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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때마다 되풀이 된 악몽”…수마 할퀸 재래시장의 한숨

중앙일보

입력

인천 미추홀구 제일시장은 8일 쏟아진 폭우로 시장 곳곳이 침수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 사진 독자

인천 미추홀구 제일시장은 8일 쏟아진 폭우로 시장 곳곳이 침수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 사진 독자

“오늘도 비가 많이 온다면서요?”
9일 오전 8시 인천 미추홀구 제일시장. 이른 시간부터 큰 솥에 물을 붓고 불을 붙이는 전모(70·여)씨는 연신 한숨을 쉬었다. 20년째 이곳에서 삼계탕 재료를 파는 그는 “최근 배수시설을 정비했다고 하는데 비가 이렇게 쏟아지면 속수무책이다”라고 말했다. 시장 입구에 자리 잡은 전씨의 가게는 4차선 도로와 근접해 있다. 전날 오전부터 폭우가 쏟아지면서 도로가 잠겼고 흙탕물이 인접한 재래시장까지 덮치면서 수해를 입었다.

 인천 미추홀구 제일시장은 8일 쏟아진 폭우로 시장 곳곳이 침수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 사진 독자

인천 미추홀구 제일시장은 8일 쏟아진 폭우로 시장 곳곳이 침수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 사진 독자

전씨는 “어제 정오쯤 갑자기 빗물이 들이닥치면서 좌판에 올려놓은 삼계탕 재료들이 쓸려내려 갔다”며 “부랴부랴 건져냈지만, 다 망가졌고 가게 안에도 물이 차올라서 장사를 포기했다”고 했다. 전씨는 전날 밤 귀가 뒤에도 가게 걱정에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이곳에서 9년째 장사 중이라는 김모(65)씨도 “아침에 나와서 보니 가게 문을 열 엄두가 안 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록적 폭우에 잠긴 재래시장 

9일 인천 미추홀구 제일시장은 폭우로 인한 피해 복구에 한창이었다. 심석용 기자

9일 인천 미추홀구 제일시장은 폭우로 인한 피해 복구에 한창이었다. 심석용 기자

80년 만에 기록적 폭우가 휩쓸고 간 이날 오전 제일시장엔 수마(水魔)가 할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제일시장엔 야채가게 등 70여개 점포(2018년 기준)가 자리하고 있다. 사람 무릎 높이까지 차올랐던 빗물은 빠졌지만 물기를 잔뜩 머금은 좌판과 야채들이 전날의 급박했던 상황을 짐작게 했다. 시장 지붕을 감싸는 천막 근처엔 빗물이 가득 담긴 붉은색 고무대야 십수개가 놓여있었다.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터진 천막도 보였다. 야채 가게를 운영하는 박모(73)씨는 “천막 위에 고인 물이 한 번에 폭탄처럼 떨어지면서 냉장고의 미닫이 유리문이 깨졌다”며 “유리 조각을 처리하는 동안 좌판 위 야채가 떠내려가고 가게 안으로 흙탕물이 밀려오는 등 아수라장이었다”고 전날 상황을 전했다.

9일 인천 미추홀구 제일시장은 폭우로 인한 피해 복구에 한창이었다. 심석용 기자

9일 인천 미추홀구 제일시장은 폭우로 인한 피해 복구에 한창이었다. 심석용 기자

자칫 인명사고로 이어질 뻔한 순간도 있었다고 한다. 상인 김모(69·여)는 “천장이 새면서 빗물이 떨어지길래 전기 코드를 뽑으려다가 감전될 뻔했다”며 “현재는 누전 차단기가 내려가 모든 냉장고가 꺼졌는데 아직 복구하지 못했다. 야채들이 상해서 모두 버려야 할 것 같다”고 울먹였다.

오전 10시쯤 응급 복구가 일단락됐지만, 상인들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기상청이 이날도 시간당 50~100㎜의 강한 비가 내릴 것이라 예고했기 때문이다. 순댓국집을 운영하는 곽모(71)씨는“시장 내 상대적으로 낮은 지대에 속한 점포는 대부분 수해를 입었다. 오늘도 비가 내리면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겠냐”며 “집중호우 때마다 매번 피해가 반복되는데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빈집 벽 무너져 주민 대피하기도

인천시 등에 따르면 인천지역에선 전날 오전 8시부터 이날 오전 6시까지 호우 피해 336건이 119에 접수됐다. 10개 군·구에도 277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동구 송현동에선 폭우로 빈집 벽면이 무너지면서 앞 건물 출입구를 막았고 이 건물에 사는 3가구 5명이 숙박업소나 친척 집으로 몸을 피했다. 같은 동에선 전날 오후 4시쯤 한 상가 건물 1층이 침수돼 5명이 고립됐다가 소방당국에 구조되기도 했다. 중구 운남동에서는 옹벽이 붕괴할 위험이 있어 인근 주택 주민 12가구 34명이 인근 숙박업소 등지로 대피했다. 현재까지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호우경보가 내려진 인천은 전날부터 이날 오전 8시까지 부평구 271.5㎜, 중구 전동 223.1㎜, 연수 187.5㎜ 등에 강한 비가 쏟아졌다. 특히 섬 지역인 옹진군에는 이날 오전 0시부터 8시 10분까지 목덕도 185.5㎜, 영흥도 125㎜, 덕적도 106.5㎜ 등 폭우가 쏟아졌다. 섬 지역에선 특별히 피해가 접수되진 않았다고 한다. 인천시 관계자는 “옹벽이 붕괴하는 등 피해가 큰 지역은 현장을 점검하면서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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