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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총살한 한국군 봤다" 베트남전 학살 피해자 첫 법정 증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주민들이 모여 있다가 군인들에게 총살됐다. 주민들이 쓰러진 후에 (군인들이) 수류탄을 던졌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증언이 한국 법정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베트남전 퐁니퐁넛 사건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 씨가 지난 2018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군의 학살 상황을 증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베트남전 퐁니퐁넛 사건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 씨가 지난 2018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군의 학살 상황을 증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9일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여‧62)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 민병대 소속이었던 응우옌 득쩌이(82)의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이날 증언한 응우옌 득쩌이는 응우옌 티탄 씨의 삼촌이다.

이날 재판에서 응우옌 득쩌이 씨는 1968년 2월 12일 한국 군인들이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마을 주민들 수십명을 살해했다는 ‘퐁니 사건’을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주민을 살해한 군인들이 ‘한국 군인들’이었다고 단언했다. 평소에 마을에서 한국군을 자주 봐왔기 때문에 얼굴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광경을 마을 초입에서 지켜봤고, 망원경으로 확대해서 보기도 했다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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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마당에선 마을 사람들 시신, 대부분 불에 타”

응우옌 득쩌이 씨는 한국군들이 해당 장소를 떠난 뒤 직접 확인한 현장과 관련, 당시 마을의 모습을 담은 지도에서 시신 더미가 발견된 지점들을 손으로 짚으며 묘사하기도 했다. 곳곳에 쌓여있던 주검 수십구를 발견했고 마을 대부분의 집이 불타있는 모습도 봤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16일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나온 류진성씨 역시 해병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파병됐을 당시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라며 베트남 민가 근처에 민간인으로 보이는 이들의 시신이 무더기로 쌓인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재판에 앞서 열린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과 관련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측을 대리하는 임재성 변호사는 “당시 이 사건은 미군이 보기에도 이례적이라 미군이 한국군의 의견을 물어본 기록도 있다”라며 “우리 군은 사건 수행 주체가 한국 군복을 입은 베트콩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피해 갔지만, 이후 마을 주민이 베트남 의회에 항의하는 등 문제가 커졌다”고 말했다. 또 “당시 한국 정부가 사건을 조사했으나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와 이들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든 증거를 모아 법원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도 했다.

베트남에서 싸우고 돌아온 청룡부대원이 꽃다발을 목에 걸고 가족과 상봉하고 있다. 중앙포토DB

베트남에서 싸우고 돌아온 청룡부대원이 꽃다발을 목에 걸고 가족과 상봉하고 있다. 중앙포토DB

이 소송은 베트남 전쟁 당시 있었던 ‘퐁니 사건’의 피해 생존자 응우옌 티탄 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지난 2020년 4월 낸 3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이다.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 해병대 제2여단(청룡부대) 소속 군인들이 퐁니마을 주민 74명을 살해했다는 의혹이다. 이 사건 당시 8살이었던 응우옌 티탄씨는 가족 5명을 잃었고, 본인도 한국군이 쏜 총에 왼쪽 옆구리를 맞아 지금까지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한국 정부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앞서 정부 측 변호인은 “한국군으로 위장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베트콩)이 벌인 일이다”, “설령 한국군이 저지른 일이라 하더라도, 전쟁 중이라 용인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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