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같은 등번호 쓸 정도로 절친…이승우-이정후 어떻게 만났나

중앙일보

입력 2022.08.09 15:42

업데이트 2022.08.10 15:36

프로야구 최고 타자 이정후(왼쪽)와 프로축구 K리그 간판 골잡이 이승우가 한 자리에 모였다. 두 선수는 1998년생 동갑내기로 종목을 아울러 우정을 나누는 절친이다. 장진영 기자

프로야구 최고 타자 이정후(왼쪽)와 프로축구 K리그 간판 골잡이 이승우가 한 자리에 모였다. 두 선수는 1998년생 동갑내기로 종목을 아울러 우정을 나누는 절친이다. 장진영 기자

 최고와 최고가 만났다. 프로야구 간판스타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와 올 시즌 프로축구 K리그 무대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승우(24·수원FC)가 한 자리에 모였다. 차원 높은 경기력과 스타성으로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한국 프로스포츠의 별들이다. 임인년 호랑이의 해를 뜨겁게 달군 1998년 호랑이띠 동갑내기로, 틈 날 때마다 만나 우정의 대화를 나누는 절친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프로스포츠의 최고 스타들인 데다, KBO리그와 K리그 모두 빡빡한 일정을 소화 중이라 만남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 선수들과 소속팀, 종목 담당기자까지 6자가 수십 통의 전화통화를 주고받으며 스케줄을 조율한 끝에 지난 3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인터뷰가 성사됐다. 이승우가 오전 팀 훈련을 소화한 뒤 지체 없이 이동해 경기를 앞둔 이정후와 잠깐 조우하는 빡빡한 일정. 복잡한 준비 과정 속 긴장감과 스트레스는 마침내 얼굴을 마주하고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두 선수의 환한 미소 속에 봄눈 녹듯 사라졌다.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왼쪽)와 수원FC 이승우. 장진영 기자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왼쪽)와 수원FC 이승우. 장진영 기자

-친구가 된 계기는.
이정후(이하 정후) “서로의 존재는 10대 시절부터 알았어요. 당시엔 스폰서십도 같았고 나이도 동갑이라 SNS 다이렉트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다 금방 친해졌죠. 따로 만나기 시작한 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직후부터였던 걸로 기억해요.”
이승우(이하 승우) “축구·야구대표팀이 자카르타로 건너가고 돌아오는 비행편이 같았거든요. 공항에서 처음 얼굴 마주하고 인사를 나눴어요. 한 번 보고나니까, 그때부턴 뭐…(웃음).”

올 시즌 이정후는 타율 1위에 오르며 KBO리그 간판타자다운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올 시즌 이정후는 타율 1위에 오르며 KBO리그 간판타자다운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서로 상의해 같은 등번호(17번)를 썼다던데.
승우 “제가 먼저 17번을 배정 받은 상태였어요. 정후가 아직 번호를 못 정했다면서 제 번호를 물어보더니 ‘나도 17번 할게’ 하더라고요. 친한 친구가 다른 종목에서 똑같은 등번호를 달고 뛴다니 특별한 느낌이었죠.”
정후 “저는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에 뽑히지 못했다가 나중에 추가 멤버로 대표팀에 합류했어요. 이미 제 번호(51번)는 다른 선수가 가져갔고요. 어떤 번호를 쓸까 고민하던 차에 승우가 17번 달았다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했어요.”

사진 촬영하며 축구공을 두고 장난스럽게 몸싸움을 벌이는 이승우(오른쪽)와 이정후. 장진영 기자

사진 촬영하며 축구공을 두고 장난스럽게 몸싸움을 벌이는 이승우(오른쪽)와 이정후. 장진영 기자

-서로에 대한 첫 인상은.
정후 “승우는 어려서부터 수퍼스타였잖아요. FC 바르셀로나 출신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고요. 처음 실제로 만났을 때 얼굴이 너무 작아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직접 만나보니 겸손하고 재미있더라고요. 귀엽기도 하고(웃음). 승우가 야구를 좋아하고 저도 다른 종목에 관심이 많아서 대화가 술술 풀렸죠.”
승우 “야구선수에게 ‘레전드 이종범 선수 아들’이라는 타이틀은 결코 가볍지 않을 거에요. 그 무게감을 극복하고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로 성장한 정후가 대단하게 느껴져요. 처음 정후와 몇 마디 나눠보니 ‘이 친구 천재다, 타고났다’싶은 느낌이 팍 오더라고요.”

지난달 K리그를 대표해 토트넘홋스퍼와 친선경기에 출전한 이승우. 뉴스1

지난달 K리그를 대표해 토트넘홋스퍼와 친선경기에 출전한 이승우. 뉴스1

-자주 만나나.
승우 “둘 다 경기 일정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얼굴 보기 힘드네요. 야구는 일주일에 6번이나 경기를 하잖아요. 최근에 키움이 수원에 원정(KT전) 왔을 때 숙소 호텔에 찾아가서 정후와 잠깐 커피 한 잔 했어요.”
정후 “승우가 유럽에서 뛸 땐 가끔 국내 들어오면 몰아서 만났죠. 그땐 밥도 자주 먹고 같이 놀기도 했는데, 오히려 가까이 있으니 만날 기회가 더 적어요. 시즌 끝나면 계획을 잘 세워봐야죠.”

키움 히어로즈의 이정후(왼쪽)와 수원FC의 이승우는 한국 프로스포츠 최고 스타로 주목 받는 24세 동갑내기 선수들이다. 장진영 기자

키움 히어로즈의 이정후(왼쪽)와 수원FC의 이승우는 한국 프로스포츠 최고 스타로 주목 받는 24세 동갑내기 선수들이다. 장진영 기자

-무슨 이야기를 하나.
정후 “주로 커피숍이나 식당에서 만나서 운동 이야기, 시시콜콜한 사는 이야기 나눠요. 승우가 주변에 아는 사람이 많아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종종 들려주고요. 운동선수지만, 유니폼 벗고 만나면 그냥 평범한 20대 남자들이죠.”
승우 “둘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하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건강관리 요령, 효율적인 운동법, 동료들 사이에 유행하는 음식이나 약 같은 것들, 그리고 야구계 축구계에 떠도는 흥미로운 이야기들 같은 거죠. 정후가 이야기할 땐 저도 ‘야구팬 모드’로 귀 쫑긋하고 들어요.”

-올 시즌 두 선수 성적이 예사롭지 않은데.
※이정후는 KBO리그 타율(0.345)·최다안타(130개)·OPS(출루율+장타율·0.992) 1위. 이승우는 K리그1 득점 5위(10골)와 공격 포인트 6위(13개).
정후 “승우는 줄곧 해외에서 뛰다 올해 처음 K리그에 왔잖아요.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골도 많이 넣고 이슈메이커로 주목 받는 모습을 보니 ‘역시나’ 싶어요. 월드컵에 한 번 더 나가고 싶어 하는데, 충분한 경험이 있으니 어떤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지 잘 알거라 믿어요.”
승우 “같이 어울리다보니 정후의 성공 비결을 깨달았어요. 우선 목표가 명확하고요, 과정은 즐기면서 도전하는 스타일이에요. 말은 쉬운데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게 참 어렵거든요. 그걸 해내니까 좋은 성과가 따라오는 거죠.”

호랑이 인형과 함께 포즈를 취한 호랑이띠 동갑내기 친구들. 장진영 기자

호랑이 인형과 함께 포즈를 취한 호랑이띠 동갑내기 친구들. 장진영 기자

-올해가 호랑이의 해라 느낌이 남다를 것 같은데.
정후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10년 일기장에 야구선수로서의 목표를 적었어요. 국가대표, 골든글러브, 타격왕 같은 것들이죠. 2022년의 내가 그 목표들을 이뤘다는 게 여전히 신기해요. 같은 의미로 올해는 제가 이뤄야 할 나머지 목표들을 향해 걸어가는 시기죠. 일기장에 적은 여러 가지 목표 중에 딱 하나, ‘한국시리즈 우승’이 남았거든요. 호랑이의 해에 그 꿈을 이룬다면 더 행복할 것 같네요.”
승우 “많은 고민 끝에 유럽 무대 도전을 중단하고 올해 K리그로 돌아왔어요. 맘껏 뛰고, 골도 넣고, 팬들과 호흡하는 모든 과정이 행복하죠. 최근에 해외에서 여러 팀들이 좋은 제안을 보내주셔서 고마운데, 지금은 오직 수원FC만 생각하고 있어요. 골 세리머니를 포함해서 아직 보여드릴 게 많이 남았거든요(웃음).”

서로의 유니폼을 바꿔 입고 포즈를 취한 이승우(오른쪽)와 이정후. 장진영 기자

서로의 유니폼을 바꿔 입고 포즈를 취한 이승우(오른쪽)와 이정후. 장진영 기자

-서로에게 전하고픈 한 마디는.
정후 “어려서부터 ‘이종범의 아들’로 자라다보니 멘털이 강해졌어요. 경기 중 웬만해선 심리적으로 동요하지 않죠. 대신 사람들의 말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야구를 잘 하고 싶으면서도 주목 받고 싶진 않은, 이중적인 심리가 아직도 있어요. 승우의 삶도 다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많은 이들의 시선을 감당하면서 낯선 해외 생활에 적응하고 경쟁까지 하는 게 힘들었겠죠. 승우가 어느 팀에서 어떻게 뛰든 특유의 자신감 유지하면서 행복하게 뛰었으면 좋겠습니다.”
승우 “운동선수는 다른 게 없어요. 다치지 않고 좋은 성적으로 매 시즌을 잘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게 최고죠. 머지않아 정후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들었어요. 지금처럼만 하면 그 꿈에 가까워진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함께 노력해서 다음번에는 우리 둘이 우승 트로피 하나씩 들고 다시 인터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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