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현상의 퍼스펙티브

“윤석열 정부는 어디를 보고 있나”부터 답해야

중앙일보

입력 2022.08.11 00:47

업데이트 2022.08.1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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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잇따르는 정책 혼선, 이유는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최근 여권 내에서 문재인 정부의 홍보 책략가 탁현민(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자주 소환되고 있다. “우리도 그런 인물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탄식들이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바닥에서 헤매는 이유를 홍보나 기획 부족에서 찾는 시선이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출근길마다 기자들 앞에 서는 대통령이지만, 그를 위한 PI(President Identity) 전략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을 고려하면 분명 그렇다. TPO(때·장소·상황)에 맞지 않는 대통령 노출 등을 생각하면 “대통령실에 홍보 마인드가 있기나 한가”라는 의문마저 든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피했던 대통령이 연극 공연을 찾은 사진을 배포하며 대통령실은 도대체 무슨 메시지를 노렸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지지율 추락의 이유를 단순히 홍보 부족으로 돌리는 것은 착각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문제는 홍보 부족이 아니라 철학의 부재다. 설사 철학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명쾌하고 정리된 언어로 전달하지 못하는 소통의 부재가 문제다. 대통령이 매일 기자들 앞에 서거나 혹은 대통령의 일상이 자주 노출된다고 이를 소통이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단편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인 언어는 소통은커녕 리스크만 될 공산이 크다.

큰그림 없이 성과 조급증 내다가
돌출·모순적 정책으로 비난 자초

막연하게 “열심히 뛰자”로는 한계
출범 석 달 넘도록 국정목표 흐릿

정권 방향성·타깃부터 명확해야
국정철학 담은 정책브랜드 시급

조급함이 부른 박순애 참사

퍼스펙티브

퍼스펙티브

박순애 교육부 장관의 퇴진을 부른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안(案)은 국정 철학 부재와 소통 무시가 부른 참사였다. 사달의 배경에는 정부와 장관 개인의 조급증과 강박증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지지율 만회를 위해 ‘획기적인 정책’이 아쉬웠고, 박 장관은 임명 전 논란이 됐던 음주운전 및 논문표절 시비를 씻을 성과가 필요하다 보니 무리수가 나온 것이다.

사실 5세 취학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초등학교 전일제와 결합할만한 정책이다. 오후 1~3시면 하교하는 초등학생을 돌보는 문제는 맞벌이 부부들의 큰 부담이다. 5세 취학은 이를 국가가 맡겠다는 취지였다. 수준이 들쭉날쭉한 사립 유치원에 아이들을 맡기는 부모들의 고충도 덜어주려는 선의도 담겼다. 그러나 5세와 6세 아이의 발달 수준 차이, 해당 연령대의 경쟁 격화, 유치원 등 사교육계의 반발 등으로 역대 정부가 주저해왔던 정책이었다.

‘자녀 양육 부담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국정 청사진 위에서 5세 입학을 장기적 정책 목표로 내걸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덜컥 정책’을 꺼내 놓고는 “좋아, 빠르게 가!”식으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탈이 났다. 전체적 국정 철학 속에서 개별 정책의 의미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과 노력을 무시한 결과였다.

약자와의 동행? 친기업?

정책 혼선은 새 정부의 지향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정과 상식’을 모토로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의 기울어진 정의를 겨룬 전략이다. 상대와 각을 세워야 하는 선거전의 구호로는 제격이었다. 그러나 국정 운영의 기조로 삼기엔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공정과 상식만큼 각자의 기준이 다른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취임사에서 강조한 ‘자유’도 잠깐의 울림은 있을지 몰라도 국민의 삶에 지속적·구체적으로 다가가기는 어려운 개념이다.

윤 대통령은 선거 전략으로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했다. 후보 직속으로 ‘약자와의 동행 위원회’를 만들어 직접 위원장을 맡고 위원에 사회활동가들을 위촉하기도 했다. 김종인을 총괄선대위 위원장으로 영입하며 경제민주화에 관심을 쏟기도 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광주 5·18 묘소를 찾는 등 기존 전통 보수와 달라진 모습도 연출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취임 이후 노동계에 대한 엄격한 법 집행 천명, 탄력 근로제 확대 방침, 부동산 및 법인세 개편 등으로 ‘친기업 및 부자 정부’ 이미지가 세졌다. 여기에 ‘내부 총질’ 발언까지 겹치며 ‘닫힌 우파’의 잔영까지 어른거리게 됐다. 이런 이미지의 혼란은 “윤석열 정부의 정책 지향은 도대체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부른다. 결과적으로 기존 보수층과 중도층 모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일관·통합적 메시지 있어야

국정 철학 부재는 결국 정책 전반을 관통하는 일관되고 통합적인 메시지가 없다는 뜻이다. 개별 정책이 정부 스스로 표방하는 국정 기조와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분절적 정책은 야당의 공격에 쉽게 노출된다. 대오가 흩어진 병력이 각개 격파당하는 꼴이다.

감세안이 한 예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 지점으로 재정 건전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감세안은 건전 재정과는 반대 방향이다. 정부 안대로 세제 개편이 이뤄지면 올해 세수 대비 5년간 누적 감소액은 60조원 정도로 예상된다. 정부는 공공기관 경영 개선이나 부처 지출 구조조정으로 줄어든 세수를 메꾸겠다곤 하지만 한계가 있다. 반면 세입 확충 방안은 경제 성장과 물가 상승에 따른 자연 증가 정도밖에 없다.

법인세 인하는 더욱 논쟁적인 주제다. 정부는 조세 부담이 줄어든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면 경제가 성장하고 결국 세수도 늘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입증되지 않는 좀비 같은 아이디어”라고 혹평한다. 여기서 법인세 감세의 이론적 정합성을 따지자는 건 아니다. 다만, ‘법인세 감소→재정 확충’이라는 스토리 라인이 길고 복잡한 데 비해 ‘법인세 감세=재벌 이득’은 간명하고 직관적이라는 점이다. 야당의 비판을 뚫고 여론의 지지를 얻어 내려면 감세의 철학을 실증 자료와 함께 대중적 언어로 정교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노력이 없다면 여소야대의 견고한 벽을 넘기는커녕 ‘부자 정권’ 공격만 받게 된다.

복잡한 언어로는 이길 수 없다

지난달 하순 새 정부의 첫 장·차관 워크숍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향을 집약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정책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역대 모든 정부는 대표적 정책 브랜드가 있었다. ‘신한국 창조’(김영삼), ‘제2 건국’(김대중), ‘정부 혁신’(노무현), ‘녹색 성장’(이명박), ‘창조 경제’(박근혜), ‘소득주도성장’(문재인) 등이다. 현 정부도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사는 국민의 나라’라는 국정 비전이 있다. 그러나 너무 길고, 방향성도 모호하다. 임팩트가 없다.

캐치프레이즈가 꼭 필요하냐는 지적도 있다. 관치의 냄새가 날 뿐만 아니라 정책 오류를 분식(粉飾)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녹색 성장’은 건설 자본의 이익이 결탁했다는 의심을 받았고, ‘창조 경제’는 ‘도대체 창조가 뭐지’라는 의문을 동반했고, ‘소득주도성장’은 소득과 성장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캐치프레이즈에는 장점이 있다. 국정 방향을 명확하게 전달한다. 정권의 시대 정신을 담은 한 마디가 지지층을 결집하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브랜드를 보자. 케인스 경제학의 한 갈래인 ‘임금주도성장론’에서 차용한 용어다. 여기엔 보수의 전유물이었던 ‘공급 경제’ 프레임을 교체할 필요성, 자영업자가 많은 한국 현실상 ‘임금’을 내세우긴 어렵다는 고민, 지지 외연 확대를 위해선 ‘성장’을 연결해야 한다는 계산 등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다. 물론 ‘소주성’은 결과가 희망을 배반하면서 누구에겐 조롱으로 남고, 누구에겐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정책 지향을 압축해 전달했다는 점에서 브랜드 자체의 효용은 부인하기 힘들다.

정책의 타깃이 명확해야

“스타 장관이 돼라”는 윤 대통령의 주문에 장관들이 언론 헤드라인이 될만한 이벤트에만 몰두한다는 이야기가 관가에서 퍼지고 있다. 대통령의 관심인 반도체 산업을 놓고 산업부와 교육부가 각각 지원 방안과 인력 육성 방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기도 했다. 부처 간 협업을 통해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이 나와도 시원찮을 판에 팀플레이는커녕 각개 전투가 한창이다.

몰려오는 경제 먹구름을 맞으며 윤 대통령은 민생을 자주 언급한다. 민생이란 말은 막연하고 모호하다. 빈곤층도 ‘민’이고, 중산층도 ‘민’이고, 심지어 부자들도 ‘민’이다. 정책의 타깃이 누구를 향하는지 명확해야 지지도 받고 효과도 나온다. 대통령이 출근길마다 하는 즉석 문답도 횟수를 줄이는 등 개선책을 고민해야 한다. 그때그때 이슈를 임기응변으로 쫓다 보면 손 따라 두는 바둑 꼴이 된다. 정제된 언어로 종합적 국정 방향을 설명하고 보여주는 이벤트도 때로는 필요하다.

정치는 정책을 통해 구현된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책이 어떤 맥락과 철학에서 나왔는지를 국민에게 알리는 소통의 기술이 필요하다. 일종의 스토리텔링이다. 지금이라도 부산한 발걸음 대신 통치 철학을 되돌아보고 다듬는 성찰의 시간부터 가져야 한다. 정책 난맥상이 야당과 반대 세력의 ‘프레임 싸움’ 때문이라는 인식에선 답이 나오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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