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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될 순 없다" 18세 입대…유해 발굴 12년만에 집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6ㆍ25전쟁 당시 남하하는 북한군을 피해 국군에 자원입대했던 병사의 유해가 발굴 12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11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지난 2010년 5월 강원도 화천군 서오지리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이 고(故) 윤의생 일병으로 확인됐다. 경북 문경시 영순면이 고향인 그는 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의 남진이 빨라지자 “여기에 있다가 인민군이 될 순 없다”며 1950년 8월에 세워진 대구의 제1신병훈련소로 향했다. 당시 그는 만 18세였다.

그는 6남매의 장남이자 결혼까지 한 상태였다. 만에 하나 북한군이 쳐들어와 가족에 보복할 수 있다는 우려로 집을 떠나기 전 자신의 사진과 소지품을 모두 불태웠다.

지난 2010년 5월 강원도 화천군 서오지리에서 고 윤의생 일병의 유해를 최초 식별할 당시의 모습. 사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지난 2010년 5월 강원도 화천군 서오지리에서 고 윤의생 일병의 유해를 최초 식별할 당시의 모습. 사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시시각각 바뀌는 전화 속에서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19일)이 시작됐고, 훈련만 마친 그도 이내 전투에 투입됐다. 그해 10월 5일부터 시작한 중부지역 38선 돌파 진격작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춘천ㆍ화천 일대에서 교전 중 전사했다.

군 당국은 전사한 지 60년 만에 그의 다리뼈 일부와 요대 등 유품 일부를 발굴했지만,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찾진 못했다. 이후 10년간 유해는 이름도 없이 보관됐다.

가족을 찾은 건 우연한 계기였다. 16살 터울의 남동생인 윤정수씨가 지역 보건소 직원의 권유로 지난 2020년 6월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면서다.

사진은 고 윤의생 일병의 유품인 요대. 사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사진은 고 윤의생 일병의 유품인 요대. 사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고인이 입대할 당시 3살이었던 윤씨는 형님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윤씨는 “북한군에 안 가려고 국군으로 입대했다는 참된 애국자였던 형님이었기에 꼭 찾고 싶었다”고 밝혔다.

윤 일병이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영웅 귀환 행사’는 오는 18일 문경의 생가에서 이뤄진다. 윤씨는 “형님이 어릴 때 오르며 놀던 소나무가 있는 집에서 간소하게 행사를 치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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