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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돕자" 마음 통했다…여고에 쌓인 구호품 옮기는 이 회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0일 오후 3시쯤 부산 사하구 감천동 삼성여고 운동장에서는 대형 컨테이너 트럭 4대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은 지게차를 이용해 운동장에 놓인 흰색 1TEU(가로·세로 2.4mx높이 6m) 컨테이너 4개를 옮겨실은 후 정문을 나섰다. 컨테이너마다 측면엔 ‘POSCO FLOW(포스코 플로우)’라고 적힌 현수막이 나부꼈다.

장대호 삼성여고 교감은 “운동장에 놓인 컨테이너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야 학교를 떠나는 모습을 보니 홀가분하다”며 “부디 구호품을 필요로 하는 아이티 지진 난민들에게 무사히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시민들이 모은 아이티 지진 구호품을 실은 컨테이너가 11개월 만인 10일 부산 사하구 삼성여고 운동장을 출발하자 포스코플로우 직원들이 손을 흔들며 환송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시민들이 모은 아이티 지진 구호품을 실은 컨테이너가 11개월 만인 10일 부산 사하구 삼성여고 운동장을 출발하자 포스코플로우 직원들이 손을 흔들며 환송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운송비 폭등에 못 부친 구호품

컨테이너에 담긴 물품은 지난해 8월 강진 피해를 본 아이티에 보내기 위해 삼성여고와 삼성중 재학생을 비롯한 부산시민이 모은 구호품이다. 규모 7.2 강진에 아이티에서는 1300명이 숨지고 3만여 가구가 집 등 삶의 터전을 잃었다. 구호품에는 옷가지 5만 벌과 신발 3만 켤레를 포함해 담요, 피아노, 자전거 등 시가 1억2000만원 상당 물품이 담겼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물류비용이 애초 예상한 2000만원에서 1억원까지 폭등하면서 1년 가까이 삼성여고 운동장과 강당에 방치돼왔다.

지난해 8월 지진 피해를 당한 아이티에 보내기 위해 삼성여고 학생 등 부산시민이 구호품을 모으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해 8월 지진 피해를 당한 아이티에 보내기 위해 삼성여고 학생 등 부산시민이 구호품을 모으고 있다. 송봉근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게 편지도 

삼성여고 측 등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마땅한 방도를 찾지 못했다. 지난 6월엔 삼성여고 재학생 이서영(3학년)양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구호품이 아이티로 갈 수 있게 도와주시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외교부 등 정부 부처도 구호품을 아이티로 전달해주는 게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가 길 터주자” 

이런 사정을 알게 된 김광수 포스코플로우㈜ 사장이 “우리가 길을 터주자”고 나서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김 사장은 유럽 출장 중 보도를 접하고 직원들에게 직접 이같이 지시했다고 한다. 지난 4월 출범한 포스코플로우는 포스코 그룹의 물류 기능을 담당하는 계열사로 올해 2조5000억원 매출이 전망되는 기업이다. 이번 구호품 배송을 위해 포스코플로우 측은 운송비용 등 약 7000만원을 부담했다.

이날 삼성여고를 방문한 우준영 포스코플로우 컨테이너섹션 과장은 “수요 등 문제로 국내에서는 아이티로 구호품을 옮겨줄 선사를 찾기 어려웠다. 목적지인 아이티 포르토프랭스항은 지진 여파로 대형 선박 진입도 어려워 환적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구호품은 부산신항에 보관되다 오는 15일 선적된다. 파나마 발보아, 멕시코 만사니요 등지를 거쳐 35일 정도면 도착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8월 규모 7.2의 강진으로 무너진 아이티 남서부 항구도시 레카예의 한 호텔. AP=연합뉴스

지난해 8월 규모 7.2의 강진으로 무너진 아이티 남서부 항구도시 레카예의 한 호텔. AP=연합뉴스

“현지 치안 불안, 무사히 전달되도록 최선”

부산시로부터 허가를 받아 구호물품을 모집한 부산소망성결교회 원승재(75) 목사는 “지진 피해가 집중됐던 아이티 남서부 제레미 등 도시 난민들은 여전히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도시에 구호품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원 목사는 장기간 우리나라와 아이티를 오가며 현지 봉사활동을 벌여왔다. 그는 “현지 치안 상황도 불안정한 것으로 파악했다. 모집부터 현지 발송까지 많은 분이 애써주신 만큼 구호품이 무사히 전달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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