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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병주 논설위원이 간다

사형제 폐지·유지 오랜 논란, 이번에 마침표 찍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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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논설위원

문병주 논설위원

음산한 숲속에서 폭행 후 총살당하는 젊은 남녀 피해자와 침대에 몸이 묶인 채 독극물을 주사기로 주입받는 가해자 사형수. 2022년 여름, 대한민국 헌법재판관들은 영화 ‘데드맨 워킹’(1995)의 마지막 장면이 주는 묵직한 고민에 빠져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동태복수법ㆍ同態復讐法)’ 원칙을 기반으로 한 형벌원칙과 극악한 살인자라 할지라도 인간의 목숨을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천부인권론 앞세운 사형제 폐지론, 어느 쪽이 헌법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3번째 판단이 진행 중이다.

1996년, 2010년 이어 위헌 가려 # 공개변론 현장서 찬반 대립 여전 # “범죄예방 효과 실증적 결론 없어” # “사형대상 범죄 제도화를” 의견도 # ‘가석방 없는 종신제’ 대안이 될까 # 여론조사에선 ‘유지’가 우세한 편

접점을 찾지 못해 온 사안인지라 장외 대립도 심할 것이란 예상을 안고 지난달 14일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의외였다. 공개변론이 시작되기 1시간 전인 오후 1시, 사형제도 폐지 종교ㆍ인권ㆍ시민단체연석회의와 사형제폐지범종교인연합 대표들이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형제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과 사형폐지를 염원하는 7대 종단대표 공동의견서’를 발표했다. 사형수를 소재로 한 각종 영화에서 보이는 찬반 세력의 피켓 싸움이나 말다툼은 종일 없었다.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헌법재판소 사형제도 공개변론에 대한 종교·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헌법재판소 사형제도 공개변론에 대한 종교·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사형’ 단어 헌법 조항, 사형제 인정인가 

수십 년 동안 평행선을 달려온 논쟁의 핵심은 변함없었다.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진행된 공개변론은 사형을 형벌로 규정한 형법 제41조 제1호와 존속살해죄에 대해 사형을 선고할 수 있게 한 형법 제250조 제2항 가운데 ‘사형’ 부분이 헌법에 위배되는지였다. ^사형제가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했는지 ^헌법 제37조 제2항의 비례의 원칙에 위반되는지 ^헌법 제10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위반되는지에 대한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특히 헌법 110조 4항에 언급된 ‘사형’ 단어의 해석이 완전히 갈렸다. 이 조항은 비상계엄시 군사재판은 단심으로 진행하지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 3심제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형제의 존치를 주장하는 법무부 측은 사형이 가능하다는 걸 인정한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청구인 측은 비상계엄하에서도 사형을 선고한 경우 1심으로 끝내지 말고 2심, 3심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기본권 침해가 아닌 기본권 보장의 규정에 해당하는 것으로 헌법이 사형제를 인정한다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더 눈길을 끈 대목은 법경제전문가의 설명이었다. 1996년(7대2)과 2010년(5대4) 합헌 결정 때 진행된 변론과 달리 헌재는 법경제학 전문가를 참고인으로 직접 지정했다. 사형제가 범죄예방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내느냐를 판단의 근거로 삼겠다는 의미다.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에는 데이터를 이용한 실증적인 분석은 없고, 분석이 많이 이뤄진 미국에서도 아직 일반적인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사형의 범죄 억지력이 통계에 의해 밝혀지지 않는다고 해서 부정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재판관 9명 중 5명, 위헌에 힘 실어 

법조계 안팎에서는 합헌 결정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위헌이든,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더 구체화하라는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예상이다. 사형제 위헌 결정이 나오기 위해서는 재판관 6명 이상이 이에 동의해야 한다.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유남석 소장을 비롯해 이석태ㆍ이은애ㆍ문형배ㆍ이미선 재판관은 사형제 폐지에 공감한다고 했다. 김기영 재판관은 확실하게 결론을 못 내겠다고 했지만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종석 재판관은 “위하력(범죄억제력)이 있는지 실증적 검증이 필요하고, 국민의 법감정도 굉장히 중요한 고려 요소”라고 했다. 이영진 재판관은 큰 틀에서 합헌이라면서도 제한적으로 위헌적 소지가 있다고 했다. 이 답변들이나 성향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010년 결정에서는 사형제를 존치시키면서도 대상범죄를 축소하거나 문제 되는 법률조항을 폐지(민형기 재판관)하거나 사형이 규정된 범죄의 종류를 반인륜적으로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 극악범죄의 경우로 한정하고, 그 외의 범죄에 대해서는 법정형에서 사형을 삭제(송두환 재판관)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이 있었다.

“고도의 흉악범 사회 복귀 가능성 없애야” 

국내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대안 형벌로  ‘가석방 없는 종신제’를 대부분 제안한다. 현재 법원에서 선고하는 무기징역형의 경우 복역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다. 2010년 목영준 재판관은 “고도의 흉악범이 어떠한 경우에도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당시 주문 이유를 다시 물었다.

‘감형 없는 종신제’를 주장했던 이유는.
“독일에서는 이것조차 위헌이 나왔다. 감형이 없이 평생 감옥에 있게 하는 것조차 인권침해로 봤다. 내 의견은 ‘단계적 대안’으로써 감형 없는 종신제였다. 일단 이걸 해 본 다음에 국민 정서를 고려해 조정하자는 생각이었다.” (이날 헌재 변론에서도 “절대적 종신형 역시 신체적 자유를 침해한단 반론이 있는데, 사형보다 기본권을 덜 제한한다고 볼 수 있냐”는 재판관의 질문이 있었다)
이를 주장한 법철학적 근거가 되는 내용이 있나.
“헌법 37조 2항은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나, 제한할 때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생명권은 침해해서는 안 되는 본질적 권리다.”
실제 사형 집행이 안 되는데 선고는 이어지고 있다.  
“1998년부터 사형집행이 없었다. 국가가 실현할 수 없는 제도를 존치한다는 것은 법률을 희화화하는 것이다. 국가가 법을 지키지 못하면서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는 것이다.” (형사소송법 465조 1항은 ‘사형집행의 명령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사형제가 폐지돼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나.
“오판의 위험성이다. 생명권은 한번 박탈하면 회복이 안 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재심으로 무죄 선고된 사형수들 

목 전 재판관의 말처럼 사형당한 사람 중 훗날 재심을 거쳐 무죄가 선고된 사례가 있다. 이날 방청석에는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1975년 사형이 집행된 이수병씨의 부인 이정숙씨가 자리했다. 이수병씨는 2005년 재심을 거쳐 무죄가 확정됐다. 이씨를 포함 사형당한 8명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1957년 진보당 창당 이후 간첩죄 등으로 기소돼 사형당한 조봉암 선생 역시 재심을 통해 2011년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민의 법감정은 다르다. 한국갤럽이 헌재 변론 후인 지난달 19∼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에게 설문한 결과 69%가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폐지에는 23%가 찬성했고, 8%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앞선 설문조사에서도 사형제 유지 의견이 ^1994년 70% ^2003년 52% ^2012년 79% ^2015년 63% ^2018년 69% 등으로 앞섰다. 2003년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종교계 인사들의 폐지 논의가 활발한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강력사건이 끊이지 않고 부각되면서 수치에 큰 변동이 없었다. 다만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문조사한 결과, ‘사형제 폐지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20.3%였지만 ‘대체 형벌 도입을 전제로 폐지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66.9%로 높게 조사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방청석에는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 유럽연합(EU) 대사의 모습도 보였다. EU는 사형제 폐지를 회원국 가입 조건으로 규정한다. 유럽의회는 2003년 7월 45개 회원국이 전시 상황에서도 사형제를 금지하는 의정서를 발효시켰다.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 EU 국가들을 포함, 109개국은 모든 범죄에서 사형을 폐지했다. 다른 8개국은 군형법을 제외한 일반범죄에서 사형을 금지하고 있다. 8월 기준 국내 수감된 사형수는 59명이다. 1997년 12월 30일 김영삼 정부가 임기 종료 직전 사형수 23명에 대한 형을 집행한 때를 마지막으로 사형당한 이는 없다. 이때부터 10년 후인 2007년 12월 30일 국제사면위원회는 한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