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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미역 한줄기 8만원, 고유가에 속타는 어민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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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지난달 28일 오후 7시 전남 진도 서거차도항. 마을 주민 12명이 따온 미역 무더기 두 개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전날보다 4배가 많은 돌미역 2000㎏을 수확했지만 박해용(57) 이장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수온 변화 등 여파로 미역 채취량이 매년 눈에 띄게 줄어서다. 박 이장은 “올해 미역 수확량은 10년 전에 비하면 5분의 1 토막 수준”이라고 했다.

맹골수도(孟骨水道) 내 서거차 일대는 자연산 돌미역 중에서도 이름난 진도곽(藿) 주산지다. 진도곽은 자연이 키워낸 돌미역 중에서도 맛과 영양이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8월 현재 서거차도산 마른 돌미역은 길이 90㎝ 한 장당 6만~8만원에 판매된다. 양식 미역(1만원)보다 6배 이상 비싸지만 손이 많이 가고 채취량도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어선에 엎드려 돌미역을 따는 어민. 프리랜서 장정필

어선에 엎드려 돌미역을 따는 어민. 프리랜서 장정필

돌미역은 상품성만큼이나 채취 때 위험성이 크다. 파도에 요동치는 1.2톤급 소형어선에 엎드린 채 갯바위 앞에서 미역을 따야 한다. 작업 중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머리나 얼굴을 바위에 부딪쳐 크게 다치기 일쑤다. 상반신을 배 밖으로 내민 채 작업을 하다가 급류에 휩싸여 숨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어민들은 1년에 한 달가량 진행되는 미역 채취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진도에서 뱃길로 3시간이 걸리는 섬에서 목돈을 쥘 수 있는 이른바 ‘대목’이어서다. 과거 주민들은 매년 7월이면 가구당 1000만 원 안팎을 벌기도 했지만 날로 수입이 줄어든다고 했다. 주민 정해석(55)씨는 “예전에는 뭍에 있는 자식들까지 불러서 10여 차례 작업했는데 올해는 300만원도 못 벌 것 같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천정부지 기름값도 어민들의 수심을 깊게 한다. 지난해 200ℓ(1드럼)당 15만~16만원 하던 면세유가 올해는 32만원을 넘겼다. 그나마 올해는 생산량이 소폭 늘었지만 미역값은 지난해보다 떨어졌다. 지난해 산지에서 8~10kg에 85만원 하던 건미역이 올해는 70만원까지 하락했다. 고유가로 인한 어민들의 고통은 돌미역 업종뿐만이 아닌, 어업 전반에 먹구름을 드리운 상태다.

위험 속에서 돌미역을 따온 어민들에게 희망적인 소식도 들린다. 진도와 신안 일대 돌미역 채취가 국가중요어업유산 지정을 추진 중이다. 해양수산부 어업유산으로 지정되면 전통 돌미역 채취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지원이 이뤄진다.

어민들도 어업유산 지정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보호장비나 관리용 선박 등이 확충돼 보다 안전하게 미역 채취를 할 길이 열려서다.

국가의 지원으로 전통의 맛을 지키면서도 현장의 고통을 덜 수 있는 해법이 나올지 주목된다. 바닷일의 위험을 무릅쓰는 어민들이 사라진다면 우리 고유의 어업유산도 맥이 끊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