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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후재앙 대비한 재난 대책 재설계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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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9일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밤 기습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침수돼 숨진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 주택 반지하를 점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인명 피해를 최우선적으로 막으라고 지시했다.[대통령실사진기자단]

9일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밤 기습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침수돼 숨진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 주택 반지하를 점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인명 피해를 최우선적으로 막으라고 지시했다.[대통령실사진기자단]

115년 만의 기록적 폭우, 수도 서울 물바다

재난 대비 안전 인프라에 투자 확대해야

서울을 포함한 중부지방에 115년 만의 기록적인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속출했다. 출퇴근 대란도 이어졌다. 한반도에 걸쳐 있는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당분간 폭우가 계속된다니 인명 피해 최소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기후재앙 시대에 잦아진 극단적 기상을 ‘뉴노멀’로 상정하고 재난 대비책과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비가 그치면 금세 잊어버리는 일시적 땜질 처방이 아니라 재난 대비 인프라 투자를 늘려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 폭우는 흔히 기상 이변이라 부를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지난 8일 오후 9시 무렵 서울 동작구 일대에는 1시간 동안 무려 141㎜(누적 417㎜)의 게릴라성 호우가 쏟아졌다. 한반도에는 그동안 여름 장마철 한 달 동안 350㎜ 정도의 누적 강수량을 기록했다. 그런데 불과 4~5일간 양동이로 퍼붓듯 600~700㎜가 쏟아지니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다.

하지만 기상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때문에 이런 비정상적 상황이 언제든지 벌어지고, 피해가 더 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전망한다. 따라서 하늘을 탓할 게 아니라 정부의 자연 재난 대비 시스템을 이런 극단적 기상을 전제로 재설계해야 한다.

이번엔 특히 수도 서울 강남 한복판이 물바다가 됐다. 구릉지대라는 서울의 지형 특성 때문에 일시에 쏟아진 빗물이 강남역이나 대치역 네거리처럼 10m 이상 낮은 저지대로 쏠렸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1조4000억원을 투입해 ‘강남역 등 33개 침수 취약지역 종합 배수 개선 대책’을 집행했지만, 이번에도 역부족이었다. 강우 빈도와 예산 효율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니 배수관 크기를 무한정 키울 수야 없다 하더라도 극단적 기상을 상수로 놓고 수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산 타령만 하면서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물난리 고통이 반복될 것이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사례처럼 잦아지는 게릴라성 집중호우의 피해 사각지대는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무엇보다 무분별한 개발 정책 때문에 인위적인 위험을 키우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 시절 태양광 보급을 무리하게 확대하면서 전국의 산비탈을 마구잡이로 깎는 바람에 산사태 위험을 키웠다. 경기도 성남시 백현동의 높이 50m 옹벽 아파트처럼 행정 당국의 특혜성 난개발로 재난 위험을 키우는 사례도 많다.

자연 재난을 완벽하게 막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안전 부문의 선제적 투자가 그나마 현실적 대책이다. 그런데 소득 양극화 심화에 따라 복지 예산 지출이 단기간에 급팽창하면서 안전 부문 투자가 소홀히 취급되는 현실은 우려스럽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로 갈수록 선심성 예산 지출을 늘리면서 안전 부문에 대한 예산 배정을 기피하는 행태는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