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울시 "반지하 주택 없앤다"…기존 주택은 20년 유예기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주택의 상당수가 취약계층 거주지로 알려지면서, 서울시가 지하·반지하 주택에서 사람이 주거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장기적으로 서울 시내에서 지하·반지하 주택을 완전히 없앤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10일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시민들이 주거 목적으로 지하·반지하에서 거주하지 못하도록 건축법 개정을 정부와 협의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가족이 지난밤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가족이 지난밤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상습침수구역 아니어도 규제

현행 건축법엔 반지하 주택 신규 건축허가를 제한하는 근거 규정이 존재한다. 건축법 11조는 ‘상습적으로 침수되거나 침수가 우려되는 지역에 건축하려는 건축물의 지하층 등 일부 공간을 주거용으로 사용하거나 거실을 설치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인정될 경우’ 건축위원회 심의로 건축을 불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집중호우 당시 저지대 노후 주택가에서 인명·재산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하자 서울시가 법 개정을 건의해 받아들여진 결과다.

서울 시내 주택에서 신림 수해 복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수민 기자

서울 시내 주택에서 신림 수해 복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수민 기자

하지만 이러한 조항을 시행한 2012년 이후에도 서울시에 4만호 이상의 반지하 주택이 들어섰다. 2020년 기준 서울 전체 가구의 5%에 해당하는 20만호의 지하·반지하 주택이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상습 침수구역이나, 침수 우려 구역이 아니더라도 지하층은 사람이 살 수 없도록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이번 주중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에 건축허가 심사 과정에서 지하층을 주거용으로 허가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건축허가 원칙’을 전달할 계획이다. 법 개정 때까지 시간이 걸려서다.

기존 주택은 10~20년 유예기간 후 일몰

윤석열 대통령이 9일 간밤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다세대 주택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9일 간밤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다세대 주택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또한 기존 주거용 지하·반지하 주택은 일몰제를 추진한다. 10~20년 유예기간을 두고 이미 허가한 지하·반지하 건축물을 순차적으로 없애 나가는 제도다.

지하·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는 세입자가 나가면, 인센티브를 제공해 비주거용 주택으로 용도 전환을 유도한다. 세입자가 나가고 공실인 지하·반지하 주택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의 ‘빈집 매입사업’을 통해 사들이는 방안도 추진한다. SH공사는 이를 주민 공동창고나 커뮤니티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

또 근린생활시설·창고·주차장을 비주거용으로 전환할 경우 리모델링을 지원하거나 정비사업 추진 시 용적률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시는 상습 침수·침수 우려 구역에선 모아주택·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적용해 환경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이 지역에서 거주 중인 세입자는 ‘주거 상향 사업’을 통해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지원하거나 주거바우처 등을 제공한다.

오세훈 “지하·반지하 주택은 후진적…사라져야”

5년 단위 반지하 가구수 변동 현황. 그래픽 김경진 기자

5년 단위 반지하 가구수 변동 현황. 그래픽 김경진 기자

시는 이달중으로 반지하 주택 1만7000호를 대상으로 현황을 파악해 대책 마련에 나선다. 이후 시내 전체 지하·반지하 주택 20만호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해 위험단계(1∼3단계)를 구분해 관리할 예정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하·반지하 주택은 안전·주거환경 측면에서 주거 취약 계층을 위협하는 후진적 주거유형”이라며 “시민 안전을 지키고 주거 안정을 제공하기 위해서 지하·반지하 주택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거 환경이 열악한 지하·반지하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주택을 허가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이 거의 유일할 것”이라며 “이미 지하·반지하에서 거주 중인 세입자가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월세 지원이나 저리 융자 등 해택을 제공해 이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장진범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수료)는 “과거에도 정책적으로 산동네·달동네를 없앴더니 이들이 반지하에 거주하게 됐다”며 “무작정 반지하 주택을 없애는데 정책을 집중하면, 풍선효과처럼 이들이 고시원·쪽방·비닐하우스로 이동해 또 다른 형태의 주거 빈민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반지하 주택 자체를 없애는데 주력하기 보다는 도시빈민의 주거권 향상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기도도 반지하 주택에 대한 실태조사와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6월 말 기준 경기도 반지하 주택은 8만7914세대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9일 경기도 광명시 이재민 임시거주시설을 방문해 ‘이재민 대부분이 반지하에 거주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담당 부서에 “이른 시일 내로 실태조사를 통해 반지하처럼 침수가 잦은 지역의 현황을 파악해 달라”고 지시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