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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과 그림으로 버텼다....이건희컬렉션으로 보는 이중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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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현해탄, 1954, 종이에 펜, 유채, 크레용,, 13.7x21.5cm. 이건희컬렉션.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현해탄, 1954, 종이에 펜, 유채, 크레용,, 13.7x21.5cm. 이건희컬렉션.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나뭇잎과 두 아이, 1941, 종이에 펜, 채색, 9X14cm.이건희컬렉션.[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나뭇잎과 두 아이, 1941, 종이에 펜, 채색, 9X14cm.이건희컬렉션.[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손바닥만 한 화면에 온 가족이 담겼다. 푸른 파도 위에 조각배, 두 팔을 벌리고 웃고 있는 부부와 두 아들, 물고기 다섯 마리도 덩달아 신났다. 화가 이중섭(1916~1956)이 1954년에 그린 '현해탄'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일본에 머무는 가족을 만날 것이라는 화가의 희망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러나 이중섭은 2년 뒤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가족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해방 전후시대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작가 이중섭의 삶과 작품은 이렇게나 달랐다. 남루하고 고단한 현실에서 이상으로 버틴 그는 가장 천진하고 행복한 풍경으로 자신의 삶을 완성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특별전 2탄 #이중섭 1940~50년대 작품 조명 #이중섭 작품 11점에서 10배로 #엽서화, 은지화, 회화 총 90점 #12일 개막해 내년 4월까지 열려

'현해탄'은 고(故) 이건희 회장이 소장해온 이중섭의 100여 점의 작품 중 하나로 관람객에게 곧 공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을 서울관 1전시실에서 오는 12일부터 내년 4월 23일까지 연다. 이중섭 작품 90여 점을 한 자리에서 보여주는 대규모 전시다.

이번 전시에선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1488점의 이건희컬렉션 중 이중섭 작품 104점 가운데 80여 점과 미술관 기존 소장품 11점 중 10점을 합쳐 총 90여 점이 공개된다. 지난해 7월부터 지난 6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컬렉션 특별전:한국미술명작'에 이은 2탄 전시다.

이전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이중섭 작품은 11점에 불과했으나 이건희컬렉션이 기증되며 현재 총 115점으로 늘어났다. 단숨에 10배로 늘어났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타 기관에서 작품을 빌려오지 않고 오로지 소장품으로만 한국 미술사의 주요 작가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건희컬렉션에서 이중섭 작품은 국내외 작가를 통틀어 유영국, 파블로 피카소에 이어 가장 많다. 그중 엽서화와 은지화가 총 67점에 달하며 이번 전시에서도 53점으로 그 비중이 크다.

'닭과 병아리'(1950년대 전반)와 '물놀이하는 아이들'(1950년대 전반) 등 두 점이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며, '춤추는 가족' (1950년대 전반)과 '손과 새들'(1950년대 전반)은 1986년 호암미술관 전시 이후 36년 만에 처음 공개된다.

1940년대 초기 연필화  

이중섭, 여인, 1942, 종이에 연필, 41,2x23.6cm. 이건희컬렉션.[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여인, 1942, 종이에 연필, 41,2x23.6cm. 이건희컬렉션.[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세 사람, 1942-1945, 종이에 연필 , 18.3x27.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세 사람, 1942-1945, 종이에 연필 , 18.3x27.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이중섭의 작품세계를 1940년대와 1950년대로 나눠 소개한다. 1940년대는 연필화와 엽서화, 1950년대는 제주도, 통영, 서울, 대구에서 그린 전성기의 작품과 은지화와 편지화가 많다.

1940년대 작품 중에선 여인상과 소년상 등 연필화 4점이 특히 눈길을 모은다. 훗날 아내가 된 연인을 머리 긴 소녀의 뒷모습으로 표현한 '여인'(1942)은 이건희컬렉션 기증작이고, 화면에 대담한 구도로 인물을 꽉 채워 그린 '세 사람'은 미술관 기존 소장품이다. 우현정 학예연구사는 "이중섭에게 연필화는 단순한 밑그림이 아니라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었다"며 "'세 사람'은 당시 암울한 사회상을 반영하듯 삶의 피로와 좌절감, 무력을 드러내지만, 이중섭이 누운 소년의 손과 발을 두드러지게 부분 등 디테일을 눈여겨볼 만하다"고 말했다.

그리움으로 완성한 그림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1950년대 작품엔 새와 닭, 소, 아이들, 가족을 그린 회화 작품과 더불어 출판미술, 은지화, 편지화, 말년에 그린 풍경화 등이 포함됐다. '가족과 첫눈'(가족과 첫눈)엔 커다란 새와 물고기 사이에서 첫눈을 맞으며 뒹구는 가족들이 담겼다.1945년 결혼한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약 7년에 불과하다. 이중 1951년 1월부터 제주도 서귀포에서 약 1년을 지냈는데, 유족들은 이 시기를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꼽는다고 한다. 당시 제주에서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가족이 함께 걸었던 기억이 작가에게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길바닥과 쓰레기통에서 주워 그린 것으로 알려진 은지화에도 주로 가족과 아이들의 모습이 담겼다. 은지화는 알루미늄 속지에 철필 또는 못을 사용해 윤곽선을 눌러 그리고 선 위에 물감을 올린 뒤 문지르는 방식으로 완성한 것으로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엔 이중섭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소' 그림은 없다. 현재 '황소'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이고, '흰소'는 9월 11일부터 LACMA(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 한국근대미술전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우 학예사는 "우리가 그동안 익숙하게 보아온 이중섭 작품은 1950년대에 완성된 것들"이라며 "이번 전시를 보면 그가 50년대에 이룩한 성과가 40년대에 숱한 실험을 통해서 정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중섭은 1950년 월남한 뒤 56년 사망하기 전까지 제주도, 통영, 대구, 서울 등지로 옮겨 다니며 작업을 계속했다. 특히 53년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머물던 통영에서 소 연작 등 대표작을 그렸으며, 55년 1월 미도파백화점에 열린 전시를 앞두고는 매일 그림을 그릴 정도였다. 그러나 55년 두 차례의 전시 이후 간경화 거식증 등으로 건강이 악화했고, 이듬해 9월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났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중섭이 삶의 이야기와 그림들이 매우 밀접하게 만나고 있다"며 "이번 전시는 이중섭의 삶과 예술세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살필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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