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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진중권 칼럼

반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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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아주 오래전에 한동안 반지하에서 산 적이 있다. 군 복무 중에 휴가를 맞아 어머니께 인사를 시키려고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갔는데, 마침 그날따라 장대비가 내렸다. 집에 들어가니 어디서 새어 나왔는지 벽에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은 그때 그 아이 심경이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영화 ‘기생충’에도 반지하가 등장한다. 영화가 오스카상을 수상하자 오직 한국에만 존재하는 이 독특한 거주공간이 국제적 관심을 모았다. 영국의 BBC는 ‘서울에서 반지하에 사는 진짜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 제목엔 ‘그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빗물에 갇혀 반지하 세 가족 참변
빈부 격차가 생명·생존의 문제로
사회적 취약층 대피계획 중요하나
궁극적으론 ‘탈 반지하’ 계획 필요

인터뷰 속의 인물이 반지하의 생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반지하는 빛이 거의 없어 식물이 자라기 힘들다. 다른 이들이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고 10대들은 때때로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 여름엔 습도로 고통받고 곰팡이가 빨리 자라고 화장실 천장이 너무 낮아 다리를 넓게 벌려야 볼일을 볼 수 있다.”

같은 영화를 보고 한국의 언론과 외국의 언론이 각각 다른 곳에 주목을 한 것이다. BBC는 영화라는 허구 속에 묘사된 현실의 ‘사람들’을 본 반면, 한국의 언론은 그 영화에서 뻗어나가는 한국의 문화적 ‘국력’만을 본 것이다.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일상의 풍경인지라 보고도 미처 보지 못한 채 지나친 것이다.

솔직히 나 역시 반지하를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게 된 연유를 이 기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박정희 시절 1970년 건축법을 개정해 전시에 모든 신축 저층 주택의 지하를 벙커로 사용하도록 했는데, 1980년대 주택위기가 찾아오면서 정부에서 이 공간을 거주 시설로 사용하도록 합법화해 주었다는 것이다.

‘기생충’에는 비 오는 날 반지하 집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다. 장대비를 맞으며 박 사장(이선균)의 저택을 도망치듯이 빠져나온 기택의 가족이 도착한 반지하의 방은 이미 물에 잠겨 가재도구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 장면은 고지대와 저지대의 차이로 빈부 격차를 시각적으로 보여준 명장면으로 꼽힌다.

반지하는 돈 없이 서울에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강요된 선택이겠지만,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이들에겐 주거비를 절약하기 위한 경제적 방편일 수도 있다. 주거비를 아끼는 대가로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다. 문제는 그 대가가 ‘약간의 불편함’ 이상이었다는 데에 있다.

지난 8일 오후 신림동의 한 빌라 반지하에 사는 가족이 빗물에 갇혀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는 40대 여성 발달장애인 A씨와 여동생, 그 여동생의 10대 딸. 당시 병원에 있었던 자매의 70대 어머니가 딸들과 손녀를 구해달라고 이웃에게 요청을 했지만, 이웃들도 끝내 창문 방범창을 뜯어내지 못했다고 한다.

구청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A씨는 다운증후군 장애인으로 기초생활수급자였단다. 그리고 함께 희생된 여동생은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부루벨코리아지부의 총무부장 홍모씨로 밝혀졌다. 홍 씨는 하청업체 노조의 간부로 일하며 노모와 장애인 언니, 그리고 10살 먹은 딸을 부양하고 있었다고 한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의 첫 희생자는 빈국. 한 국가 내에서는 사회적 취약계층일 수밖에 없다. 이번 신림동 비극은 빈부 격차를 상징하는 고지대와 저지대의 차이가 그저 ‘불편함’을 넘어 어느새 ‘생명’ 혹은 ‘생존’의 문제로 변했음을 의미한다. 현실이 허구인 영화보다 더 극적인 셈이다.

대통령은 뒤늦게 신림동 현장을 찾아 “행정안전부와 지자체가 함께 노약자·장애인 등의 지하주택을 비롯한 주거안전 문제를 종합적으로 점검하여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 근본적 대책에도 근본적 물음은 빠져 있다. ‘반지하가 과연 거주공간으로 적합한가?’

원래 박정희 정권에서도 반지하를 주거공간으로 임대하는 것을 금지했다. 군사정권에서도 그곳은 비상시의 대피소이지 일상의 거주공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북한의 포격이나 폭격을 피하기 위한 대피소를 졸지에 일상의 거주공간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악명 높은 서울의 주택난이었다.

물론 반지하 주택을 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80년대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것은 서울의 주택난. 그동안 반지하가 서민의 소중한 집으로 활용되어온 역사도 무시할 수 없다. 재난만이 아니라 개혁의 첫 희생자 역시 늘 사회적 취약층이다. 그곳에서 나가면 당장 이들은 갈 데가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우천시 거주자들을 긴급대피시키는 대책부터 마련해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탈 반지하’의 계획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로 재해의 규모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건강을 넘어 이제 생명까지도 위협하게 된 공간에 사람이 거주하는 것을 국가에서 허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

대통령은 “이분들이 안전해야 비로소 대한민국이 안전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나, 그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란다. ‘이분들이 사는 환경이 대한민국의 주거환경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