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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만원 호텔 예약비, 佛대표 통장에 들어갔다…에바종 실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행사 '에바종'이 최근 고객으로부터 예약금을 받은 뒤 숙소로 지급하지 않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여러 특급호텔의 피트니스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도 팔았다. 최승표 기자

여행사 '에바종'이 최근 고객으로부터 예약금을 받은 뒤 숙소로 지급하지 않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여러 특급호텔의 피트니스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이용권도 팔았다. 최승표 기자

온라인 호텔 예약업체 ‘에바종’이 먹튀 논란에 휩싸였다. 고객으로부터 여행 예약금을 받고도 호텔에 지급하지 않아 10억원 수준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남대문경찰서가 피해 접수를 해 수사에 착수했고, 공정거래위원회도 최근 현장조사를 벌였다. 에바종이 이슈가 된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년 전 환불 문제로 집단소송을 당했고, 지난해에는 환불금을 적립금 형태로 돌려줘 고객과 갈등을 빚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프랑스인이 차린 한국 OTA

에바종은 2012년 금융계 출신인 프랑스인 에드몽 드 퐁뜨네 대표가 설립했다. 서울에 사무실을 두고 국외여행업 등록을 한 한국 여행사다. 사진 에바종 홈페이지

에바종은 2012년 금융계 출신인 프랑스인 에드몽 드 퐁뜨네 대표가 설립했다. 서울에 사무실을 두고 국외여행업 등록을 한 한국 여행사다. 사진 에바종 홈페이지

에바종은 2012년 2월 영업을 시작했다. 홍콩 금융업계에서 일하던 프랑스인 에드몽 위그 제라르 드 퐁뜨네가 회사를 차렸다. 서울에 사무실을 두고 ‘국외여행업(현 국내외여행업)’으로 업종을 등록했다. 익스피디아·아고다 같은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OTA)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세력을 키우는 시기였다. 에바종은 기존 온라인 호텔 예약업체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무료 회원으로 가입한 뒤에야 상품과 가격을 볼 수 있도록 했고, 해외의 특급 호텔과 럭셔리 리조트에 집중했다. 문제가 불거지기 직전 에바종 측은 회원 수 55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바이럴 마케팅으로 성장

에바종의 틈새 전략은 꽤 성공적이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젊은 여행자의 취향에 맞는 숙소를 골라 소개하는 ‘큐레이션’에 강점을 보였다”며 “글로벌 OTA와 달리 식사, 스파, 전용 차량 같은 부가 서비스를 더한 상품도 색달랐다”고 말했다. 에바종의 주요 홍보 수단은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소셜미디어다. 인플루언서와 파워블로거에게 혜택을 제공하고 리뷰를 쓰게 하는 바이럴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불과 한두 달 전까지 인플루언서들이 에바종의 협찬을 받고 태국 방콕 호텔 리뷰를 올리기도 했다. 일부 인플루언서는 에바종 사태가 터지자 협찬 내용을 삭제했다.

코로나를 만나다

최근 에바종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고객이 집단소송 사이트에 올린 게시물. 사진 화난사람들 사이트 캡처

최근 에바종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고객이 집단소송 사이트에 올린 게시물. 사진 화난사람들 사이트 캡처

회원 수는 꾸준히 늘었지만, 재무제표는 부실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매해 14억~24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그 와중에 코로나 사태를 만났다. 2020년 초 해외여행이 금지되자 고객의 환불 요청이 쇄도했다. 에바종은 환불을 거부했다. 대신 일정 연기와 적립금 지급을 권했다. 에바종은 집단소송을 당했고, 패소했다. 이후에도 환불금 대신에 ‘클럽머니’라는 적립금을 지급했다가 문제가 불거졌다. 사용처가 많지 않았고, 적립금 사용액 비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에바종 고객의 환불 소송을 맡았던 황준협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현재까지 에바종은 소송 고객 중 약 3분의 2에 환불액을 지급했다”고 말했다.

무책임한 대응

에바종은 이달 2일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올렸다. 사진 에바종 인스타그램

에바종은 이달 2일 인스타그램에 사과문을 올렸다. 사진 에바종 인스타그램

한 번 터진 봇물은 거침이 없었다. 여행을 며칠 앞둔 고객에게 예약 취소 문자가 날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국내 호텔에 미지급금이 쌓이면서 거래가 끊기는 경우도 생겼다. 대기업 계열 A호텔 관계자는 “2021년 대금 지연 문제가 생겨 국내 모든 호텔의 지점이 에바종과 거래를 종료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해외 여행을 갔다가 체크인 과정에서 에바종이 호텔 측에 객실료를 지급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고객이 속출했다. 에바종은 추가 할인을 미끼로 퐁뜨네 대표 개인 통장에 입금을 유도하기도 했다. 여기에 넘어가 여행비 수천만 원을 날린 고객도 있다. 이후 에바종의 대응은 무책임했다. 이달 2일 소셜미디어에 “투자 유치 및 인수 합병 등의 방안을 강구 중”이라는 내용의 공지문을 올렸을 뿐이다. 현재 에바종은 서울 서소문 사무실을 빼고 전 직원이 재택근무 중이다. 취소 문의가 폭주하고 있지만, 전화 연결은 쉽지 않다. 퐁뜨네 대표는 출국 금지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1000만원짜리 수상한 이용권

에바종이 지난해 선보인 특급호텔 피트니스 휘원권. 서울 5개 특급호텔 피트니스 시설을 이용하는 회원권은 최대 보증금 1000만원을 받았다. 사진 에바종 홈페이지

에바종이 지난해 선보인 특급호텔 피트니스 휘원권. 서울 5개 특급호텔 피트니스 시설을 이용하는 회원권은 최대 보증금 1000만원을 받았다. 사진 에바종 홈페이지

에바종은 지난해부터 고가의 회원권을 팔았다. 국내 여러 호텔의 운동시설을 쓸 수 있는 ‘피트니스 이용권’, 특급호텔을 지정 기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호텔패스’를 선보였다. 피트니스 회원권은 3개월권 구매시 89만원이지만, 보증금 1000만원을 내면 77만원에 이용하도록 했다. 호텔패스는 1년에 1055만원(2인권)을 내면 주요 특급호텔을 2주마다 최대 2박씩 쓸 수 있는 상품이었다. 모두 금액이 커 피해액이 상당할 전망이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단지 큰돈을 끌어모으기 위해 이런 상품을 기획했다면 다분히 고의적이고 악질적인 영업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두 상품 모두 판매를 중단한 상태다.

후불제 여행 주의보

지난 4월 파산 신청한 바나나여행사의 인터넷 광고. 매달 곗돈처럼 돈을 내고 여행을 다녀온 뒤 차액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회원을 모았다. 사진 바나나여행사 SNS

지난 4월 파산 신청한 바나나여행사의 인터넷 광고. 매달 곗돈처럼 돈을 내고 여행을 다녀온 뒤 차액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회원을 모았다. 사진 바나나여행사 SNS

비정상적인 영업으로 고객 피해를 일으킨 건 에바종만이 아니다. 최근 ‘후불제 여행’ 모델을 내세워 고객을 끌어모았다가 파산한 여행사도 있다. 전북 전주에 소재한 ‘바나나여행’은 매달 3만~10만원씩 곗돈처럼 회비를 내고 여행을 다녀온 뒤 차액을 내는 방식으로 고객을 모집했다. 그러다가 고객 3000여 명에게 피해를 주고 지난 4월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찾아보면 후불제 여행을 표방하는 여행사가 적지 않다. 당장 싸게 보일진 몰라도 사고가 일어났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한국여행업협회 구정환 차장은 “여행사가 미심쩍다면 ‘여행정보센터’ 사이트에서 인허가 여부와 보증보험 가입액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라며 “최근에는 본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해외 사이트를 이용했다가 피해를 본 고객도 많다”고 말했다.

인플루언서 기획 여행도 불법 

여행업을 등록하지 않고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포털 사이트의 카페나 인스타그램을 이용한 유사 여행업은 그래서 위험이 크다. 별 탈 없이 이용했다는 사람도 많지만, 환불 문제가 불거지거나 사고가 발생하면 치명적이다. 현재 횡행하는 유사 여행업체는 여행업 등록을 안 한 경우가 부지기수고, 업체가 해외에 소재해 국내법이 미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에바종은 국내외여행업으로 등록했는데도 대응이 쉽지 않다. 무등록 업체로부터 피해를 본다면 사실상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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