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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2년만에 '강남 워터파크'…서울시는 수방예산 900억 깎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대 도로가 침수돼 차량이 잠겨 있다. 뉴시스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대 도로가 침수돼 차량이 잠겨 있다. 뉴시스

“어제(8일)는 가게가 잠겼고 오늘은 전기가 안 들어오네요.

9일 오전 9시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한 빌딩 앞에서 만난 상인은 이렇게 말하며 1층 가게에 발목까지 들어찬 빗물을 쓸어냈다. 신발 위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덧대 신은 그는 “오늘 장사를 망쳤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지하 4층에 지상 11층 규모의 이 빌딩은 ‘물 폭탄’이 쏟아진 전날(8일)부터 건물 전체 전기가 나가 입주 상인들은 가게 문을 열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건물 관리소장은 “정전 신고를 했더니 구청에서 100군데 넘는 데서 신고가 들어와 언제쯤 복구가 될지 모른다고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강남역 인근 다른 가게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10번 출구 근처 빌딩 1층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정모씨는 “가게가 침수돼 하루 만에 1000만원 넘는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정씨 가게에는 비에 젖은 피로해소제 수십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저지대가 많은 강남역 일대 인도에는 전날 퍼부은 비로 인해 화단 등에서 떠밀려온 흙이나 모래가 가득했고 도로 곳곳이 파손됐다. 이날 오전 8시쯤 강남역 일대를 청소하던 서울 서초구 ‘서리풀 청소기동대’의 손형길씨는 “인도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려고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출근했지만 끝이 없다”고 말했다.

마의 항아리 지형…온라인선 “강남 워터파크” 오명

2020년 8월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가 물에 잠긴 모습(왼쪽)과 2022년 강남역 일대 도로가 침수된 모습. 연합뉴스

2020년 8월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가 물에 잠긴 모습(왼쪽)과 2022년 강남역 일대 도로가 침수된 모습. 연합뉴스

집중호우가 잦아진 2000년대 이후 강남역 일대는 서울의 대표적인 상습 침수 지역이 됐다. 2010년 9월과 2011·2012년 7월 집중호우로 강남 일대가 물에 잠기는 등 피해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온라인 등에선 ‘강남 워터파크(수영장)’라는 오명도 얻었다.

서울시는 2015년 ‘강남역 일대 및 침수취약지역 종합배수 개선대책’을 발표했지만, 2020년 8월 11번 출구에서 흙탕물이 분수처럼 솟구쳐 오르는 등 큰 피해가 난 데 이어 2년 만에 다시 강남역 일대가 물에 잠기면서 근거 없는 ‘2년 주기설’마저 회자되는 상황이다.

상습 침수의 근본 원인으론 강남역 일대의 지대가 낮고 오목한 항아리 지형이 꼽히고 있다. 순식간에 고인 물이 빠져나갈 길을 찾지 못한 채 차오르는 이유다. 10번 출구 근처 한 일식집 업주는 “언덕을 타고 빗물이 내려오는데 가게 앞 하수구가 역류하면서 곧바로 침수 피해를 보았다”고 말했다. 인근 업주도 “도로 빗물받이나 하수구가 제 기능을 못 하는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시간당 100㎜가 넘는 비가 강남 지역에 쏟아져 하수도 등 제반 시설이 감당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강남 지역의 시간당 최대 강우 처리 용량(85㎜)을 훌쩍 넘어서서 어쩔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배수분리터널 완공에도 역부족…왜

8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대 방향 도로가 침수돼 있다. 뉴스1

8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대 방향 도로가 침수돼 있다. 뉴스1

이처럼 지리적 특성이나 기록적인 강우량이 근본 원인이지만 피해가 되풀이되는 건 서울시의 대책 미비 때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2015년 서울시 대책의 핵심은 반포천 유역분리 터널(지하 배수시설)이었다. 30년 빈도로 나타나는 시간당 95㎜의 폭우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우면산 예술의 전당 일대의 빗물을 반포천 중류(고속터미널)로 곧바로 뽑아내는 총연장 1162m의 지하터널이다. 예산 등 문제로 애초 완공 계획(2019년)보다 3년 늦은 지난 6월 최대 용량 시간당 85㎜로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같은 폭우에는 이 시설도 무용지물이라는 게 확인된 셈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부와 협의해 강우 대응 목표를 올려야겠지만 예산 등 문제가 있어 내부 검토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당시 내놓았던 대책 일부는 7년째 시행되지 않고 있다.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를 바로 잡는 배수구역 경계조정 공사는 서초구 서운로의 관로 확장 공사나 예산, 지하 시설물 이설 문제 등으로 2016년이던 완료 목표 시기가 2024년까지 연장됐다. “계획보다 공사 기간이 많이 길어지고 있지만, 공사가 마무리되면 강남역 일대 빗물은 많이 저감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게 서울시 관계자의 말이다.

일대 주민들은 보다 치밀한 대책과 신속한 집행을 주문하고 있다.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20년 가까이 신발을 팔았다는 한 상인은 “강남역은 빗물 흡수가 잘 안 되는 아스팔트 도로가 많아 매번 침수가 반복되고 있다. 도로 개선 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남역 인근에 사는 직장인 이모(32·여)씨는 “상습 피해 아파트인 진흥아파트 일대가 이번에도 잠겼는데 매번 두렵다”고 말했다.

SNS상에서는 서울시가 올해 수방·치수 예산을 지난해 대비 896억원 삭감(5099억원→4202억원)했다는 것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다만 서울시는 지난달 2차 추경을 통해 292억원을 추가 편성했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예산 등 문제로 배수시설 공사가 지연됐다면 사실상 위험을 방치한 것”이라며 “처리 가능한 최대 강우 용량을 대폭 늘리는 등 2015년 대책에서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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