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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풀뿌리 경제주체 새출발을 위한 채무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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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주소현 이화여대 소비자학과 교수

주소현 이화여대 소비자학과 교수

정부는 지난달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금융 애로 완화 등을 담은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포함된 새출발기금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부실 및 부실 우려 채권을 매입해 채무조정을 돕기 위해 30조원 규모의 지원을 하는 내용이다. 이 같은 채무조정을 위한 지원책이 발표될 때마다 도덕적 해이 문제가 논란이 돼왔고, 이번에도 연체 기간이 90일 이상 된 부실차주에 대해서는 원금 감면을 지원한다는 내용은 얼핏 보면 빚을 성실히 갚아온 이들에게 역차별로 보일 수 있다.

채무조정은 과다한 채무로 인해 빚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정상적인 금융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 재기의 기회를 주는 제도다. 과다한 채무로 연체가 지속하고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되면 신규대출이나 신용카드 사용 등이 제한되는 등 정상적인 금융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금융생활이 제한되는 경우 채무를 변제하기 위한 경제활동에도 제약이 따르게 돼 부채의 늪에 빠지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을 수반하게 된다. 빚을 성실히 갚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금융시장의 약속이기에 채무조정이나 원금감면 등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필자가 자산관리공사에서 채무조정 희망자의 채무감면 지원을 심사하는 채무조정심의위원회의 외부위원으로 활동해온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우려는 과도한 면이 있다.

일반적인 채무조정에서 원금감면은 채무자가 보유한 재산과 소득을 초과한 부채 분에 한하여 지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며, 원금의 대폭적인 감면은 사실상 원금상환 여력이 없는 취약계층에 한해 적용된다. 재산과 소득을 통해 빚을 갚을 수 있는 경우에는 원금감면이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채무조정 제도는 도덕적 해이를 막는 공정하고 엄격한 이중·삼중의 심사과정이 존재하며, 고의로 사실이 아닌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 약정이 취소되는 등 페널티가 따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채무조정 제도를 이용하는 다수는 재기 지원이 절실한 금융 취약계층이다. 이들은 대부분 조금의 도움만 주어진다면 성실히 빚을 갚아 경제주체로 복귀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소중한 풀뿌리 경제주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계층이다. 부디 새출발기금이 모두가 공감하는 공정성과 형평성을 갖춰 이름처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빚 부담을 덜고 새롭게 출발하는 데 발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주소현 이화여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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