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만년필 맡기고 23만원 쥔 30대…전당포 사장 "안돌아올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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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전당포에 휴대전화와 만년필을 전당 잡히려는 30대 남성이 찾아왔다.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는 2년 전 기종인 휴대전화(15만원)와 몽블랑 만년필(8만원)을 담보로 맡기고 23만원을 받아서 떠났다.

한 달 안에 전당 잡힌 물건을 찾으러 와야 하지만, 전당포 사장 이모(65)씨는 “(그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저가의 제품을 맡기러 오는 사람일수록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휴대전화를 잡힐 정도면 삶의 낭떠러지에 서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만년필은 되팔기 어려워 담보 잡아도 되레 손해지만, 도와주는 셈 치고 받아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전당포. 중앙포토

서울의 한 전당포. 중앙포토

일반적으로 전당포에 담보로 맡기는 물건은 보석이나 금 같은 귀금속, 명품 가방이나 고가의 디지털 기기처럼 ‘돈이 되는 물건’이다. 그런데 최근 휴대전화나 노트북 컴퓨터처럼 담보액이 10만원 안팎인 생활용품이 크게 늘었다. 이 전당포의 경우 지난해 초 5% 수준에 불과하던 생활용품의 비중이 올해 들어 전체 담보물의 20%로 높아졌다.

이씨는 “전당포는 불법 사금융으로 가기 전에 들리는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라며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저소득·저신용자인 금융 취약 계층은 제도권 금융에서는 대출을 받지 못하는 '대출 난민'이다. 대부업체나 전당포 같은 이른바 '제3금융'이 이들에게 마지노선이다. 하지만 여기서 밀려나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을 생존 절벽으로 밀어내는 건, 역설적으로도 이들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한 법정 최고금리 인하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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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가계 부채 위험을 해소하고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법정 최고 금리(대부업, 시행령 기준)를 27.9%에서 지난해 7월 20%까지 낮췄다. 문제는 최고 금리 인하 조치로 취약 계층이 돈을 빌릴 길이 막힌 데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고 금리 인하로 31만6000명(2조원)의 민간 금융 이용이 축소되고, 3만9000명(2300억원)이 불법 사금융을 이용할 것으로 본다.

법정 최고 금리 인하는 금융 취약계층이 밟았던 대출 사다리를 무너뜨렸다. 통상 대출 창구는 시중은행인 제1금융권→저축은행 같은 제2금융권→대부업체 같은 제3금융권이다. 제도권 안에서는 대부업체가 마지노선이다. 여기서도 대출을 받지 못하면 불법 사금융에 손을 벌려야 한다. 대부업체 등 제3금융권이 '고객 고르기'에 나서며 돈을 빌릴 길이 막힌 것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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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업체는 대개 은행 등에서 돈을 빌려와 개인이나 법인에 다시 돈을 빌려준다. 대형 대부업체의 경우 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려오는 조달금리가 6% 선이다. 여기에 빌려주고 회수하지 못하는 대손 비용이나 마케팅비용, 일반관리비용 같은 지출까지 더 하면 현재 최고 금리 (20%) 내에서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조달금리도 뛰고 있다.

대부업체 입장에선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위험 부담이 큰 취약계층 대출을 꺼리게 된다. 저축은행도 비슷한 상황이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저축은행(가계신용대출 규모 3억원 이상) 40곳 중 12곳은 저신용 대출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3곳에 불과했다.

임승보 한국대부금융협회장은 “담보나 신용이 기반인 대출의 특성상 대부업계의 위기는 취약계층의 대출이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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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가려 받기 뿐만 아니라 대부업체가 줄면서 공급도 줄고 있다. 금융위에 등록한 대부업체는 2018년 1500곳에서 지난해 968곳(6월 말 기준)으로 줄었다. 대부업계에선 현재 800여곳 정도만 실제 영업하는 것으로 여긴다. 신규 대출을 중단하고 이전 대출 만기일만 기다리며 간판만 걸어놓은 곳도 적지 않아서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대부업체인 강남캐피탈대부는 지난해 말부터 부동산 관련 담보율을 최대 80%에서 70%로 줄였다. 지흥진 강남캐피탈대부 대표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높아지자 분양권 등을 담보로 맡기려는 수요가 늘었는데 '거래 절벽'이라 담보물 처리도 쉽지 않고 최고 금리가 낮아져서 수익이 줄어서 대출을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 금리 인하에도 대부업체 이용자가 줄어든 이유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를 이용한 개인 이용자 수는 9만7000명으로, 2018년보다 23% 줄었다. 대신 불법 사금융 피해는 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는 2019년 4986건에서 지난해 9138건으로, 2년 만에 두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불법 사금융 신고의 45%는 미등록 대부 관련 문제였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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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최고 금리 적용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게 금융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대출자의 신용도에 따라 금리를 산정해야 하는 데 최고 금리가 20%로 제한돼 있으면 취약계층이 대출을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조달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96만9000명의 취약계층이 대출을 받지 못할 수 있다"며 "최고 금리 제도를 고정형이 아니라 시장연동형으로 바꿔 시시각각 변하는 조달금리에 의한 충격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중·고금리 대출 시장이 미흡한 상황에서 제3금융은 서민금융을 위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관련 제도가 미비하다"며 "대출 금리 체계 투명 공시, 정교한 신용평가시스템, 효율적인 자금 조달 제도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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