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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경찰국장은 80년대 '프락치'? 與 "확인 안된 정치공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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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안팎의 우려와 반발을 뒤로하고 지난 2일 공식 출범한 행정안전부 경찰국이 이번엔 초대 국장의 과거를 두고 홍역을 치르고 있다. 김순호 경찰국장의 입직 과정을 두고 ‘프락치(끄나풀)’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권 공방의 전선은 ‘경찰국 신설 의도와 절차’에서 ‘김 국장의 과거’로 확산되고 있다.

제기된 의혹은 김 국장이 과거 자신이 활동했던 노동운동단체(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 회원들을 밀고한 뒤 지난 1989년 경장 보안 특채(현 경력경쟁채용)로 입직했다는 게 골자다. 의혹 제기에 앞장 선 건 김 국장과 함께 했던 전 인노회원과 그 가족들이다. 인노회원이었던 박경식씨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순호는 1989년 4월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때부터 인노회 활동하던 사람들이 잡혀가기 시작했다”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가 경찰 특채됐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1989년 당시 인노회는 이적단체로 분류돼 수사를 받아 핵심회원들이 구속되는 등 처벌을 받았지만 지난 2020년 재심을 거쳐 이적단체성이 부인됐다.

김순호 초대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이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경찰국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김순호 초대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이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경찰국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프락치 특채”vs “정치 공세”

경찰청이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989년 8월 경장으로 특채된 김 국장은 인노회 수사를 담당했던 대공수사3과에 배치됐고 치안본부가 폐지되고 경찰청이 설립(1990년 12월 27일)된 이후에도 1998년 7월까지 본청 보안 분야에 종사했다. 당시 경찰 직제에 따르면 김 국장이 입직 초기 일했던 보안5과의 업무는 ‘중요좌익사범에 관한 사항’이었고, 이후 보안5과의 기능을 흡수한 보안4과의 업무는 ‘노동ㆍ사회분야 간첩 등 보안사범의 수사와 지도ㆍ조정에 관한 사항’이라고 규정돼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 경찰장악저지대책단’ 단장 서영교 의원은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행령으로 경찰국을 만드는 위헌·위법한 만행을 저지르더니 군사정권 시절, 정권의 끄나풀 역할로 특채된 경찰을 경찰국장으로 앉혔다”고 주장했다.

이해식 민주당 의원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경찰국 신설을 강행한 것은 경찰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그런 곳(경찰국)에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동료들을 밀고해 혜택을 받은 사람을 초대 국장으로 임명한 것은 시대에 맞지 않으며 민주화 운동을 모독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6일 행정안전위를 열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에 대해 행안위 소속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야당의 (김 국장에 대한) 문제 제기가 팩트인지 아닌지 검증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정치 공세로 몰고 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응했다.

김 국장은 프락치 활동의 대가로 입직했다는 의혹은 부인하면서 보안수사 이력엔 소신을 밝히는 정면 대응 태세다. 김 국장은 지난 6일 당시 인노회 활동을 ‘골수 주사파(주체사상파) 운동’이라고 규정한 뒤 “민주화 노동운동으로 미화시키거나 둔갑시켜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입직 경위에 대해선 지난 1989년 인노회 수사가 시작된 뒤 몸을 피해 낙향했다가 회의를 느껴 자백하고, 경찰에 입직했다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국 신설 규탄, 김순호 경찰국장·이상민 행안부 장관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국 신설 규탄, 김순호 경찰국장·이상민 행안부 장관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경찰청장도, 행안부 장관도 “몰랐다”는 그의 과거

김 국장을 둘러싼 공방은 그를 추천했다는 윤희근 경찰청장과 임명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그의 과거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고 반응하면서 더 치열해진 면이 있다. 윤 청장은 지난 8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김 국장 임명에 대해 저도 (청장 후보자로서) 추천 과정을 거쳤고, 그런 부분까지 알고 (추천을) 고려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프락치 활동을 한 것으로 강력하게 의심된다. 그런 이력을 가진 사람이 경찰국장에 임명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이성만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도 같은 날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관련 내용을) 몰랐다”고 한 뒤 “30년 전 개인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행안부의 다른 고위관계자도 “김 국장의 입직 경위 등은 경찰 소관이라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반응했다.

윤 청장은 임명 직후 강남경찰서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 국장 파견 재검토 의향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그 부분은 이 자리에서 말할 내용은 아니다. 행안부로 (김 국장을) 파견 보냈고, 파견 받은 부처에서 결정할 사안이다”고 답했다.

지난 2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문을 연 경찰국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문을 연 경찰국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경찰 내 의견도 분분하다. 일각에선 당시 경장 특채를 ‘특혜’로 볼 순 없지만, 1989년 당해 보안 특채는 김 국장 한 명뿐이었다며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일선 간부는 “김 국장을 향해 배신자라 손가락질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반면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김 국장은 이전 정권에서도 승진해오지 않았는가”고 반문하며 “불법적인 행위를 한 게 아닌 이상 김 국장 이력 논란은 경찰국을 둘러싸고 또 다른 정쟁거리를 만들려는 정치적 시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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