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조4000억 썼지만…‘기후변화 물폭탄’ 또 못막았다

중앙일보

입력 2022.08.10 00:08

업데이트 2022.08.10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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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제(8일)는 가게가 잠겼고, 오늘은 전기가 안 들어오네요.”

9일 오전 9시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의 한 빌딩 앞에서 만난 상인은 이렇게 말하며 1층 가게에 발목까지 들어찬 빗물을 쓸어냈다. 신발 위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덧대 신은 그는 “오늘 장사를 망쳤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강남역 인근 다른 가게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10번 출구 근처 빌딩의 1층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정모씨는 “가게가 침수돼 하루 만에 1000만원이 넘는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저지대가 많은 강남역 일대 인도에는 전날 퍼부은 비로 인해 화단 등에서 떠밀려온 흙이나 모래가 가득했고, 도로 곳곳이 파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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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올해 수방예산 삭감 논란

강남역 일대는 서울의 대표적인 상습 침수 지역이 됐다. 2010년 9월과 2011·2012년 7월 집중호우로 강남 일대가 물에 잠기는 등 피해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온라인 등에선 ‘강남 워터파크(수영장)’라는 오명도 얻었다.

서울시는 2015년 ‘강남역 일대 및 침수 취약지역 종합배수 개선대책’을 발표했지만, 2020년 8월 11번 출구에서 흙탕물이 분수처럼 솟구쳐 오르는 등 큰 피해가 난 데 이어 2년 만에 다시 강남역 일대가 물에 잠기면서 근거 없는 ‘2년 주기설’마저 회자되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서울시가 올해 수방·치수 예산을 지난해 대비 896억원 삭감(5099억원→4202억원)했다는 것에 대한 비판도  SNS상에서 쏟아졌다. 다만 서울시는 지난달 2차 추경을 통해 292억원을 추가 편성했다.

서울시 수방·치수 분야 예산

서울시 수방·치수 분야 예산

상습 침수의 근본 원인으론 강남역 일대의 지대가 낮고 오목한 항아리 지형이 꼽히고 있다. 강남역은 인접한 역삼역보다 지대가 14m 낮아 집중호우가 내리면 순식간에 깔때기에 담기듯 강남역에 빗물이 고인다.

문제는 서울시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부터 추진한 강남 지역 배수 대책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2015년 대책 발표 후 강남대로 일대 약 8㎞ 구간에서 저지대 하수관이 빗물펌프장을 거쳐 가도록 ‘배수 구역 경계조정’ 공사를 했다. 또 지난해 6월부터는 교대앞역에서 반포천 사이 1.3㎞ 구간에 직경 7.5m 규모의 방재시설도 설치했다.

당시 서울시가 강남역 등 33개 주요 침수 취약지역 수방시설 확충사업에 투입을 발표한 총예산은 1조4000억원 규모다. ▶하수관거 개량 사업 7364억원 ▶빗물펌프장 신·증설 사업 2939억원 ▶빗물 저류조 설치 사업 2142억원 ▶하천 정비 사업 1649억원 등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계획했던 수방시설 확충사업 예산은 2022년 현재 모두 투입한 상황”이라며 “이번 집중호우는 방재 한계를 초과하는 수준으로 갑자기 쏟아지면서 부득이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도시화·기후변화가 유발한 극단적인 기후현상을 현행 방재 기준이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콘크리트·아스팔트 많아 더 취약

9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침수 피해를 보다 체계적으로 예방·관리하기 위해 2016년 풍수해 저감 종합계획(현 자연재해 저감 종합계획)을 마련했다.

당시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기초 자료로 활용한 데이터는 행정안전부 ‘자연재해대책법’이 제시한 ‘서울시 목표 강우량’이다. 목표 강우량은 서울에서 30년에 한 번꼴로 최대한 내릴 수 있는 비의 양(30년 빈도 강우량)을 1시간당 95.9㎜로 산정했다.

하지만 이번 폭우로 피해가 집중된 강남역 인근 등 지역은 시간당 최대 강우 처리 용량이 85㎜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여전히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날(8일) 폭우가 쏟아지니 방재 성능을 초과해 자연히 ‘침수’ 피해로 이어졌단 분석이다. 서울시 안전통합상황실에 따르면 서울에서 전날부터 시간당 100㎜가 넘는 비가 내린 지역이 속출했다.

윤진호 광주과학기술원(GIST) 지구환경공학부 교수는 “1979년 이후 약 30년간 기후 관측 데이터와 최신 기후모델을 이용해 장마 기간 강우량 패턴을 분석한 결과, 극히 짧은 기간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서울의 급격한 도시화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서울은 지표면이 콘크리트·아스팔트 등으로 덮여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는 ‘불투수 면적률’이 높은 도시다. 환경부에 따르면 서울 불투수 면적률은 54.4%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높다(2013년 기준). 특히 서울 도심 지역만 놓고 보면 불투수 면적률이 80%를 초과한다. 이번 국지성 집중호우에 유독 서울 도심 지역이 취약했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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