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서, 긴 터널 끝의 빛 같은 곡들을 들려드릴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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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올리스트 이화윤은 16일 일신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에서 레베카 클라크, 진은숙 등 여성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한다. " 코로나를 겪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싶다"는 이유다.   장진영 기자

비올리스트 이화윤은 16일 일신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에서 레베카 클라크, 진은숙 등 여성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한다. " 코로나를 겪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싶다"는 이유다. 장진영 기자

제5회 '힉엣눙크! 페스티벌'이 16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서울 일신홀, 예술의전당, 롯데콘서트홀, 서울대학교 미술관 등에서 열린다. ‘힉엣눙크(Hic et Nunc)’는 라틴어로 ‘여기, 지금’이라는 뜻이다.
세종솔로이스츠가 주최·주관하며 동시대 음악과 과학기술을 수용하는 21세기형 음악축제를 지향한다.

힉엣눙크! 페스티벌 개막공연 비올리스트 이화윤 #레베카 클라크, 진은숙 등 여성 작곡가 작품 연주 #"코로나로 고통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일 것" #

4회까지 피아니스트 다비드 프레이, 비킹구르 올라프손,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 클라라 주미 강, 베이시스트 에드가 마이어 등이 축제 무대에 섰다. 올해 오프닝 무대의 주인공은 비올리스트 이화윤(26)이다. 유리 바슈메트 콩쿠르 대상 수상 이후 세계를 무대로 활약중인 그를 지난 4일 서울 신사동 복합문화공간 오드포트에서 만났다.

힉엣눙크! 페스티벌에 올해로 세 번째 참여한다는 이화윤은 "개막 공연에 서게 돼 감사하다"며 “축제의 팡파르나 북소리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젊고 재능 있는 현악 연주자를 발굴해 지원하는 안네 소피 무터 재단의 최연소 장학생인 이화윤은 앙상블 무터 비르투오시의 일원으로, 또 무터와 듀엣으로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를 연주하며 무대에 섰다. 2017년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발매된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송어’에 무터, 다닐 트리포노프(피아노), 막시밀리안 호눙(첼로), 로만 파트콜로(베이스) 등과 함께 참여해 이름을 알렸다.
바덴바덴 페스트슈필하우스에서 녹음된 연주를 들어보면 시원시원하다. 막힘없이 나아가는 개울의 움직임처럼 자연스럽고 활기차다.

“그전까지 ‘송어’를 ‘숭어’로 잘못 알고 있었어요. 전부터 무터 선생님과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말씀하시지 않아도 연주로 느껴졌죠. 도중에 수다도 떨면서 편한 분위기에서 녹음이 진행됐어요. 귀중한 기회였죠. 제 연주가 몇 단계 업그레이드된,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이화윤은 베를린에 산다. 헨릭 셰링, 이다 헨델, 지네트 느뵈 등 바이올린 거장의 스승이었던 칼 플레쉬의 전통이 드리운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에 재학 중이다.

김상진, 노부코 이마이에 이어지는 스승 하르트무트 로데는 2014년 모리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만났다. “소리 내는 방법, 활 잡는 법에서부터 팔이나 어깨, 날갯죽지를 쓰는 법까지 배우고 있어요. 앞으로 연주자로 더 활발히 활동하더라도 공부는 시간 내서 계속 하고 싶습니다.”

팬데믹 기간은 죽음을 목도하는 상실의 시간이었다. 지휘자로 협연했던 작곡가 펜데레츠키의 별세 소식에 슬펐고, 키우던 고양이도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공연 하나하나를 마지막 공연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소중함이 더욱 커졌다.

“함께 연주하며 의견을 나눴던 펜데레츠키 선생님이 많이 기억나요. 하루는 식당에서 제가 메뉴를 못 고르고 있으니까 ‘라자냐는 항상 옳다’고 미소 지으셨죠.”

비올리스트 이화윤은 16일 일신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에서 레베카 클라크, 진은숙 등 여성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한다. " 코로나를 겪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싶다"는 이유다.   장진영 기자

비올리스트 이화윤은 16일 일신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에서 레베카 클라크, 진은숙 등 여성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한다. " 코로나를 겪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싶다"는 이유다. 장진영 기자

16일 일신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에서는 20/21세기 여성 작곡가들의 작품을 들을 수 있다. 레베카 클라크의 비올라 소나타, 진은숙의 ‘나는 사랑에 빠졌답니다’, 이신우의 카프리스 2번 '적벽', 레라 아우어바흐의 '아케이넘(신비)'등을 연주한다.

“클라크 작품은 영국 화가 워터하우스 그림의 색채 같아요. 진은숙 곡은 중세 사이프러스 섬의 사랑 노래죠. 연주곡들에 공통점이 있어요. 긴 터널 끝에 보는 빛, 뻥 뚫린 출구죠. 코로나를 겪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일 것 같아요.”

프로그램 중 이신우의 2020년작 ‘적벽’이 눈길을 끈다. 비올라를 소리꾼으로 내세운 21세기 적벽가다. 세 살 때 판소리를 배웠던 이화윤에게 헌정된 작품이다. 세계 최초 녹음인 KBS클래식FM의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 CD에 수록된 연주를 들어보면 구성진 비올라와 즉흥적인 소리북의 만남이 자아내는 긴장감이 탄탄하다. 이 작품에서는 고수 방지원이, 나머지 곡들에서는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가 이화윤과 함께한다.

이화윤이 빚어내는 소리는 푸근하고 안정감 있다. 1590년 제작된 가스파로 다 살로 비올라를 7년째 연주 중이다. 삼성문화재단과 스트라디바리우스 협회에서 대여해준 악기를 “넓고 깊은 소리를 내 주고 날마다 다르게 느껴져서 발견의 연속”이라고 설명한다.

여성 작곡가들의 곡들을 준비하며 이화윤이 읽고 있는 책은 ‘판도라는 죄가 없다’다. "남성 위주의 신화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진짜 모습과 목소리를 알려준다"고 했다. 6년 전엔 연주가 안 풀릴 때 줄넘기를 한다던 그녀는 요즘엔 유연성에 좋다는 요가를 한다.

힉엣눙크! 페스티벌이 끝나면 이화윤은 10월 잘츠부르크에서 열리는 모차르트 주간에 참가해 안네 소피 무터 등과 실내악을 연주할 예정이다.

“여기, 지금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져요. 아직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공연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팬데믹 때와는 달라졌죠. ‘음악홀에서 즐기는 워터밤 페스티벌’ 같을 거예요.”

힉엣눙크! 페스티벌 공연은 29일 피아니스트 임주희 리사이틀, 31일 세종솔로이스츠, 필립 퀸트, 프랭크 황(바이올린), 사라 산암브로지오(첼로), 정지혜, 김은혜, 한문경, 김범태(타악기)의 갈라 콘서트(이상 롯데콘서트홀), 9월 4일 작곡가 레라 아우어바흐의 자작자연 무대(IBK챔버홀), 9월 6일 세종솔로이스츠 현대음악 공연(서울대 미술관, 무료)으로 이어진다. 22일 일신홀에서는 최근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제작되고 있는 대체불가토큰(NFT) 소개와 페스티벌 에디션 NFT 구매의 장인 ‘익엣눙크! NFT 살롱’(무료)이 열린다.

류태형 객원기자·음악칼럼니스트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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