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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교사·학부모 배제한 교육정책은 실패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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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주석훈 서울 미림여고 교장·리셋코리아 교육 분과위원

주석훈 서울 미림여고 교장·리셋코리아 교육 분과위원

언제부터였을까.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교육이 국면 전환용, 치적 쌓기용 카드로 전락해 버린 것은…. 지난달 말 교육부가 대통령에 보고한 새 정부 업무 계획은 연일 모든 이슈의 블랙홀이 됐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겠다는 학제 개편안이 역설적이게도 모든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다.

물론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조정하는 문제는 김영삼 정부 이래 문재인 정부까지 역대 정부마다 끊임없이 제기했던 정책이다. 과거 어떤 정부도 관철하지 못한 정책이라는 뜻이다.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를 보면 학제 개편에 ‘부정적’이다. 여기까지는 교육부 공무원이라면 다 알 만한 내용이다. 다만 새 정부 교육부 장관·차관·차관보만 몰랐나 보다.

입학 연령 낮추는 개편안 후폭풍
필요한 정책이라도 공론 거쳐야
교육 개혁안 꼼꼼히 재설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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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번 이슈로 교육부는 장관·차관·차관보 모두 교육 비전문가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더 가관인 것은 정책을 입안하는 태도에 있다. 국민을 맞은편 의자에 앉혀 놓고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설득해도 모자랄 판인데, 마치 멱살을 부여잡고 맞은편 벽까지 그대로 밀어붙인 꼴이었다. 메가톤급 역풍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논란에서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있다. 대선 공약이나 국정 과제에도 없었던 이 주제가 어떻게 대통령 업무 보고에 들어갔느냐는 것이다. 교육 관련 학문을 전공하지도 않은 장관의 평소 지론이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하향하는 것’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무 부처를 패싱하고 시·도 교육청 협의도 건너뛸 만큼 무례한 힘의 원천인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 내부의 주도권 다툼에서 비롯된 우발적 제안이든, 아니면 이슈로 이슈를 덮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든 간에 이처럼 불쑥 밀고 들어오면 그 혼란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불필요한 갈등과 분열로 찢긴 상처는 누가 어루만질 것인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감상에 젖어 있을 여유가 없다. 이성적인 사고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급선무다. 현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앞서 언급한 대로 역대 정부마다 이 정책을 제안했다는 것은 그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왜’ 학제 개편을 추진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제대로 논의해 본 적이 없다는 데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기에 학제 개편 문제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역할을 맡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국가교육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위원회는 세 가지 주요 소관 사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중 첫째가 10년 단위의 국가 교육 발전 계획 수립이다. 즉 학제 개편 정책은 사실상 국가교육위 소관 업무로 보인다.

물론 학제 개편 논의를 국가교육위로 이관하는 것만으로 교육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않는다. 교육부는 이번 취학 연령 하향 이슈를 반면교사로 삼아 유치원과 보육 통합을 비롯해 초·중·고, 그리고 대학까지 아우르는 교육 개혁안을 세밀하게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어른들의 경제 논리를 우선해서는 안 된다. 유치원 의무 교육이 실현될 경우 추가로 투입해야 할 비용은 아까워하면서 취학 연령 하향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여유 재정은 탐내는 얄팍한 계산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우리 교육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부와 국가교육위 뿐만 아니라 각 시·도 교육청의 각성도 절실하다. 정규 교원이 퇴직해도 정규직 신규 채용 불허, 계약직 교원 채용 강요, 학급 수 감축으로 인한 교과별 교사 불균형 방치, 재정 지원을 볼모로 한 단위 학교 길들이기 등으로 현장의 교육 여건은 황폐해지고 있다. 공교육이 무너지는 한복판에 교육청이 있다. 학교 현장에 가해지는 교육청의 일방적·억압적 행태는 교육부에 비할 바 아니다.

교육은 현장에서 학생·교사·학부모의 협업으로 이뤄져 가는 것이기에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의 협의는 현장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긴밀하게 진행해야 한다. 교사를 패싱하고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던 그 어떤 정책도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부디 국정 과제인 ‘공교육 책임 강화’를 교사와 학부모를 존중하면서 구현해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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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훈 서울 미림여고 교장·리셋코리아 교육 분과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