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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 '내면의 열정 우러나온' 우승 후 첫 무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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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바흐 플러스' 협연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사진 목프로덕션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바흐 플러스' 협연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사진 목프로덕션

임윤찬이 무대 위로 걸어나왔다. 갈채와 함성의 농도가 짙어졌다. 일부 청중은 연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기립박수를 보내며 환영했다. 10일 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목 프로덕션 15주년 기념공연 ‘바흐 플러스’.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과 임윤찬을 비롯한 협연자들이 각기 바흐의 작품을 연주했다. 임윤찬에겐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최연소 우승 뒤 국내에서 팬들과 만나는 첫 무대였다.

임윤찬 ‘바흐 플러스’ 협연 리뷰 #두 곡의 앙코르, 돋보인 팬서비스

2부 두 번째 순서로 등장한 임윤찬의 이날 연주곡은 바흐 피아노 협주곡 BWV1056. 바흐는 콩쿠르 2라운드에서 임윤찬이 “영혼을 바쳐 연주했다”는 ‘음악의 헌정’의 작곡가다. 지휘를 겸하기 위해 피아노를 평소보다 90도 돌려놓았기에 임윤찬은 객석의 청중을 등지고 연주했다.

피아노에 앉은 임윤찬의 손짓으로 곡이 시작됐다. 역동적으로 곡을 리드한 임윤찬은 악보도 손수 넘기며 피아노로 곡의 강약과 완급을 조절했다. 반복되는 악구에서는 셈여림을 변화시켜 단조로움을 피했다. 2악장도 손을 저으며 시작했다. 피아노음이 부유하는 듯한 느린 악장에서 시간이 평소보다 늦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현악기들의 피치카토 속에서 임윤찬은 작고 반짝이는 피아노 음색을 뽑아냈다. 3악장에서는 스카를라티 소나타를 연상시키는 트릴이 돋보였다. 리드미컬하면서 무게를 잃지 않았다. 바로크 음악다운 자연스러움보다는 극적으로 구획한 낭만주의적 요소가 많았고 여백의 미도 느낄 수 있었다.

한 곡만 듣고 아쉬워하는 청중 앞에 임윤찬의 팬 서비스는 확실했다. 앙코르를 두 곡이나 연주했다. 첫 곡은 바흐 파르티타 BWV825 중에서 ‘사라방드’였다. 임윤찬의 건반이 그리는 궤적에 오롯이 기대는 시간 동안 싱그럽고 풋풋한, 긍정적인 기운이 흘러나왔다. 두 번째 앙코르 브람스 발라드 2번은 이와는 사뭇 달랐다. 영롱한 터치로 두터운 악구를 표현하며 내면의 열정이 우러나오는 연주였다. 수채화와 유화, 투명과 불투명, 외면과 내면의 대비를 느낄 수 있는 앙코르였다.

이날 전체 공연의 시작은 불안했다.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을 연주하는 나웅준의 트럼펫과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의 연주가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서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가 협연한 바이올린 협주곡 BWV1042에서 안정감을 찾았다.

박수예의 연주는 스물 두 살 나이를 의심케 했다. 자신감이 느껴지면서도 느긋했다. 쥐려고 하지 않고 놓을 줄 알았다. 무심하게 장식음을 연주하던 그가 2악장에서는 굵고 깊은 감정선을 드러냈다. 3악장에서는 강약을 조절하며 즐거운 기교를 뽐냈다. 파가니니 ‘카프리스’ 등 음반에서도 놀라운 연주를 들려줬던 박수예는 주목할 연주자다.

노부스 콰르텟의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과 김영욱이 협연한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BWV1043은 눈빛만 봐도 서로를 잘 아는 두 연주자의 호흡이 흥미로웠다. 표정과 몸짓이 너무 진지하고 힘이 들어가 있어서 지켜보는 청중들은 조금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2부 첫 곡 ‘나는 만족하나이다’ BWV82는 바리톤의 목소리로 익숙한 곡이지만 이날은 조성호의 클라리넷이 함께했다. 비장하게 깔리는 현악의 반주에 부드러운 클라리넷이 어우러졌다. 첼로의 저음과 주고받는 대화가 점차 따뜻하고 숙연한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임윤찬에 이어서 그의 스승 손민수가 피아니스트 이효주와 함께 2부 세 번째 곡이자 이날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바흐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BWV1060에서 두 피아니스트는 모범적이고 성실한 연주를 펼쳤다. 이 곡이 주어진 궤도를 규칙적으로 도는 것 같았다면, 앙코르인 바흐 ‘시칠리아노’는 두 피아니스트의 감성이 전면에 나선 연주였다. 듣는 이의 마음을 촉촉하게 어루만졌다.

이번 바흐 플러스 공연은 우리 음악계에서 바흐의 좌표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익숙하지만 낯선,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잡히지 않는 ‘음악의 아버지’ 바흐. 더 높은 수준을 향한 우리 연주자들의 도전을 기다리는 만년설 덮인 에베레스트 같았다.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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