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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강도범 환영, 강간범은 NO" 이런 죄수 찾고있는 러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8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버스정류장에 러시아 병사 사진과 '러시아의 영웅들에게 영광을'이란 문구가 적혀있는 포스터가 걸려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8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버스정류장에 러시아 병사 사진과 '러시아의 영웅들에게 영광을'이란 문구가 적혀있는 포스터가 걸려 있다. EPA=연합뉴스

‘살인·강도범 환영. 강간·마약범은 NO.’

러시아 민간 용병 기업 와그너 그룹(이하 와그너)의 용병 선발 원칙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설 친위부대로 알려진 이 회사가 최근 러시아 교도소를 돌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보낼 병력을 모집 중이라고 CNN 등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6개월 이상 이어지면서 병력 부족에 직면한 러시아군이 와그너에 의존해 병력을 보충 중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최근 미국은 지난 2월 이후 러시아군 사상자가 약 7만5000명이라고 추산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와그너가 러시아 내 17개 교도소에서 죄수 1000여 명을 설득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시키기로 했다”고 전했다. CNN도 “교도소를 찾은 와그너 직원들이 즉시 또는 참전 6개월 후 사면, 한 달에 최대 20만 루블(약 426만 원)의 급여 등을 조건으로 내걸며 수감자에 용병 지원을 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사시 유가족에 1억" 제안도

지난달 3일 우크라이나 동부 빌로호리브카를 점령한 러시아 군인이 러시아 국기와 함께 엄지손가락을 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3일 우크라이나 동부 빌로호리브카를 점령한 러시아 군인이 러시아 국기와 함께 엄지손가락을 들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용병 모집은 지난달에 집중됐다. 러시아 반부패 웹사이트 굴라그넷 운영자 블라미디르 오세츠킨은 “지난달 내내 수천 명의 러시아 죄수들을 향해 전쟁 모집 움직임이 활발했다”며 “(와그너는) 전사할 경우 유가족에게 500만 루블(약 1억870만원)을 준다는 제안까지 했다”고 말했다.

와그너는 살인과 강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수감자에 가장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있다. 반면 마약범이나 강간범, 급진 테러리스트는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러시아 독립 언론 메디아조나는 “수감자 증언을 들어보면 와그너는 우발적이 아닌 계획적으로 살인한 이들을 우선시한다”고 전했다. 살상 경험이 있으면서도 통제가 가능한 이들을 뽑겠다는 의도다.

軍 경험 부족…총알받이 위험 높아

지난달 러시아 볼고그라드에서 러시아 육군 병사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을 앞두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러시아 볼고그라드에서 러시아 육군 병사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을 앞두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수감자는 많지 않다. 용병으로 뽑히면 러시아 남서부 로스토프주에서 2주간의 기초 훈련을 받는 게 전부다. 이후 곧바로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전선에 투입된다. 전투 과정에서 총알받이 신세가 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오세츠킨은 “수감자 용병들은 우크라이나 진지로 접근해 우크라이나군을 유인하는 미끼로 사용될 확률이 높다”며 “러시아 정규군은 우크라이나군이 수감자 병사를 공격하는 동안 우크라이나군을 보다 정확하게 타격하는 걸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와그너가 한 약속이 지켜질지도 불투명하다. 러시아에선 민간 용병 기업이 법적으로는 금지돼 있다. 그래서 와그너는 공식 문서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단체다. 오세츠킨은 “러시아에선 용병 모집이 불법이기에 와그너가 한 모든 재정적 보상 약속은 실제 이행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야당도 “용병 지원은 죄수들이 감옥에서 탈출하는 현실적인 방법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와그너에 의존하는 러軍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대로에 세워져 있는 와그너그룹 용병 모집 공고. 러시아어로 ‘오케스트라 바그너가 당신을 기다립니다’라고 쓰여 있다. 사진 가디언 캡처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 대로에 세워져 있는 와그너그룹 용병 모집 공고. 러시아어로 ‘오케스트라 바그너가 당신을 기다립니다’라고 쓰여 있다. 사진 가디언 캡처

유령처럼 지내던 와그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존재를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와그너는 교도소 외에도 러시아 20개 이상의 도시에서 채용 센터를 설립해 병력을 모집 중이다. 가디언은 “러시아 전역 곳곳에 와그너 용병 모집 공고가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며 “텔레그램에 떠도는 모집 전광판엔 군복을 입은 세 명의 남자 사진과 ‘오케스트라 바그너가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문구가 있다”고 전했다. 오케스트라는 와그너의 별칭이다. 설립자 드미트리 우트킨은 회사 이름을 히틀러가 가장 좋아하는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에서 따왔다. 러시아 친정부 성향 언론도 와그너가 최근 전쟁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러시아 억만장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지난 2011년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음식점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가운데)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억만장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지난 2011년 모스크바에 있는 자신의 음식점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가운데)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와그너는 지난 2014년 돈바스에서 친러시아 분리독립 세력이 내전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창설됐다. 이후 푸틴 대통령이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 벌이는 비밀 임무를 수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고문 등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 않아 국제적 비난을 받아왔다. 이로 인해 러시아 정부는 와그너 그룹과의 관계를 부인해왔지만, ‘푸틴의 요리사’란 별명을 가진 억만장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운영자금을 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언론 노바야 가제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는 와그너에 의존한다”며 “와그너 용병과 러시아군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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