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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호항 달동네' 경로당 2층, MZ들 몰려가는 핫플 된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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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뒤편 언덕에 자리한 묵꼬양 카페. 묵호별빛마을(묵호진동 1·3통) 주민 공동 시설 2층에 들어선 카페로, 동네 어르신들이 직접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는다. 지난 5일 신현란(75), 임명순(63) 실버 바리스타가 직접 내린 음료수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백종현 기자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뒤편 언덕에 자리한 묵꼬양 카페. 묵호별빛마을(묵호진동 1·3통) 주민 공동 시설 2층에 들어선 카페로, 동네 어르신들이 직접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는다. 지난 5일 신현란(75), 임명순(63) 실버 바리스타가 직접 내린 음료수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백종현 기자

바다를 훤히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카페가 하나 있다. 지붕은 파랗게, 담벼락은 하얗게 단장한 것이 그리스 산토리니의 건축과 판박이다. ‘어린 왕자’ 테마로 꾸민 야외 테라스에서는 젊은 여행자들이 항구를 내려다보며 인생 사진을 담아간다.

여기까지는 동해안의 여느 전망 좋은 카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이한 게 하나 있다면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의 프로필이다. 평균 나이 69세의 동네 어르신들이 손수 커피를 내려 손님을 맞는다. 강원도 동해시 묵호진동에 자리한 ‘묵꼬양 카페’ 이야기다.

묵꼬양 카페는 동해안에서는 이미 핫플레이스로 통한다. 지난 2월 문을 연 뒤 빠르게 입소문이 탔다. 관광지로 거듭난 논골담벽화마을과 묵호항을 내다보는 전망도 훌륭하지만, 어르신 바리스타가 인기의 원동력이다. 골목이 좁고 비탈이 심한 편인데도, 주말이면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소셜미디어마다 ‘어르신들 덕에 정겹고 편해요’ ‘옆집 할머니네 놀러 온 느낌’ ‘카페지만 호박 식혜 맛집’ 등의 정겨운 반응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카페는 올 2월 들어섰다. 동해시가 취약지역 지원 사업으로 지난해 ‘묵호별빛마을(묵호동 1‧3통)’ 공용 건물을 지은 게 계기였다. 1층은 마을 어르신을 위한 경로당으로 두고, 2층에는 카페를 냈다.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네 명은 모두 동네 어르신이다. 마을 단장에 뜻을 모은 어르신들이 직접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한 달 넘게 커피 교육을 받은 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냈단다.

묵꼬양 카페를 책임지는 4명의 주인공. 모두 묵호별빛마을 주민이다. 왼쪽부터 임명순, 조은숙, 윤봉순, 신현란 실버 바리스타. 사진 동해시

묵꼬양 카페를 책임지는 4명의 주인공. 모두 묵호별빛마을 주민이다. 왼쪽부터 임명순, 조은숙, 윤봉순, 신현란 실버 바리스타. 사진 동해시

지난 5일 묵꼬양 카페에서 만난 신현란(75) 실버 바리스타. 능숙한 자세로 커피를 내리고 있다. 백종현 기자

지난 5일 묵꼬양 카페에서 만난 신현란(75) 실버 바리스타. 능숙한 자세로 커피를 내리고 있다. 백종현 기자

반세기 넘게 동네를 지킨 신현란(75) 어르신,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 커피는 입에도 못 대던 임명순(63) 어르신도 그렇게 바리스타가 됐다. 대표 메뉴는 커피지만, 단골에게는 수제 차가 더 인기란다. 대추‧생강‧오미자‧호박 등을 직접 다려 차와 식혜 등을 내는데, 인심이 후해 하나 같이 농도가 진하고 맛깔스럽다.

묵꼬양 카페가 들어선 묵호별빛마을은 소위 ‘달동네’라 불리던 낙후한 어촌이다. 명태와 오징어가 올라오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살림살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1980년대 들어 어족자원이 크게 줄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현재 92가구가 비탈에 촘촘히 들어앉아 있는데, 주민 166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65세 이상 어르신이고, 기초생활 수급자도 26명에 이른다. 길이 험해 근래까지도 석유‧연탄 등의 생필품 배달이 여의치 않던 동네다. 신현란 바리스타는 “외부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던 곳인데, 카페가 생기면서 젊은 방문객이 이리 많이 찾아주니 너무 신기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묵호별빛마을이 있는 묵호진동 일대는 지난 3월 초 강릉~동해 산불 때 곳곳이 화마를 입었던 지역이다. 일부 살림집과 카페는 강한 바람에 불씨가 옮겨붙어 전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묵꼬양 카페’ 개업 한 달 만의 일이다. 당시 묵호별빛마을 주민들은 소방대원을 위해 카페 공간 내주고, 라면‧빵 등을 제공하며 지원 활동을 나섰다. 산불 진화 뒤 동해시장으로부터 받은 감사패가 묵꼬양 카페 한편에 놓여 있다. 산불 뒤 한동안 손님이 뜸했지만, 점차 손님이 느는 추세란다.

임명순 바리스타는 “아침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문을 여는 데도 힘든 줄 모르겠다”면서 “산불 뒤 사라졌던 여행자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어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묵꼬양 카페는 언덕 위에 들어앉아 있다. 덕분에 동해 앞바다와 묵호항은 물론 이웃한 산동네까지 훤히 내다볼 수 있다. 지난 5일 묵꼬양 카페에서 본 묵호등대와 논골담 벽화마을의 모습. 백종현 기자

묵꼬양 카페는 언덕 위에 들어앉아 있다. 덕분에 동해 앞바다와 묵호항은 물론 이웃한 산동네까지 훤히 내다볼 수 있다. 지난 5일 묵꼬양 카페에서 본 묵호등대와 논골담 벽화마을의 모습. 백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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