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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처분 승부수’ 던진 이준석…법원 결정에 따른 시나리오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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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달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민의힘 대회의실에서 열린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출석해 소명을 마친 후 회의실을 나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달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민의힘 대회의실에서 열린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출석해 소명을 마친 후 회의실을 나서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한국 정치사 초유의 법적 공방이 현실화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0일 자신의 대표직을 박탈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려는 당의 결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며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집권 여당 지도 체제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가처분 신청을 전자로 접수했다”고 썼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채무자를 ‘국민의힘’과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적시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서울 남부지방법원에 접수했다. 이 대표는 가처분 신청 직후 한 언론에 “‘절대 반지(권력)’에 눈이 먼 사람들이 기록적인 폭우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의 심려가 큰 상황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비대위를 강행했다”며 “사안의 급박성 때문에 가처분을 내야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전날 의원총회와 전국위원회를 거쳐 5선의 주호영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조만간 전국위 의결을 거쳐 주 위원장이 비대위원을 모두 임명해 비대위가 공식 출범하면 이 대표는 자동 해임된다.

비대위 전환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줄곧 “절차가 잘못됐다”며 가처분 신청을 예고했던 이 대표는 주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첫날에 곧바로 법적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가처분이란 민사집행법 제300조에 따라 ‘권리에 끼칠 현저한 손해를 피하거나 급박한 위험을 막기 위한’ 절차다. 비대위 전환의 무효 여부를 다투는 본안 소송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단 신속한 가처분 결정을 통해 채권자(이준석 대표)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절차다.

이 대표는 가처분 신청의 구체적인 대상 및 범위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당과 주호영 위원장이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내용을 함구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법원은 17일 오후 3시를 가처분 결정 심문기일로 잡았는데, 이 대표가 함구함에 따라 국민의힘과 주 위원장은 법원으로부터 공식 통보를 받아야 구체적인 가처분 신청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전 국회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전 국회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당내에선 이 대표가 가처분 신청한 항목이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나뉠 것으로 보고 있다. ①지난달 8일 당 윤리위원회의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 결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②지난 2일 당 최고위원회의의 상임전국위원회·전국위원회 개최 의결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③지난 9일 전국위원회의 비대위원장 임명 의결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④주호영 비대위원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등이다. 이외에도 ▶최고위원 1명이 사퇴하지 않은 상황을 당헌 96조의 ‘최고위원회 기능 상실’로 보고 비대위를 출범시킬 수 있는지 여부 ▶원내기구인 의원총회에서 비대위 출범 근거인 ‘비상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이 주요한 법적 공방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내에선 결국 ②번 가처분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일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주재로 열린 최고위에선 비대위 체제 전환을 위한 상임전국위·전국위 개최 안건을 의결했는데, 이 자리에는 배현진·윤영석 최고위원 등 이미 사퇴를 선언한 최고위원들이 참석해 의결에 참여했다. 이 대표는 지난 2일 이 문제를 거론하며 “‘저는 오늘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합니다’라고 7월 29일에 육성으로 말한 분이 표결 정족수가 부족하다고 8월 2일에 표결한다. ‘언데드(산송장)’ 최고위”라고 비판했다. ‘사퇴 선언’ 자체를 사퇴로 본 이 대표와 달리 두 최고위원은 당시 “아직 사직서를 제출한 게 아니어서 사퇴한 상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 대표 측에선 ③번과 ④번 가처분 역시 인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전국위 의장인 서병수 의원은 전국위 개최 전부터 이미 여러 차례 “비대위를 만드는 즉시 비대위원장이 당 대표 권한을 갖고 전임 지도부는 해산된다. 이 대표도 자동 해임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대표 측은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자동 해임’을 명시한 항목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당 관계자는 “통상 비대위가 구성될 때는 대표가 자진사퇴를 해왔기 때문에 해임이라는 단어를 쓸 일이 없었다”며 “대표가 ‘내 지위는 아직 살아있다’고 주장할 경우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페이스북 캡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페이스북 캡처

①번 가처분은 기각되고 ②번 또는 ③번 또는 ④번 가처분이 인용되면 천신만고 끝에 전환된 비대위 체제는 수포로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비대위 출범의 근거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이 대표에 대한 윤리위의 중징계는 여전히 효력이 있기 때문에 권성동 원내대표가 다시 대표 직무대행을 겸임해야 한다. 그러나 권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직무대행으로서의 역할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고, 지도부에서 다음 순번으로 직무대행을 맡게 될 조수진·배현진·윤영석 최고위원은 이미 사퇴를 선언한 상황이다. 이 경우 사퇴하지 않은 김용태 청년최고위원이 직무대행을 맡게 된다는 게 이 대표 측의 주장이다.

비대위 전환의 단초가 된 윤리위 징계 결정의 무효를 주장한 ①번 가처분까지 인용될 경우 이 대표가 대표직에 복귀할 수도 있다. 다만 당내에선 “‘대표가 당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등 정치적인 판단인 윤리위 결정에 대해선 인용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8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 등이 모인 '국민의힘 바로 세우기'(국바세) 주최로 열린 대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8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 등이 모인 '국민의힘 바로 세우기'(국바세) 주최로 열린 대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 대표 측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더라도 모든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 입장에선 “전당대회에서 정당하게 뽑힌 대표를 자의적인 당헌·당규 해석과 부당한 절차를 통해 해임하는 게 나쁜 선례”라는 주장을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 대표는 비대위 출범 즈음인 13일 기자회견을 예고한 상태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모임인 ‘국민의힘 바로 세우기(국바세)’도 11일 책임당원 1558명이 참여하는 집단소송을 진행한다.

당내에선 이 대표에게 유리한 가처분 결정이 나와 당이 혼란에 빠지는 데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주호영 위원장이 계속해서 이 대표와의 접촉을 시도할 전망이다. 주 위원장은 이날 “이 대표와 다각도로 접촉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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