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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대통령 지지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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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가 없었던 대통령은 누구일까.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중도 사퇴한 리처드 닉슨, 성 추문으로 탄핵 직전까지 갔던 빌 클린턴, 임기 내내 막무가내식 언행을 일삼았던 도널드 트럼프. 모두 아니다.

1945년부터 53년까지 제33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해리 트루먼이다. 임기 후반 그의 지지율은 22%로 주저앉았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대통령 지지율 조사를 시작한 193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닉슨(24%)과 트럼프 전 대통령(34%)도 이 기록은 깨지 못했다. 트루먼 취임 직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전쟁 후유증은 혹독했다. 물가가 급등했고 실업자가 속출했다. 1947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4.4%를 찍었다. 70~80년대 오일쇼크 때도 깨지지 않은 대기록이다. 높은 물가와 실업률에도 트루먼 대통령은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지 못했고, 여론은 최악의 지지율로 화답했다.

그렇다면 한국 대통령 중에선 누가 가장 인기가 없었을까. 미국과 달리 비교할 대통령이 많진 않다. 대통령 지지율 조사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아서다. 살벌한 군부 독재 시절엔 제대로 된 여론 조사가 가능했을 리도 없고. 1988년 이후 한국갤럽이 정기적으로 시행한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를 기준으로 한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임기 말 그의 지지율은 단 6%에 불과했다. 1997년 IMF 국가 부도 사태가 터진 때다.

대통령의 인기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 경제다. 지지율의 역사가 말해준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화두다. 취임 석 달 만에 20%대로 미끄러진 지지율을 두고 분석이 난무한다. 인사 실패와 만 5세 입학 논란으로 대표되는 정책 난맥상, 불통, 오만. 여러 이유가 꼽히지만 핵심은 경제 지표다.

1998년 이후 최고치로 올라선 물가 상승률, 금융위기 때와 맞먹을 만큼 불안하게 움직이는 금리와 환율. 곳곳에서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지만 무력하다 못해 경제에 무관심해 보이는 대통령에 여론은 무엇보다 화난 거다.

각종 경제 관련 회의에 찬조 출연해 장관들에게 “잘 챙기라” 잔소리하고, 하나 마나 한 현장 순시 몇 번 더하는 건 소용없다. 그리고 분명한 건 대통령 임기는 유한하지만 ‘실패한 대통령’이란 꼬리표는 영원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