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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지변 탓이라고? 강남 물난리는 '백조' 아닌 '코뿔소'였다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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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내린 집중호우로 통행이 전면 통제됐던 지난 10일 강변북로 마포대교~동작대교 구간 모습. 문희철 기자

서울에 내린 집중호우로 통행이 전면 통제됐던 지난 10일 강변북로 마포대교~동작대교 구간 모습. 문희철 기자

서울 지역 빗줄기가 가늘어지면서 11일 오전 7시를 기점으로 호우 특보가 모두 해제됐다. 서울시 중대재해·안전관리 업무 관계자의 대응과 자원봉사자의 손길에 수해 상처가 차근차근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이번 폭우를 천재지변으로 치부하는 듯한 서울시의 태도였다. 비 피해가 확산하자 서울시 관계자는 “150년에 한 번 정도 올 만한 천재지변 성격의 막대한 양의 비가 불과 수 시간 만에 쏟아지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8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대 방향 도로가 침수돼 있다. 뉴스1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8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대 방향 도로가 침수돼 있다. 뉴스1

물론 전문가들도 기상 관측 이래 최대 기록을 경신한 이번 폭우가 천재지변에 가깝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었던 치명적인 사건(검은 백조·black swan)이라기보다는, 위험성이 익히 알려졌지만 위험신호를 무시하다가 맞닥뜨린 거대한 위기(회색 코뿔소·gray rhino)라고 비유한다.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목초지 형질을 아스팔트로 변경하면 비가 내릴 때 배수되는 양(유출계수)이 3배 증가하는데, 형질 변경은 자연이 아닌 사람이 결정한다”며 “물론 비가 많이 왔지만, 그렇다고 이번 사태가 전적으로 자연재해라는 주장은 공학적으로 볼 때 사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강남역 등 그간 고질적인 침수 지역에서 또다시 피해가 극심했다는 점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구릉지 형태인 강남 지역은 폭우가 내리면 지형적으로 역삼·신사·양재 등 주변 지역에 내린 빗물까지 유입되기 때문에 침수 피해를 예견할 수 있다”며 “제대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거나, 문제를 간과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고질적 침수지역, 또 잠긴 건 人災

물난리 막은 서울 양천구 신월동 빗물저류배수시설. 그래픽 김현서 기자

물난리 막은 서울 양천구 신월동 빗물저류배수시설. 그래픽 김현서 기자

만시지탄이지만 서울시는 대심도(大深度) 빗물저류배수시설을 건설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중장기 수해방지 대책을 9일 발표했다. 시간당 95㎜까지 빗물 처리 능력을 갖추겠다는 현행 ‘목표 강우량’을 100㎜로 상향 조정하고, 빗물이 고이는 저지대 지형인 강남지역의 경우 이를 11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방재 한계를 초과하는 국지성 집중호우가 찾아오면 또다시 침수가 불가피하다. 실제로 지난 8일 오후 9시경 서울 동작구에선 1시간 동안 무려 141.5㎜의 폭우가 쏟아졌다. 서울시가 향후 목표 강우량을 100㎜로 끌어올려도 여전히 침수된다는 뜻이다.

10일 폭우에 갖힌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시민공원. 문희철 기자

10일 폭우에 갖힌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시민공원. 문희철 기자

전문가들이 ‘예측할 수 없는 비상사태를 전제한 재난대응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정지범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는 “복합재난이 증가하면서 더 이상 완벽한 방재는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며 “이보다는 재난 발생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재난을 축소·적응하는 능력(감재)과 재난 피해를 빠르게 복구하는 능력(회복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재난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희철 기자

문희철 기자

도림천 범람 영향으로 8일 숨진 관악구 발달 장애 가족 경우 대피문자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비극이 반복하지 않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최신 과학기술은 재난에 맞서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김성준 건국대 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홍수를 방어하는 내배수 시설물에는 지속해서 투자하지만, 특정 지역·장소별로 호우피해 징후를 발견하고 신속히 예측할 수 있는 사전 모니터링은 다소 미비하다”며 “인공지능(AI)·디지털 기술로 하천 통수능력을 재현해서 예측력을 높이고, 모든 시민에 어디에 있든 10~15분 이내에 대피 가능한 재난 대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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