되는 수준이다. 또한 저소득층·비정규직 비율은 각각 74.7%, 52.9%에 이른다.

서울시가 이들을 반지하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제시한 대안의 핵심은 공공임대주택 입주 지원이다. 현재 서울 시내 공공임대주택은 24만호 수준이다. 지난해 서울에서 주거 상향 사업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 가구는 1669가구에 불과한데 이 중 반지하 가구는 247가구(14.8%)에 그쳤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도심에서 저렴하게 직주근접하기 위한 거처로 반지하가 만들어졌는데 다짜고짜 없앨 경우 거주민들이 더 열악한 곳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2010~2015년 재개발을 통해 반지하를 없앴더니 고시원의 거주자가 늘어났다”며 “현실적 이주 대책을 설계하는 게 정책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는 상습 수해지역이던 중랑구 중화동 일대를 2009년부터 재개발해 반지하 가구를 대폭 줄였지만, 이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실패했다. 중화동에서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60대 김모씨는 “예전에 살던 지인 중에 경기도 안양 등지의 셋집으로 옮기거나 아예 지방으로 낙향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70대 여성 주민도 “대부분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한 것으로 안다”며 “임대주택 얻어 갔다는 사람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작은 평수도 한계, LH 등은 적자 딜레마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자원순환공원에 장지동 화훼마을 수해 지역에서 수거한 폐기물이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자원순환공원에 장지동 화훼마을 수해 지역에서 수거한 폐기물이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홈페이지에 입주 공고가 올라온 ‘서울송파도시형생활주택’(10년 공공임대주택)은 약 22.87㎡(6.9평)에 보증금 5500만원 월 임대료 35만원 정도다. 무주택 가구 구성원이 주택건설지역에 살고 있어야 한다는 게 자격 조건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공급되는 임대주택 중엔 가족 단위가 살기엔 너무 작은 평수가 많다”며 “반지하에 사는 가족들의 선택지가 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장진범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수료)는 “어렵게 얻은 공공임대주택이 아주 먼 지역이라면 수년 내에 다시 살던 반지하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공공임대가 해당 지역에서 공급이 되는지 그리고 충분히 저렴한지 이 두 가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LH 등의 누적 적자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LH의 2020년 부채 규모는 129조7450억원으로, 공공기관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다. 공공임대주택 한 채를 지을 때마다 약 1억5000만원의 부채가 생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는 “정부가 국공유지에 자체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짓지 않고 LH 등에 달성 목표치만 정해 던지니 결국 분양장사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책은 방향성만 제시한 것일 뿐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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