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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땐 손놓더니 야당 되자 "방송법 개정"...민주 벌써 두번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는 지난 7일까지 진행된 개표에서 75%수준의 득표율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당내에선 "이재명 대표 체제에선 언론개혁이 급물살을 탈 것"이란 말이 나온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는 지난 7일까지 진행된 개표에서 75%수준의 득표율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당내에선 "이재명 대표 체제에선 언론개혁이 급물살을 탈 것"이란 말이 나온다. 국회사진기자단

야당이 된 지 석 달 된 더불어민주당이 여당 때는 별달리 언급 않던 공영방송지배구조 개선법을 연내 처리하겠다고 나섰다. KBS·MBC 등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바꿔 정부·여당이 자기 입맛에 맞는 사장을 임명하는 걸 막겠다는 의도라지만, 정치권에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때처럼 반발을 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정청래 위원장은 지난 8일 MBC라디오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가 수십 년간 불거지는 것은 여당이 방송을 장악하고 싶은 유혹 때문”이라며 “(이사회 구성을 바꿔) 여·야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과방위원장을 하면서 신속하게 하겠다. 국민의힘이 보이콧을 해도 올해 안에는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이 밀어붙이려는 공영방송지배구조 개선법은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법,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방송교육공사법 개정안 등 네 가지로, KBS(11인)·MBC(9인) 등 기존 공영방송 이사회를 ‘운영위원회’로 바꾸고 운영위원 정수를 25명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권이 임명한 이사들이 사장 추천을 주도하는 형태에서 국회, 공영방송 종사자, 학계, 직능단체 등 다양한 주체가 추천하게 돼 후보자를 다변화할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민주당은 이 법안을 지난 4월 당론으로 채택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는 지난 8일 "올해 안에는 공영방송지배구조 개선법을 처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뉴스1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후보는 지난 8일 "올해 안에는 공영방송지배구조 개선법을 처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뉴스1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에 “달리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공영방송지배구조 개선법은 이미 당론으로 채택된 사안인 만큼 민주당의 우선 입법 사안”이라고 말했다.

“언론개혁” 주장하는 이재명…대표되면 밀어붙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 후보 역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 처리에 적극적이다. 그는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팩트에 기반을 두지 않은, 일방적인 공격성 보도들이 상당히 있다”며 “언론의 영향은 정말로 크고, 또 특정 개인들 또는 누군가에게 미치는 영향력 매우 크다”며 이른바 ‘언론개혁’에 무게를 실었다. 친명계 핵심 의원은 “언론개혁은 차기 지도부의 개혁과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과방위 최의에서 여당 의원들이 불참해 있다. 여당은 민주당의 공영방송지배구조법 추진에 반대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과방위 최의에서 여당 의원들이 불참해 있다. 여당은 민주당의 공영방송지배구조법 추진에 반대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언론개혁 이슈로 지지층을 결집하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후보가 ‘당원 결집용’으로 언론개혁을 강행할 수도 있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이 후보와 정 위원장이 8·28 전당대회에서 각각 대표와 최고위원에 당선되면 공영방송 지배구조법 처리는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일종의 ‘시너지’ 효과 때문이다. 정 위원장이 최고위원이 되면 관례상 과방위원장에서 내려와야 하지만, 당내에선 “지도부가 강경파로 구성되면 강행 기류를 멈춰설 방법이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與 “민주당 야당 되니 태도 일변”…과거에도 그랬다 

민주당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국민의힘의 한 당직자는 “정작 여당일 땐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에 미온적이더니, 야당이 되자 급발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과거 야당일 때 자신들이 만들었던 방송법 개정안을 여당이 되면서 없던 일로 만든 전력이 있다.

민주당은 야당이던 2016년 7월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소속 의원 162명의 동의를 받아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해 ‘박홍근법’으로 불렸던 이 법안은, 공영방송 이사회를 이사장 포함 13명(여당 추천 7명, 야당 추천 6명)으로 구성하고, 이 가운데 3분의 2 찬성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하는 구조였다. 특정 정파에 치우치지 않은 사장을 선임하겠단 취지였다.

2018년 4월 방송법 추진에 반대했던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박홍근 원내수석. 중앙포토

2018년 4월 방송법 추진에 반대했던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박홍근 원내수석. 중앙포토

하지만 2017년 5월 문재인 정권 출범 뒤 민주당 입장이 바뀌었다. 방송법 처리가 쟁점이 된 2018년 4월, 당시 우원식 원내대표는 “정치권이 추천하면 정치적 외압 등으로 방송이 흔들릴 수 있다. 더 좋은, 더 최선의 안을 과방위에서 심의하자”며 처리를 미뤘다. 당시 여야 협상 실무를 담당하던 원내수석부대표가 박홍근 원내대표였다.

결국 방송법은 여·야의 정치공방 속에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이를 두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야당이 돼 방송 관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 변화는 정무적으로는 이해되지만, 우리가 스스로 바꿀 수 있던 기회를 놓친 건 여전히 씁쓸한 측면이 있다”(과방위 관계자)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의 급격한 입장 선회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명지대 김형준(정치학) 교수는 “공영방송이 망가진 원인을 제공한 게 바로 민주당”이라며 “도둑이 도둑을 잡겠다는 격인데, 여당 시절엔 방치하다가 이제 와 추진하려는 게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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