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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산 소재·부품 전기차 보조금 안 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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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 상원이 7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을 통과시키면서 전기차·배터리 분야에서 미국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미국산 물자 우선 구매)’ 정책이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중국과 패권 갈등 상황에서 반도체에 이어 미래 성장 산업에서 미국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압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 상원은 이날 기후변화 대응과 의료비 지원, 법인세 인상 등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본회의 표결에서 찬성 50표 대 반대 50표를 기록했는데, 당연직 상원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찬성표)를 행사하면서 법안이 통과됐다.

비록 수정되긴 했지만 자신의 대선 공약을 담은 법안이 취임 1년7개월 만에 통과되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랜만에 정치적 승리를 맛봤다.

이 법안은 기후변화 대응과 복지 지원 등 4300억 달러(약 558조원) 지출안과 법인세 인상 등 7400억 달러(약 961조원) 수입안을 골자로 한다.

반도체 이어 전기차 … 미국, 글로벌 공급망서 중국 지우기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7일(현지시간) 상원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을 통과시킨 뒤 본회의장을 나오면서 인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7일(현지시간) 상원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을 통과시킨 뒤 본회의장을 나오면서 인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기 위해 친환경 에너지 생산 확대 및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3690억 달러(약 479조원)를 투입한다. 재원 마련을 위해 대기업에 최소 15%의 법인세를 부과한다.

하지만 법안을 뜯어보면 글로벌 전기차·배터리업계에 사실상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강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법안의 친환경 사업 지원방안으로, 미국산 원자재 비중이 높은 기업에 보조금을 확대한다는 게 핵심이다. 미 의회는 2024년부터 자국에서 원자재를 조달하고, 배터리를 생산한 비중을 40~50% 충족한 신형 전기차를 구매하면 최대 7500달러를 지원(연방세 소득공제)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채굴·제련한 원자재 비중이 2024년부터 40% 이상, 2027년부터는 80% 이상인 배터리를 탑재해야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해외의 ‘우려 국가’에서 추출·제조·재활용된 광물이 들어간 배터리를 사용했다면 혜택을 받지 못한다. 사실상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 1위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을 포함한 중국산 소재·부품을 사용한 자동차 제조사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중국산 원자재 의존도를 낮추고 북미 생산을 늘리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해, 미국 내수시장에서 중국산을 최대한 배제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문제는 리튬·니켈 등 원자재 원광을 70% 이상 중국에서 제련하고 있어 대체 공급망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에 따르면 배터리 원재료 제련의 70% 이상을 중국이 맡고 있다. 법안은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단기간에 공급망을 재편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완성차·배터리업계의 얘기다.

이에 따라 중국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미국 자동차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자동차 ‘빅3’도 중국 배터리 소재 의존도가 높은 만큼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존 보첼라 자동차혁신연합(AAI) 회장은 “추가 요건까지 발효되면 그 어떤 차량도 법안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들 3사는 한국 배터리 기업과 현지에 생산공장을 세우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업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세액 공제 대상이 북미에서 생산된 차량에만 적용된다는 조항이 포함되면서 현대차·기아 등 국내 완성차업계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 등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은 현재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한다.

현대차는 오는 11월부터 GV70 전동화 모델을, 기아는 내년 하반기부터 SUV EV9 등을 미국에서 각각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른 경쟁업체에 비해 시기가 늦어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5월 투자를 결정한 조지아 전기차 전용 공장은 2025년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반면에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업체들은 해당 법안에 따른 수혜가 기대된다. 배터리 3사는 GM·포드·스텔란티스 등 완성차업체와의 합작법인과 미국에서 단독 공장을 건설했거나 이미 가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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