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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반지하 장애인 가족의 비극,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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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침수피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서울 신림동 빌라를 찾아 현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침수피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서울 신림동 빌라를 찾아 현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대통령실]

빗물 차오르는 집에서 도움 청했으나 참변

창살에 갇히고 119 신고전화도 연결 안 돼

지난 8일 오후 수도권에 내린 폭우로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숨진 일가족의 사연이 시민들을 안타깝게 한다. 마지막까지 통화했던 지인에 따르면 사고가 나던 오후 8시30분쯤 세 가족은 깨어 있었다. 장애가 있는 언니 A씨(48)와 동생 B씨(47), 그리고 B씨의 딸(13)은 빗물이 밀려드는 집에서 탈출하려 했으나 수위가 높아 현관문이 열리지 않았다. 집 밖으로 나갈 마지막 통로인 유리창엔 방범용 창살이 있었다. 구조를 요청하려고 119에 전화를 걸었으나 폭주하는 신고 때문인지 연결이 안 됐다고 한다. 지인에게 도움을 청해 119에 신고가 들어갔으나 구조대원이 도착해 창살을 뜯어냈을 땐 이미 물이 가득 차오른 뒤였다.

자연재해가 닥쳐도 대비가 철저하면 많은 생명을 살린다.

수도권 반지하의 비극은 오래전부터 반복됐다. 2011년 폭우 땐 서울 방배동 전원마을의 반지하 주택에서 비슷한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몇몇 반지하 주민은 남성들이 힘을 합쳐 방범창을 뜯어낸 덕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5년 전엔 인천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 치매 노인이 변을 당했다. 반지하 주택이 홍수에 취약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0년 3월 반지하 및 지하 주택의 환경을 분석한 자료에서 ‘집중호우 시 침수 피해에 대한 위험’을 가장 먼저 꼽았다.

1970년대 유사시 대피 공간으로 조성돼 26만5000가구(2019 주거실태조사)에 이른 한국 반지하의 열악한 상황은 이제 외국에서도 안다. 2020년 2월 아카데미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큰비가 오면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는 한국의 반지하를 세계에 알렸다. ‘banjiha’라는 단어까지 나왔다. 영국 BBC 등이 반지하를 찾아가 르포 기사를 썼다.

당시 서울시는 영화 촬영 현장을 돌아보는 ‘기생충 투어’로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한편, 반지하 환경을 개선하는 맞춤형 집수리 지원에 나선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수마가 덮치자 주거 취약계층의 안전을 위한 조치는 전무했음이 드러났다. 수해에 무방비였고 차오르는 물을 보며 애원하는 순간에도 구조의 손길은 닿지 않았다. 심지어 신고조차 불가능했다. 집 안 익사(溺死)의 비극이 반복되는 동안 지자체와 정부는 무엇을 준비했다는 말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그제 반지하 참변 현장을 돌아보고 “노약자·장애인 등의 지하 주택을 비롯한 주거 안전 문제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어제 대책회의에선 “정부를 대표해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반지하에서 17년 정도 살았다는 임건순 작가는 “창살 현황부터라도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고가 터지거나 ‘기생충’ 같은 이벤트가 생길 때만 반짝 하는 관심으로는 58.9%가 월세로 사는(국회 입법조사처) 반지하 주민을 보호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