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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첫 재난 대응 시험대…'일가족 참변' 반지하도 들어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돌아가신 분들이) 너무너무 곤란하게 살았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이 현장은 전날 폭우로 발달장애 여성 등 일가족 세명이 참변을 당한 곳이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이 현장은 전날 폭우로 발달장애 여성 등 일가족 세명이 참변을 당한 곳이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오전 11시 40분께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 신림동의 다세대 주택 반지하를 찾았다. 전날 밤 폭우로 40대 발달장애 여성 A씨와 그의 여동생, 그리고 그 동생의 10대 딸이 차오르는 물에 갇혀 참변을 당한 곳이다. 같은 다세대 주택에 살던 한 이웃 주민은 현장을 찾은 윤 대통령에게 “10분 만에 물이 차올랐다”며 “숨진 가족의 삶은 너무나 곤란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 주민을 감싸 안으며 위로한 뒤 아직 물이 빠지지 않은 사고 현장으로 내려가 주인을 잃은 채 널브러진 집기들을 살펴봤다.

발달장애 가족 참변 현장 찾은 尹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재난 상황과 마주했다. 8일 하루에만 서울에 400㎜ 가까운 폭우가 쏟아졌다. 서울의 역대 하루 강수량과 시간당 강수량을 모두 갈아치웠다. 9일 오후 기준 7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됐다. 윤 대통령은 현장을 찾기 전인 오전 9시 30분 서울정부청사에서 ‘집중호우대처 관계기관 긴급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예정에 없던 일정으로 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자 의무인 만큼,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에서 열릴 예정이던 국무회의 장소도 서울로 바꿨다. 윤 대통령은 긴급대책회의 직후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 재산과 생명보다 소중한 게 어디 있겠느냐”라며 “무엇보다 인재로 목숨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 주거 취약지역과 취약계층에 대한 안전대책을 조속히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국무회의에 참석한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전 부처에 폭우와 관련한 피해 대책 마련 긴급 지시가 떨어졌다. 다른 안건들은 모두 후순위였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해 주민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해 주민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피해 현장을 찾은 뒤에도 “조속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취약계층이 안전해야 비로소 대한민국이 안전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안부와 지방지차단체에는 노약자와 장애인이 거주하는 지하주택 점검 대책을, 환경부엔 하천 수위 모니터 시스템 개발과 저지대 침수 지역에 대한 안전대책 수립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페이스북에도 “추가 피해가 없도록 각별한 경계심을 가지도 상황을 끝까지 챙기겠다”고 썼다. 8일 저녁 윤 대통령의 지시로 관계부처 긴급화상회의를 주재했던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폭우로 한때 폐쇄됐던 동작역을 찾아 현장 점검을 했다.

野 “전화로 지시” 대통령실 “새벽까지 실시간 지휘”

야당에선 윤 대통령이 8일 저녁 현장을 찾거나 직접 긴급회의를 주재하지 않고 서초동 자택에서 보고를 받으며 전화로 지시한 것을 문제 삼았다.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자택에 고립된 대통령이 도대체 전화통화로 무엇을 점검할 수 있다는 말이냐”며 “취임 전 무조건 대통령실과 관저를 옮기겠다는 대통령의 고집이 부른 참사”라는 논평을 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도 “윤 대통령이 폭우로 고립된 자택에서 전화통화로 총리에게 지시했다고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강력히 반발했다. 강인선 대변인은 야당의 논평에 대해 이례적인 반박 성명을 내고 “재난 상황마저 정쟁 도구화를 시도하는 민주당 논평에 유감을 표명한다”며 “대통령이 자택에 고립됐다는 주장도, 집에 갇혀 아무 것도 못했다는 주장도 터무니없는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허위 사실을 주장하는 것은 제1야당으로서 국민의 고통을 외면한 무책임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은 8일 오후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고 지침을 내린 뒤 다시 새벽 6시부터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현장의 모든 인력이 대처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대통령이 가면 보고나 의전에 신경 쓸 수밖에 없어 대처 역량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재차 오후에 기자들을 찾아 “적어도 국가재난상황 만큼은 정쟁 대상으로 삼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국민 생명과 재산 지켜야 하는 국가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지난 2011년 7월 당시 홍수피해 지역 현장점검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이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삼육재활센터에서 사람들과 함께 흙으로 뒤덮인 복도를 물청소하고 있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11년 7월 당시 홍수피해 지역 현장점검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이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삼육재활센터에서 사람들과 함께 흙으로 뒤덮인 복도를 물청소하고 있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공동취재단

정치권, “尹 재난대응 시험대 올라”

정치권에선 이번 폭우를 두고 윤 대통령이 또 한번 시험대에 올라선 것이라 보고 있다.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제대로 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더 큰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담겨있다. 여당의 한 초선 의원은 “국민의 안전과 재난 대응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업무”라며 “윤 대통령이 끊임없이 현장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이날 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현장부터 찾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복구 작업이 한창이던 경기도 수해 현장을 방문해 고무장화를 신고 직접 삽으로 흙을 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야당이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며 장외투쟁을 할 때 부산 기장의 수해 현장을 찾아 차별화 행보에 나서기도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의 행보는 지지율에 매우 민감한 영향을 미친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설령 ‘쇼’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피해를 본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 직접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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