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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칩4, 배타적 운용 어렵다"에 왕이 "신중 판단 바란다"

중앙일보

입력

박진 외교부 장관은 9일 한중 외교장관회담 직후 만찬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한국 방문을 요청하며 북한산 등반을 제안했다. 앞서 회담에서도 왕 위원은 "짜장면을 먹으러 한국에 가겠다"고 말했는데, 이같은 박 장관의 제안에 대해서도 "하오"라고 답했다. [외교부 제공]

박진 외교부 장관은 9일 한중 외교장관회담 직후 만찬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한국 방문을 요청하며 북한산 등반을 제안했다. 앞서 회담에서도 왕 위원은 "짜장면을 먹으러 한국에 가겠다"고 말했는데, 이같은 박 장관의 제안에 대해서도 "하오"라고 답했다. [외교부 제공]

“다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같이 북한산에 오릅시다.”
“하오(好, 좋습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9일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서 개최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의 회담 직후 만찬에서 북한산 등반을 제안했다. 박 장관은 한국대학산악연맹 고문이고, 왕 위원은 중국 외교부 등산협회 명예회장이다.‘등산’이 이번 만남에서 두 사람의 대화 소재로 활용됐다.

하지만 외교 협의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반도체 공급망 연합체, 팹4로도 불림)와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한류 제한령),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 관계, 북한 비핵화를 놓곤 양측의 지향점이 크건 작건 엇갈렸다.

9일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 전 인사를 나누는 박진 외교부 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외교부 제공]

9일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 전 인사를 나누는 박진 외교부 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외교부 제공]

칩4와 관련 박 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중국 측이 불편해할 수 있는 칩4 예비회의 참석 사실을 통보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칩4는 중국을 배제할 의도가 없고, 한국이 칩4와 중국 간 협력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박 장관의 발언을 왕 위원이 경청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10일 “(회담에서) 왕 위원이 먼저 ‘칩4 문제에 대해 한국이 어떤 입장이냐’고 물었고, 우리는 국익과 원칙에 입각해 상생공영을 기준으로 우리 입장을 검토하고 결정할 것이라 답했다”며 “우리의 개방형 경제와 중국과의 교역 구조를 감안할 때 (칩4가) 중국에 배타적으로 운용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이같은 입장에 왕 위원은 “한국이 신중하게 판단하길 바란다”고 답했다고 한다. 중국이 칩4를 놓고 발언 수위를 조절했지만, 향후 한국을 상대로 칩4를 중국 배제에 활용하지 말라고 요구할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점에서 뇌관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라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중국이 칩4를 놓고 공개 충돌을 피한 건 한국의 반도체 입지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 반도체에선 파운드리(위탁 생산)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진 만큼, 중국 역시 한국을 상대로 압박 일변도의 전략만을 취하기는 어렵지 않으냐는 관측이다. 또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국이 미·중 경쟁 속 무게 중심을 미국 측에 옮기는 명확한 시그널을 보낸 것 자체가 대중 레버리지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북한 비핵화 협력의 경우 북한의 모라토리엄(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유예)을 파기하고 7차 핵실험 동향을 보이는 등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한·중 차관급 2+2(외교·국방) 외교·안보 대화를 연내 추진키로 했다. 단 중국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결 조건인 북·미 관계 개선을 둘러싼 미국의 소극적 태도를 지적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왕 위원은) 북·미 관계에 있어 그동안 미국이 보여온 소극적 태도에 아쉬움을 표명하며, 유관국이 보다 적극적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북한을 향해 제재·압박 기조로 일관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불만을 한국에 전한 셈이다.

주한중국대사관이 10일 언론에 배포한 대만 문제 관련 논평. [주한중국대사관 제공]

주한중국대사관이 10일 언론에 배포한 대만 문제 관련 논평. [주한중국대사관 제공]

중국 측은 '핵심 이익'으로 평가되는 대만 문제와 관련 외교장관 회담 이튿날 주한중국대사관이 발표한 논평을 통해 자국 입장을 강조했다.

주한중국대사관, "황당무계 미국" 이례적 논평 

대사관 대변인 명의의 이 논평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중국의 강력한 반대와 엄정한 교섭에도 기어이 중국 대만 지역을 방문해 대만해협 정세의 긴장을 고조시켰다”며 “미국은 연일 대만 관련 문제에 거듭 황당무계한 논리를 퍼뜨리며 중국의 정당한 훈련과 반격 조치에 대해 일방적으로 현 상황을 변화시키고 정세의 안정을 해친다며 모함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중국 외교부가 아닌 주한 중국대사관이 대미(對美) 비난 메시지를 담은 논평을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대만 문제는 이번 외교장관 회담 말미에 짧게 논의가 오갔는데, 중국 측에선 자국의 입장 표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판단 하에 별도의 입장 발표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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