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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아바타에 성기가 어딨나요?” 물정 모르는 ‘메타버스 성범죄’ 법안들

중앙일보

입력

하반신이 없는 호라이즌 월드의 아바타들. 사진 메타

하반신이 없는 호라이즌 월드의 아바타들. 사진 메타

국회에서 ‘메타버스 성범죄’를 잡겠다는 법안들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그러나 아바타에 성기가 있다고 전제하는 등 황당한 내용들이 포함돼 실효성 논란이 예상된다. 가상 공간에 대한 이해 없이 만들어진 ‘보여주기식 법안’이란 지적도 나온다.

무슨 일이야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매달 1건 이상 ‘아바타 성범죄 처벌법’이 발의됐다. 민형배 의원(무소속), 신현영 의원(민주당), 윤영덕 의원(민주당)이 각각 대표발의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이다. 대부분 기존 형법이나 성폭력처벌법, 스토킹처벌법 등 ‘인간 대 인간’ 사이의 일을 벌하는 조항을 따왔다.

올해 5월 민형배 의원이 대표발의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사진 의안정보시스템

올해 5월 민형배 의원이 대표발의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사진 의안정보시스템

이게 왜 중요해

메타버스의 부상 이후 디지털 성범죄 무대가 넓어지고 있다. 채팅·음성·사진·영상 등을 이용한 성희롱, 아바타를 이용한 스토킹·유사 성행위, 그루밍 성폭력 등 형태도 다양하다.

메타버스 ‘호라이즌 월드’를 운영하는 메타(옛 페이스북)는 집단 성희롱 등 성범죄가 반복되자 ‘아바타 간 거리두기’ 기능을 도입했다. 다른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네이버)와 로블록스 등에서도 아동·청소년을 노린 성범죄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는 2019년 2690건에서 지난해 4349건으로 62% 증가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수사기관도 관련 입법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지난 6월 대검찰청 논문집 ‘형사법의 신동향’에 실린 ‘메타버스 공간에서의 성폭력 범죄와 형사법적 규제에 대한 연구’는 “피해자는 심각한 피해를 호소하고 있으나 현행 법체계는 가상현실 범죄에 대응하기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는 ‘치안전망 2022’에서 메타버스를 특집 편성하고 “이미 메타버스 내에서는 10대 대상의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으며, 다양한 성착취 범죄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현재 발의된 법안들은 메타버스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낮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페토(위)와 로블록스(아래)에서 행해진 아바타 성추행. 사용자들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캡처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제페토(위)와 로블록스(아래)에서 행해진 아바타 성추행. 사용자들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캡처했다. 사진 유튜브 캡처

뭐가 문제길래 

발의안들을 ‘실효성이 있는가’와 ‘부작용은 없는가’ 측면에서 분석했다.

① 민형배 의원안
● “본인 아바타의 성기나 손가락 등을 다른 아바타의 성기·구강·항문 등에 넣으면 최대 징역 2년 또는 벌금 2000만원”이란 것이 골자다. 유사강간죄(형법 제297조의2)를 준용했다.

그러나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아바타엔 성기가 없다. 호라이즌 월드 아바타의 경우 하반신도 없다. 메타버스를 운영하는 메타·제페토·이프랜드(SK텔레콤) 관계자는 “성기나 항문은 당연히 없고, 기본 세팅부터 옷을 입고 있어 노출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바타마다 신체 구조가 2등신부터 16등신까지 제각각이라 일괄 적용이 어렵다는 것도 맹점.

대검찰청은 이 법안에 대해 “(성기 삽입 등이) 가능하다면 플랫폼을 제재할 문제이지 형법적, 사전적 접근은 부적절하다”고 평가했다.

네이버가 운영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의 기본형 아바타. 사진 네이버

네이버가 운영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의 기본형 아바타. 사진 네이버

② 신현영 의원안
● 기존 성폭력처벌법 일부와 올해 1월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TF의 ‘성적 인격권’ 신설 권고를 정보통신망법에 반영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상대방 의사에 반해 성적 욕망 내지 만족을 위해 성적 언동을 하면 최대 징역 1년 또는 벌금 1000만원”이란 것이 핵심이다.

● 플랫폼의 자료 보존 의무도 명시됐다.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는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플랫폼 사업자에게 증거 자료의 보존 등을 명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해석에 따라 메타버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영상으로 남겨야 할 수도 있다”며 “관리에 막대한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보관 범위나 방법에 따라 (사찰·검열 등) 프라이버시 침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③ 윤영덕 의원안
● 아바타 간 성희롱, 성추행, 스토킹 등 “아바타를 상대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동 등에 최대 징역 1년 또는 벌금 1000만원”을 매긴다는 내용이다. 기존 통신매체이용음란죄(성폭력처벌법 제13조), 스토킹처벌법, 공연음란죄(형법 제245조) 등에서 따왔다.

법무법인 디라이트 노경종 변호사는 지난 3일 팩플팀에 “(신 의원, 윤 의원 발의안은) 현실과 등가성이 떨어지는, 완전히 새로운 현상을 일단 처벌 범주에 넣고 보자는 내용”이라며 “아바타를 사람과 동일한 신체·인격으로 볼 것인지부터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논의 없이 해당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면 과잉 처벌이나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례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령, 아바타끼리 서로 ‘통과’할 수 있는 게임·메타버스라면 어디부터 신체 접촉인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것.

국회·전문가는 뭐래?

“법안 발의는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방안”이란 입장이다. 메타버스·아바타의 법적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범죄 확산을 막으려면 ‘부족한 법안’이라도 내야했다는 것.

● 민형배 의원실 관계자는 “(특별법 등으로) 메타버스·아바타에 대한 개념 규정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을 안다”면서도 “당장 성범죄가 퍼지는 상황이라 ‘그건 범죄’라는 인식 먼저 심어주고, 법안에 문제제기가 나오면 개정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 신현영 의원실 관계자는 “메타버스 성범죄에 대한 논의를 끌어내기 위한 차원”이라며 “이달 말 토론회 등을 통해 업계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김현수 박사(방통위 메타시대추진단 간사)는 “메타버스 이용자 대다수가 아동·청소년인 만큼 현 시점 규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며 “플랫폼별 가상현실(VR) 기기 활용 유무 등 몰입도와 운영 방식이 천차만별이라, 입법안이 광범위해질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앞으로는

● 현재 법안은 발의 단계라 보완이 가능하다. 각 의원실은 이해관계자 의견을 적극 수렴해 법안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 아바타 범죄의 처벌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아바타 인격권’에 대한 논의가 먼저다. 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는 ‘메타버스 윤리원칙’ 수립에 있어 아바타에 인격권을 부여할지 논의 중이다.
● 법무부가 지난 4월 디지털 성범죄, 메타버스상 인격 침해 등을 예시하며 민법에 ‘인격권’을 포함시키는 개정안을 예고하면서, 아바타 범죄에 형사처벌 뿐 아니라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 소송도 가능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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