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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36) 초승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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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초승달
이기선(1953∼)

전어를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렸다
칵! 하고 내뱉으니 창문을 뚫고 날아가
저물녘 하늘에 박혔다
구름에 피가 스민다
-한국현대시조대사전

단시조가 다다르고자 하는 세계

미당 서정주 시인은 초승달을 ‘님의 고운 눈썹’으로 보았는데 이기선 시인은 가시로 보았구나. 그것도 목에 걸려 내뱉으니 창문을 뚫고 날아가 하늘에 박혔다니 다누리호보다 빠른 상상력의 힘이로구나. 장마 갠 저물녘 저 하늘이 왜 저리 붉나 했더니 바로 그 가시에 박혀 흘린 피가 스며서였구나. 이기선 시인은 ‘가시’를 소재로 한 시조 한 편을 더 썼다.

‘어매는 입을 가리고 나직이 칵칵 거렸다/ 알뜰히 살을 발라 내 입에 넣어주고/ 남은 살 빨아먹다가/ 목에 걸린 가시// 어매 살아생전 목구멍에 박혀서/ 툭하면 목을 쑤시고 가슴팍 찌르더니/노을을 건너시던 날/ 내 가슴에 박혔다’

어려운 시대를 사신 우리의 어머니들은 이러하였다. 뜨거운 눈물 없이는 읽기 어렵다. 유성규 시인은 이기선의 시조집 『불꽃놀이가 끝난 뒤』에 대해 “풍부한 어휘력이나 고도의 수사학, 특히 극도로 절제된 응축력이나 시공을 넘어선 예술적 극치”라고 평했다. 단시조가 다다르고자 하는 세계가 바로 이러할 것이다. 오랜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작품을 주목하는 이유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