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의 외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경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경희 EYE팀 기자

김경희 EYE팀 기자

정말 몰랐을까.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졸속 추진이 가져올 후폭풍 말이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가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국민학교 취학 연령 하향을 추진했을 때도 민심은 싸늘했다. 1995년 서울시교육청이 만 5세 이하 자녀를 둔 서울시내 학부모 5198명에게 물었는데 77.6%가 반대했다. 결국 법을 개정해 선택적 조기 입학의 문을 열어두는 수준에 그쳤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때도 여론이 우호적인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박순애 당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업무보고를 받고 “초등학교 학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같은 날 교육부는 2025년부터 4년에 걸쳐 추진한다는 구체적 방안까지 내놨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놓으니 사회적 합의를 아무리 강조한들 논의는 진전시킬 수 없었다.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8일 사퇴했다. [연합뉴스]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8일 사퇴했다. [연합뉴스]

열흘간의 논란은 박순애 사퇴로 마무리됐지만 뒷맛이 씁쓸하다. 자진사퇴 형식이었지만 만취 음주운전 전력 등으로 말 많던 교육부 수장을 내치는 식으로 수습한 모양새라서다. 박 전 장관의 자질 논란 당시 “이전 정권 장관 중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고 반문했던 윤 대통령의 발언이 새삼 회자되는 이유다.

30년 된 해묵은 이슈를 교육개혁으로 포장하려 했던 대통령실도 책임이 적지 않다. 졸속 추진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개혁 정책도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갈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뜻’을 강조했지만 ‘만 5세 입학=좋은 개혁’이라는 등식을 전제로 한 발언이기도 했다.

만 5세 입학 제도가 환영받으려면 초등학교 개념과 역할부터 바꿔야 한다. 한글을 못 뗀 아이, 책상에 30분도 못 앉아 있는 아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스스로 뒤처리를 못 하는 아이들도 불편함이 없도록 보살필 수 있는 공교육 시스템이 가능한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정규 수업 이후의 돌봄 공백을 해소하는 건 그 다음 문제고 말이다.

대통령실 해명대로 만 5세 입학은 ‘국가교육책임제 강화’를 골자로 한 교육개혁 퍼즐의 한 조각이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순애 사태’로 드러난 건 신뢰받지 못하는 공교육의 민낯, 그리고 현정부의 인사 무능이다.

이제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새로운 교육부 수장이 누구인지보다 더 궁금한 건 윤 대통령의 교육 철학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의 외침처럼 아이들이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있는” 정책에 관심이 있는지 말이다. 그래야만 ‘좋은 개혁’의 진정성이 전해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