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몰랐을까.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졸속 추진이 가져올 후폭풍 말이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가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국민학교 취학 연령 하향을 추진했을 때도 민심은 싸늘했다. 1995년 서울시교육청이 만 5세 이하 자녀를 둔 서울시내 학부모 5198명에게 물었는데 77.6%가 반대했다. 결국 법을 개정해 선택적 조기 입학의 문을 열어두는 수준에 그쳤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때도 여론이 우호적인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박순애 당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업무보고를 받고 “초등학교 학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같은 날 교육부는 2025년부터 4년에 걸쳐 추진한다는 구체적 방안까지 내놨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놓으니 사회적 합의를 아무리 강조한들 논의는 진전시킬 수 없었다.
열흘간의 논란은 박순애 사퇴로 마무리됐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자진사퇴 형식이었지만 만취 음주운전 전력 등으로 말 많던 교육부 수장을 내치는 식으로 수습한 모양새라서다. 박 전 장관의 자질 논란 당시 “이전 정권 장관 중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고 반문했던 윤 대통령의 발언이 새삼 회자되는 이유다.
30년 된 해묵은 이슈를 교육개혁으로 포장하려 했던 대통령실도 책임이 적지 않다. 졸속 추진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개혁 정책도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갈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뜻’을 강조했지만 ‘만 5세 입학=좋은 개혁’이라는 등식을 전제로 한 발언이기도 했다.
만 5세 입학 제도가 환영받으려면 초등학교 개념과 역할부터 바꿔야 한다. 한글을 못 뗀 아이, 책상에 30분도 못 앉아 있는 아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스스로 뒤처리를 못 하는 아이들도 불편함이 없도록 보살필 수 있는 공교육 시스템이 가능한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정규 수업 이후의 돌봄 공백을 해소하는 건 그 다음 문제고 말이다.
대통령실 해명대로 만 5세 입학은 ‘국가교육책임제 강화’를 골자로 한 교육개혁 퍼즐의 한 조각이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순애 사태’로 드러난 건 신뢰받지 못하는 공교육의 민낯, 그리고 현정부의 인사 무능이다.
이제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새로운 교육부 수장이 누구인지보다 더 궁금한 건 윤 대통령의 교육 철학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의 외침처럼 아이들이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있는” 정책에 관심이 있는지 말이다. 그래야만 ‘좋은 개혁’의 진정성이 전해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