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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이름을 불러드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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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중·고등학교 시절 방과 후 특별활동 시간이 있었다. 나는 줄곧 문예반 활동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인연이 여기까지 이어져 온 것일까. 중학교 문예반에서 접했던 짤막한 글 내용이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제목도 사실 자신이 없어 손쉬운 검색을 했더니, 197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조해일의 데뷔작이기도 한 ‘매일 죽는 사람’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어렴풋하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마음에 남겨진 내용은 영화나 TV 드라마 같은 곳에서 단역을 맡은 사람, 그중에서도 죽음을 연기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회당 수억을 챙기는 주연급 배우들 말고, 매회 이름도 없이 그저 숫자로, 실체도 가져보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스러지는 ‘매일 죽는 사람들’.

나는 전쟁이나 재난, 폭력사건처럼 수많은 죽음을 배경으로 담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각종 전쟁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있고 소설도 있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즐겨보지 않는다. 거기에는 늘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이름 없는 죽음들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고전에서 전쟁에 나서는 병졸들을 일개 장기판 말처럼 다루었던 이야기나, 1·2차 세계대전의 참상,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재난, 우리나라 5000년 역사를 관통하며 이어져 온 갖은 전란 속 사건들에는 숫자로 말해지는 죽음이 널려 있다.

전쟁터서 힘없이 죽어간 사람들
숫자로만 기억되는 무명의 비애
그들 삶의 무게는 영웅 못지않아

대부분 남자로 읽히는 전쟁에선 힘없이 죽어간 사람들 모두가 누군가의 아비와 아들이며, 지아비며, 오라비, 형제 혹은 친족의 피붙이들인데, 이들은 각자의 이름도 애절함도 없이 그저 숫자로 남는다. 어떤 전선에서 얼마만큼 많은 죽음이 있었는지, 몇몇 전쟁 영웅의 이름 외에는 모두 숫자에 불과하다. 그렇게 전쟁은 치러진 희생자들의 숫자로 그 크기를 가늠하여 역사에 기록된다.

전쟁물 혹은 흔히 말하는 블록버스터에서 다루는 재난 영화나 드라마 장면 속에서 ‘매일 죽는 사람들’은 그저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의 모습이다. 오늘의 촬영이 끝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나 얄팍한 일당 몇 푼 챙겨 집으로 돌아가고, 내일 또다시 그 어떤 촬영장에서 연출된 시체의 숫자를 채우고 있겠지.

몇 년 전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방문교수라는 명목으로 한 학기를 지낸 적이 있다. 메릴랜드는 워싱턴DC와 버지니아주에 인접해 있다. 주말이면 전철을 타고 워싱턴 시내로 나가 무료로 개방된 박물관을 관람하고, 발이 지치도록 기웃거리며 걸어 다녔다. 하루는 DC를 흐르는 포토맥강 건너편 버지니아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은 적이 있다. 공원처럼 꾸며진 길을 걷던 중 어떤 이정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이정표의 한쪽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묘지(grave)’를, 다른 쪽은 ‘무명용사의 무덤(tomb)’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이정표 아래서 나는 한참을 움직이지 못하고, 거기 쓰인 글귀를 이해하려 애쓰듯 서 있었다.

거창하게 꾸며진 한 사람의 묘지는, 그저 스러져간 수많은 이름 없는 용사가 쌓아 올린 무덤  위에서 홀로 빛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매일 죽는 사람들이 연기하는 그 수많은 무명용사의 넋이 묵묵히 잠들어 있는 곳. 어느 누구에게나 인연이 되어 맺어진 한 사람 한 사람은 그것이 누구였건 각각의 인생에 지워진 무게가 결코 다르지 않을 텐데.

역사의 한 페이지는 길이길이 기억될 몇몇 영웅의 이름으로 선명하게 채색되고, 덧칠로 그 본연의 색상마저 잃게 되는 순백의 바탕이 되었던 사람들은, 저마다의 저리고 가슴 아픈 사연들을 내보이지도 못한 채 창호에 번진 먹물처럼 숨죽이고 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소설 몇 편이 되고도 남을 이야기들을 품고 있지만, 그들에게서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이름도 없이 단 몇 줄의 숫자로 기록된 역사의 서사뿐이다.

시인 김춘수는 그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내가 학생들 출석을 부를 때 잘 인용하는 시 구절이다. 내 수업에 임하는 학생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내게로 와 의미가 되어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죽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죽는 사람1, 2…’처럼 번호가 붙여져서 이름을 가져볼 기회조차 없는 숫자며, 실체 없는 그림자들이다. 개인의 흔적을 묻어둔 채 매일 죽어야 하는 사람들에게서 지워진 이름을 찾아 불러볼 때, 숫자로 스러진 그들의 혼이 향기가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서 지지 않는 꽃으로 피어나기를.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