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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장애인 가족 3명 참변…공장기숙사 산사태 덮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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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 등 수도권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안타까운 인명 피해 소식이 전해졌다. 또 많은 주택·상가가 침수 피해를 보았고, 교통이 마비되면서 출퇴근길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9일 오전 11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빌라 반지하 집. 수마가 일가족 3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집에서는 굵은 소방호스 4개로 12시간째 물을 빼내고 있었다. 소방대원은 “안쪽이 23평인데 물을 빼내면 지하수가 계속 차오른다”고 말했다. 이 집에서는 이모(72)씨와 40대 두 딸, 13세 손녀가 함께 살았다. 이씨가 병원 입원으로 집을 비운 지난 8일 나머지 가족이 참변을 당했다. 회사원인 작은딸(47)이 생계를 책임졌고, 발달장애인인 큰딸(48)은 복지관에 다녔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이씨 가족과 왕래했다는 이웃 김모(64)씨는 8일 오후 8시39분 “우리 애들 좀 도와달라, 집에 물이 찼다”는 이씨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김씨 딸과 사위가 급히 반지하층으로 내려갔지만 이미 물이 천장까지 차올라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씨 옆집 주민 전모(52)씨는 “주차장이 넓고 지대가 낮은 빌라라 도로의 물이 창문으로 빨려들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18년 넘게 살아도 이렇게 잠길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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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주택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사고가 난 동네는 가구의 22% 이상이 반지하다. 도림천 맞은편인 데다 지대 자체도 낮아 침수에 취약하다. 이씨는 “7년 전 이사 올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처음으로 장만한 집이었다”고 말했다. 반지하지만 저렴하고 넓어 살기에 적당했다. 또 근처에 큰딸이 다닐 수 있는 복지관도 있었다.

“30분 만에 100평 매장 천장까지 잠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각 지자체에 따르면 9일 오후 6시 기준 잠정 집계된 인명 피해는 사망 9명, 실종 6명, 부상 9명이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는 여성 1명이 물이 차오르는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또 넘어진 나무를 정리하려던 동작구청 공원녹지과 직원이 감전돼 숨졌다.

경기도에선 3명이 숨졌다. 9일 오전 4시27분쯤 화성시 정남면 야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공장 기숙사로 쓰던 컨테이너를 덮쳐 40대 중국인이 숨졌다. 양평군 강상면에선 이날 오전 1시쯤 도랑을 건너던 60대 남성이 불어난 물에 휩쓸려 숨졌다. 8일 밤 11시49분엔 광주시 목현동에서 버스정류장이 무너져 30대 여성이 숨졌다. 9일 낮 12시45분쯤에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서 산사태가 발생했고, 실종된 70대 주민이 4시간 만에 휩쓸린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도심에서는 반지하 주택과 지하층 상가 피해가 컸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주택 반지층에 거주하는 박서진(28)씨는 “별안간 화장실과 현관에서 물이 역류해 들어왔다”며 “2시간 동안 물을 퍼냈는데, 흙탕물이 들어오기 시작해 퍼내기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관악구 신림동 지하 1층 노래방 주인 조모(62)씨는 “밤 8시30분쯤부터 가게 뒷문과 앞문 계단으로 물이 흘러들어왔다. 노래방 기계가 다 물에 잠겼지만, 감전될까 봐 들어가 볼 수도 없고 막막하다”며 울상을 지었다. 동작구 상도동 건물 지하 1층에서 PC방을 운영하는 김기도(44)씨는 “100평 넘는 매장이 30분 만에 천장까지 잠겼다. 할 수 있는 게 손님과 직원을 대피시키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전날(8일) 도로 침수와 지하철 운행 중단으로 퇴근 대란을 겪은 서울·인천·경기 지역 시민들은 9일에도 출퇴근 전쟁을 치러야 했다.

3호선 대화역~지축역 운행 한때 중단

9일 저녁 지하철 일부 구간과 서울 주요 도로의 통제로 시민들의 불편이 계속됐다. 서울지하철 3호선이 9일 오후 5시55분부터 대화역~지축역 구간에서 운행 중단됐다가 약 30분 만에 재개됐다. 폐쇄됐던 9호선 동작역은 오후 6시부터 열차 통행이 재개됐다.

서울 주요 도로의 통제도 계속됐다. 오후 6시부터 동부간선도로의 모든 구간과 내부순환도로 마장 램프와 성동 나들목 구간이 침수로 전면 통제됐다. 노들로 여의 상류와 한강대교 구간도 양방향 통제가 이어졌다.

다만 전날과 달리 강남역 주변 도로가 침수되진 않았다. 침수된 구간을 피해 다른 길로 운행하는 시내버스 노선은 오전엔 50개를 넘었다가 오후 8시 기준 28개로 줄었다. 이날 서울시는 지하철과 버스의 집중 배차시간을 출근길은 오전 9시 반까지, 퇴근길은 저녁 8시반까지로 30분씩 연장했다.

이날 오후 8시 기준 서울 25개 자치구 중 3개 구에 산사태 경보 또는 주의보가 발령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36분 노원구 상계동과 중계동에 산사태 경보가 발령됐다. 앞서 도봉구는 오후 6시58분에 쌍문동과 방학동, 도봉동에 산사태 주의보를 발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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