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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물류 마비 '수에즈 사건'…"이 배라면 문제없다" 무슨 기술? [팩플]

중앙일보

입력 2022.08.11 05:00

지난해 3월 세계 최대 운하 수에즈 운하에서 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좌초했다. 길이 400m 배가 수로를 대각선으로 완전히 막아버린 것. 지중해와 홍해·인도양을 잇는 수에즈 운하가 막혀 세계 물류의 12%가 정지됐다. 이집트 정부는 사고가 난 운하 남쪽에 확장 공사 계획을 밝혔고, 선장의 운전 미숙을 사고 원인으로 꼽았다. 도선사 2명의 다툼과 상반된 지시가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분석도 나왔다.

“우리 기술이 도입된 선박이었다면 좁은 수로도 안전하게 통과해 그런 대형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거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의 사무실에서 만난 박별터(36) 씨드로닉스(SEADRONIX)의 대표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씨드로닉스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선박 자율운항 기술을 개발하는 8년 차 스타트업. 그는 “최근 해운업계 원로 한 분이 ‘옛날 뱃사람들은 별을 따라 항해를 했다’면서 별자리를 뜻하는 별터라는 제 이름과 업이 잘 맞는다고 하시더라. 씨드로닉스가 미래 항해의 별자리, 길잡이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내다보는 ‘AI 바닷길’의 미래를 들어봤다.

박별터 씨드로닉스 대표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박별터 씨드로닉스 대표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바다로 간 AI  

어쩌다 바닷길 AI 기술에 도전하게 됐나.
KAIST 동기 셋과 2015년 12월 창업했다. 모두 로보틱스 전공이었고 대학원 연구실 테마는 자율주행이었다. 나는 위치 인식 분야를 연구했다. 자동차, 실내주행 로봇, 드론 등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연구했는데 선박이 제일 어렵고 힘들더라. 일상과 거리가 멀어 대중들 관심도 적었고 관련 회사도 없었다. ‘우리가 이 기술을 일상에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 자율운항 선박 시장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창업했다. 회사 이름에는 바다(sea)위 무인 운항(drone)을 통해 유일무이한 체계(-ics)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현재 씨드로닉스의 AI 자율운항 기술은 최대 16만톤(GT) VLCC(초대형 원유운반선)급 선박 등 10척과 전국 항만 30선석(선박 접안 장소)에 적용돼 있다.

처음부터 대형 선박을 노렸나.
아니다. 처음엔 소형 레저용 선박에 자율 운항 기술을 적용해볼 생각이었다. 창업 초 알고리즘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실증하기 위해 남해안을 열심히 다녔다. 실험 인원이 부족해 내가 직접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장애물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국내 레저용 보트 관련 법상 5마력 이상 보트는 면허가 필요하다. 5마력 이상 소형 선박은 무인으로 조정하면 불법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이후 큰 배로 관심을 돌렸다. 이번에는 사전 시장 조사를 열심히 했다. 조선소, 해운사, 항만 종사자들을 만났다. 자율운항을 당장 적용하긴 어렵지만,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업계 종사자들에게 우리가 기술로 도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선박의 첨단화뿐 아니라 선박과 항만 연계의 중요성도 파악했다. 산업계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더라.  
지난해 수에즈 운하를 가로막은 '에버 기븐호'가 정상 항로로 복귀하고 있다. EPA·MAXAR=연합뉴스

지난해 수에즈 운하를 가로막은 '에버 기븐호'가 정상 항로로 복귀하고 있다. EPA·MAXAR=연합뉴스

긍정적인 변화라니.
선박들은 어마어마한 자산을 싣고 항해한다. 좌초되면 재산과 인명에 큰 피해가 발생하고 기름이 유출되면 환경도 오염된다. 외국계 보험사 통계에 따르면 선박사고의 75%가 인간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 기술을 통해 이 수치를 낮추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해 전 세계 물류를 마비시킨 수에즈 운하 사고 같은 걸 예방할 수도 있고. 
어떻게 예방할 수 있나.
선박 운항에서 어려운 부분은 연안, 즉 ‘좁은 수로’ 운항이다. 배가 연안으로 다가오면 다양한 장애물을 마주한다. 좁은 수로에 들어가면 숙달된 항해사라 해도 큰 선박은 조종을 잘하기가 어렵다. 선박은 차와 달리 실질적인 브레이크가 없다. 사람이 직접 거리를 예측하고 장애물과의 거리 등 수치를 주시해야 한다. 우리 시스템의 핵심은 AI 기술을 이용해 어떤 장애물이 어디서 어떻게 움직일지를 예측하고, 선박과의 충돌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계산해 알려주는 거다. 좁은 수로에서도 배를 더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다. 

"인간의 경험 VS AI의 데이터"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여객선·화물선·유조선 등 어선을 제외한 선박의 해양 사고 건수는 2015년 640건에서 2017년 804건, 2019년 1020건으로 증가했다. 특히 아시아는 선박 해양 사고가 가장 빈번한 지역이다. 글로벌 보험사 AGCS(알리안츠그룹)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선박사고 중 38%는 아시아에서 발생했다. 한국·일본·중국 북부 지역은 남중국해와 인도차이나 해협, 동지중해와 흑해, 영국해협과 비스케이만에 이어 선박사고 잦은 지역 4위에 올라 있다.

사고 원인은 다양하지만, 사람의 실수만 줄여도 손실이 준다. 위 보고서에 따르면 2011~2016년 사이 조사된 해상 보험사고 1만 5000건 중 75%가 사람의 실수로 일어났고, 이로 인해 16억달러(약 2조 970억원)의 비용이 발생했다. 씨드로닉스는 AI 기술을 활용하면 선박 사고율을 낮출 수 있다고 본다.

지난 1월 울산신항에 접안한 선박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뉴스1

지난 1월 울산신항에 접안한 선박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뉴스1

선박 자율운항 기술은 자동차 자율주행과 좀 다른가.
도로 위 장애물은 어느 정도 정형화돼 있다. 사람, 자전거 등 예상할 수 있지 않나. 반면 선박의 장애물은 좀 다르다. 고래 같은 것들을 상상해보면 된다. 자동차는 브레이크가 있고 핸들을 움직이는 대로 급히 꺾을 수 있지만, 선박은 관성에 따라 물 위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예측 운항이 필수다. 날씨 변수도 바다가 훨씬 심하다. 물론 도로도 안개나 눈·비가 있지만, 바다보다는 훨씬 평온한 편이다.
그럼 선박 자율운항 기술의 난도가 더 높은가.
둘은 아예 다른 차원의 기술로 봐야 한다. 선박은 안개가 껴도 드넓은 개활지를 항해할 수 있고, 장애물이 급박하게 툭 튀어나오는 경우도 많지 않다. 다만, 선박은 즉시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전에 예측하고 판단을 돕는 기술이 중요하다. 반면, 자동차 자율주행은 위치 인식 기술이 선박보다 중요하다. 도심과 터널, 지하주차장 등은 위성 GPS 신호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현재 씨드로닉스의 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는 기술 아니라, 사람의 인식과 판단을 돕는 보조시스템으로 활용한다. 앞에 뭐가 있나 판단할 때 한 명이 보는 것보다 여럿이 보는 게 더 도움된다. 사고 발생 환경을 먼저 인식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재 자율운항 기술의 핵심이다. 장기적으로는 인간의 의사결정을 대체할 수도 있다고 본다. 
직접 개발한 게 구체적으로 뭔가. 
항만용, 선박용 제품이 각각 있다. ①항만용은 'AI 항만 모니터링 플랫폼'인데, 쉽게 말해 주차 보조 시스템이다. 배가 항만에 들어오는 접안 단계에서 육지까지 남은 거리, 접근 속도, 이미 주차된 선박과의 거리 등을 인식해서 데이터를 제공한다. 이를 바탕으로 작업자들이 안전하게 접안하도록 돕는 플랫폼을 개발해 서비스하고 있다. 항만에 설치하면, 항만공사 등 부두업체가 운영한다. ②선박용은 'AI 선박 운항 보조 시스템'으로 어라운드뷰(Around View)다. 선박과 충돌할 가능성 있는 주변 장애물을 자동으로 인식해 그 정보를 운항 담당자에게 전달한다. ‘당신 눈엔 안 보이겠지만 이런저런 장애물과 부딪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 정보도 제공한다.   
이전까지는 이런 정보도 없이 배들이 운항했었나.
그렇다. 해운은 인간의 경험이 중요한 산업이었다. 접안은 도선사들이 담당했다. 큰 배는 예인선 등 작은 배들이 밀고 당기면서 접안한다. 예인선 선장들의 경험이 절대적이다. 현재는 이런 인력을 자율운항 기술로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기술을 활용하면 인간의 작업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이 과정에 바다 위에 떠 있는 사물들을 인식하고, 또 여러 센서를 융합해 데이터를 모으는 기술 등이 다양하게 필요하다. 연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의사 결정 적기를 놓칠 수 있어 실시간성도 중요하다.  
울산항만공사, SKT·씨드로닉스와 '5G·AI 적용 스마트항만 인프라 구축' 협약. 연합뉴스

울산항만공사, SKT·씨드로닉스와 '5G·AI 적용 스마트항만 인프라 구축' 협약. 연합뉴스

한국은 조선·해운업이 강한 만큼, 관련 대기업도 관심을 가질 기술이겠다.
우리가 창업할 때만 해도 국내외 통틀어 경쟁사가 없었다. 현대중공업이 2020년 자회사(아비커스)를 세워 선박 자율운항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대기업이 진출했다니, 스타트업엔 위기 아닌가?
우리는 자율운항의 핵심인 인지 기술에 강하다. 우리의 비교 우위 포인트다. 그런데 이 산업 특성상 다른 업체는 경쟁자라기보단 협력 파트너에 가깝다. 2018~2019년 현대중공업과 330m 대형 선박 관련 기술 작업을 했다. 이걸 회사 한 곳이 혼자 하려 했다면 속도전에서 밀린다. 요소 기술을 잘 아는 회사들이 협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중공업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중공업이 뛰어들기 전에는 우리의 잠재 고객들이 이 기술을 이해하기 힘들어 했다. 그런데 대기업이 진출하면서 시장의 이해도가 높아졌고, 그 덕에 이제는 이 기술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 제로(0)부터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해외는 어떤가.
노르웨이 비료생산 기업 야라(Yara)는 2017년부터 해상 기술 업체 콩스버그(Kongsberg)와 자율운항 화물선 공동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선박 센서를 통해 장애물을 먼저 발견하고 피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화물선은 노르웨이 남부의 생산시설과 항구를 오가는 기존 화물차 운송을 대체하고 있다. 섬나라 일본에서도 해운사와 조선사 등이 협력해 컨테이너 선박이 오가는 일부 구간을 자율운항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해양수산부 등이 기업들과 협력해 국가 주도로 자율운항 선박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통 산업, 기술 혁신의 기회 

국무조정실·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전 세계 자율운항 선박의 시장 규모는 2016년 66조원에서 2021년 95조원으로, 2025년에는 18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자율운항 선박을 통해 물류 흐름은 10% 늘고, 인적 해양사고는 75% 감소, 운용비용은 22% 감소한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2030년 세계 자율운항 선박 시장 50% 차지'를 목표로, 2019년 산·학·연·관 협의체를 구성해 기술발전에 따른 시나리오를 예측하고 규제 혁신 로드맵을 마련했다.

그래서 씨드로닉스의 목표는 무엇인가.
올해 목표는 항만 생태계 변화다. 제품의 파급력은 선박보다 항만 쪽이 더 크다. 울산항만공사와 함께 울산항에 스마트항만시범단지를 구축하고 있다. 저희 기술을 항만에 적용하면 무엇이 편리해지고, 더 안전해지는지 결과를 보여주는 게 올해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해운 물류 산업의 변화를 이끌고 싶다. 씨드로닉스 비전은 영어로 'Port to Port' 즉, 여러 항만 사이를 잇는 AI 플랫폼 회사가 되겠다는 거다. 결국 배는 항만 사이를 움직이는 모빌리티 수단인데 여기 필요한 AI 플랫폼을 통합하는 게 최종 목표다. 해운업 같은 고전적, 전통적인 시장에서도 기술 스타트업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전통 산업을 기술로 혁신하는 일, 뭐가 제일 힘든가.
우리가 스타트업이다보니 인재 채용에 어려움이 있는 편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도전하는 산업이 젊은 인재들에겐 생소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하기에 (해운은) 전통적인 시장이란 인식이 강한 것 같다. 하지만 그렇기에 첨단 기술의 파급효과를 가장 빠르게, 가장 크게 일으킬 수 있는 분야다. 자율주행 자동차보다 자율운항 선박에서 최신 기술과 제품을 더 빨리 구현할 수 있다. 인공지능 센서 융합, 실시간 영상 스트리밍 등이 똑같이 적용된다. 그 무대가 바다이고, 배라는 게 다를 뿐이다. 이 시장에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게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또 해외처럼 많은 협력 사례가 나오면 좋겠다. 해외에선 완전자율 운항까지 아니어도 반자율 수준에서 기술 상용화가 이뤄지고 있다. 사업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실제 기술을 필요로 하는 회사들이 참여하는 협력 프로젝트가 국내에서도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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