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싱긋이 미소 짓고 있을지 모른다. 그의 시선은 중국 해군 함정에 탑승한 병사의 어깨 너머로 대만 해안선과 산세가 보이는 사진에 꽂혀 있을 것이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기어이 대만에 발을 디디는 순간 크게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울고 싶을 때 얻어맞은 뺨이었다. 이번 일을 핑계로 중국의 정예 공군기와 함정이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섬으로써 수십 년 묵은 양안 관계의 금기를 깨뜨린 게 가장 큰 소득이다. 한번 깨진 금기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5년 만의 가을 당 대회를 앞두고 대내 결속이 필요한 시기에 국내 정치적으로도 소득이 있다. 관영방송이 대만 봉쇄 훈련 장면을 반복적으로 튼 이면에는 ‘미국이 항공모함을 출동시켜 놓고도 구경만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인민은 당과 지도부를 믿고 따르라’는 행간의 의미가 깔려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셈법이 반드시 옳은 건 아니다. 시진핑은 더 큰 리스크와 미래의 불확실성을 떠안게 됐다. 미·중 갈등의 위험예고 지수는 확연하게 상승했다. 이대로 가다간 남중국해에서 미국이 펼치고 있는 항행의 자유 작전이 대만해협으로도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의 대만 방어 공약은 더욱 확고해지고, 대만인의 반중 정서가 더욱 확산될 것이다. 그럴수록 시진핑이 불멸의 업적으로 삼고 싶어 하는 양안 통일의 장애물은 더 높아진다.
대만해협의 파고가 높아지면 필연적으로 한반도에 여파가 닥친다. 대만 긴장과 한반도 정세의 함수관계는 지리적 거리뿐 아니라 전략자원 배치와 군사력 균형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한 것이다. 이는 북한의 6·25 남침 직후 미국이 가장 먼저 한 일이 7함대를 대만 해역으로 보내 중국부터 견제했던 데서도 입증된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은 대만해협의 파고를 예의주시하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펠로시가 대만을 거쳐 한국에 온 건 미국 정부·의회의 동향과 언론에 보도되지 않는 속내는 어떠하며, 중국의 반발에 대해서는 어떤 대응책을 갖고 있는지,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전략과 결심은 어떠했는지, 대만의 ‘칩4’ 가입 등 반도체 협력 논의는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하나같이 우리 국익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사항들이고,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만나 물었어야 할 사안들이다. 야당 출신 국회의장과의 대화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펠로시와의 면담을 회피했다가 부랴부랴 전화 통화로 대체했다.
그 이유가 대통령의 휴가 때문이란 보도를 접하고 2년 전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사건을 떠올렸다. 공무원 이대진씨가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시각, 청와대 비서실장과 안보실장, 국방부·통일부 장관 등이 심야 회의를 열고서도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잠을 깨울 수 없어 아침까지 기다렸다”고 했다. 그런 변명이 용인되지 않는 건 안면(安眠)을 보장받을 대통령 개인의 권리가 국민의 생명 안전을 지킬 의무를 앞설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휴가와 국익이 걸린 중요한 외교 일정이 충돌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윤 대통령이 갑작스레 용산 집무실에 나타나 “중요한 외빈이 방한해 휴가를 쪼갰다”고 얘기했다면 지지율 추락을 0.1%쯤은 억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윤 대통령이 펠로시와의 만남을 피한 진짜 이유는 중국 눈치를 본 것이란 분석이 더 설득력있게 퍼져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문재인 정부 시절의 대중 외교 행태를 답습한 것이란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웃집 눈치 보느라 내 집으로 찾아온 손님을 피했다는 건 윤석열 정부가 내걸었던 당당한 외교 원칙에도 맞지 않고 한·미 동맹 강화와도 거리가 멀다. 중국의 눈치를 보았건, 대통령의 휴가를 지키려 했건 모두 다 국민의 눈에 마뜩잖은 일이다. 이런 일들이 쌓여 지지율이 내리막길에서 못 벗어나는 것이다.
대만해협 -한반도 정세 상호 연관 #중국 눈치 보기였든 휴가 핑계였든 #국익 걸린 외교일정 회피 이유 안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