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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졸속으로 만든 '대장동 방지법', 시행 두달도 안돼 손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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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혜 의혹으로 지난 대선 때 크게 이슈가 됐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특혜 의혹으로 지난 대선 때 크게 이슈가 됐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과 같이 민간과 공공이 함께하는 도시개발사업에서 민간 사업자의 과도한 이익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일명 '대장동 방지법'이 논란 속에 재개정될 전망이다.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사업자로 지정된 민간 사업자들도 공모 절차를 새로 밟아야 한다는 조항이 문제가 됐다. 비리와 특혜 의혹에 얼룩진 대장동 사태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에 밀려 만든 법안을 시행 두 달 만에 손 보게 되는 것이다.

11일 국회 및 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해 12월 당론으로 채택해 통과시킨 도시개발법 개정안의 재개정 법안을 준비 중이다. 대표 발의자로 나서는 김민철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20여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법안 발의에 참여할 예정"이라며 "문제가 드러난 만큼 국민의힘 의원들도 발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대화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재개정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이 대장동 범죄를 가리기 위해 논의 과정 없이 당론으로 통과시킨 졸속 법안으로 정상적인 사업까지 발목 잡힌 상황"이라며 "법안 재개정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22일부터 시행된 도시개발법 개정안은 ▶민간의 개발이익 환수 강화 ▶민관 합동 도시개발사업 전반의 공공성 강화 ▶도시개발사업 관리·감독 및 지원 강화 등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은 민간의 개발이윤율을 총사업비의 10% 이내로 낮추도록 했고, 민관 합동 도시개발사업의 절차 및 방법도 세부적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부칙의 문구가 문제가 됐다. 법 적용 기준을 '신규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정하면서다. 이 부칙에 따르면 사업 공모 절차가 마무리되고 관할 지방자치단체 의회의 승인을 거쳐 PFV(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가 설립됐지만, 아직 광역단체 등 지정권자로부터 도시개발구역 지정을 받지 못한 사업의 경우에도 개정법에서 새로 정한 사업계획 수립, 사업자 공모 등 초기 단계 공모 절차를 다시 처음부터 밟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해 말 대장동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민단체들이 '대장동 방지법의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말 대장동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민단체들이 '대장동 방지법의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토교통부는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고 시행까지 6개월의 유예 기간이 있었다"며 "아직 도시개발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들은 지자체 등과 민간사업자가 사업을 추진했더라도 경기도 등 지정권자가 인정한 사업자로서 법적 지위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된 대로 조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민관합동 개발사업의 경우 통상적으로 지자체에서 사업성이 있는지를 검토하고 타당성 조사를 진행한 뒤 공모를 통해 우선협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후 지방의회 승인을 거쳐 지자체 산하 공사 등이 출자하는 방식이며, 공동 출자 법인이 설립된 이후 인허가 절차를 밟는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민간 사업자들은 서둘러 도시개발구역 지정 절차를 준비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도시개발구역 지정까지는 법인 설립 후 최소 2~3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개발구역으로 지정되려면 교통·환경·교육·경관·도시계획위원회 등 관련 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 도시개발법 관련 전문 변호사는 "결국 대장동 방지법은 지자체의 정상적 행위를 사후적으로 무효화하겠다는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사업자 선정 절차가 마무리된 민관합동개발 사업지 중 개정 도시개발법이 시행된 6월 22일까지 개발구역 지정 절차를 마치지 못한 곳은 수도권에만 10여곳에 달한다. 모두 공모를 통해 민간 사업자를 선정하고 이후 행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던 가운데 대장동 방지법이 시행되면서 사업이 좌초 위기에 몰린 것이다.

특히 경기 오산시 '오산운암뜰 AI시티', 김포시 '고촌복합도시' 등 3개 사업지는 지자체와 사업자가 공동 출자한 PFV 설립도 마무리된 상태다. '고촌복합도시'사업처럼 이미 40억원 넘는 사업비를 투입한 곳도 있다. 사업이 지연되면서 개발을 통한 주택 공급도 기약 없이 지연된 점도 문제였다. 사업자 선정이 마무리된 민관합동 사업지 가운데 주택 공급 규모가 정해진 8곳의 물량만 더해도 2만6520가구에 달한다.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개발이익환수법 안건 상정을 놓고 여야간 언쟁이 벌어지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개발이익환수법 안건 상정을 놓고 여야간 언쟁이 벌어지고 있다. 뉴스1

공모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하는 일부 민간사업자는 강하게 반발하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민관합동사업을 추진한 지자체도 난감한 상황이다. 이미 공동 출자 법인을 만들고 예산을 일부 투입한 곳도 있는 데다, 사업자를 다시 지정할 경우 소송전에 휘말릴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재개정 법안을 준비 중인 김민철 의원실 관계자도 "기존 사업자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어 구제해줄 수 있는 방안을 법적으로 검토 중인 단계"라며 "대선과 지방선거 등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 사업자들이 도시개발지역 지정을 받기까지 시간이 촉박했을 것이란 점도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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