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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급 계약 논란으로 번질까…중대재해법 실태조사 후 난감해진 서울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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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상수도 분야의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상수관로 특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은 상수관로 특별점검 관련 현장. [사진 서울시]

서울시가 상수도 분야의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상수관로 특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은 상수관로 특별점검 관련 현장. [사진 서울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6개월을 맞아 서울시가 안전 의무 이행 실태 조사에 나섰다가 고민에 빠졌다. 정부가 세부 지침 없이 모호한 원칙만 마련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493개 중대재해점검 시설을 대상으로 안전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실태조사를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1월 27일 시행한 이후 서울시가 안전의무 이행 상황 점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대시민재해, 모호한 가이드라인 수준”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관리자의 안전보건 관리역량 강화 및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의무교육에 참석했다. [뉴스1]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관리자의 안전보건 관리역량 강화 및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의무교육에 참석했다. [뉴스1]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한다. 중대산업재해는 건설물·설비·원재료·가스·증기·분진 등에 의해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혹은 직업성 질병자가 3명 이상이 발생한 사고다. 중대시민재해는 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의 결함으로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혹은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다.

이중 고용노동부가 총괄하는 중대산업재해는 지침·규정이 고시 형태로 지정되어 있지만,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는 중대시민재해는 어떤 때 적용되고,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 유재명 서울시청 안전총괄과장은 “중대산업재해와 달리, 중대시민재해는 모호한 가이드라인 수준이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중대재해법의 적용을 받는 도급·용역·위탁 기관의 실태를 조사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중대시민재해 적용 대상. 그래픽 김영옥 기자

중대시민재해 적용 대상. 그래픽 김영옥 기자

실제로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청 소속 A사업소는 용역사업에 응찰한 도급기업의 안전 보건 관리 체계 수준에 20점을 배점하고, 기존에 재해가 얼마나 발생했는지를 고려해 20점을 배점했다. 하지만 같은 서울시청 소속 B사업소의 경우 안전보건관리체계에 30점, 재해발생수준에 10점을 배점했다. 과거 재해 발생 여부를 평가할 때도 C사업소는 최근 3년을 기준으로 평가했지만, D사업소는 최근 1년만 고려했다.

서울시청은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시 차원에서 기준을 통일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세부 평가 기준이 존재하지 않아서다.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10조 8호는 ‘중대시민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능력·안전관리능력에 관한 평가 기준’과 ‘도급·용역·위탁 업무 시 중대시민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비용에 관한 기준’을 마련토록 규정한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고시 등을 통해 구체적인 세부지침을 마련해야 하지만, 법 시행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손을 놓고 있다.

평가 기간 다르고 배점도 제각각

중대재해처벌법 일지. 그래픽 김영옥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일지. 그래픽 김영옥 기자

이런 상황이 문제가 되는 건 자칫 서울시장이나 서울시 공기업 사장이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 제9호 나목은 중대재해처벌법 책임의 주체로 ‘경영책임자 등’을 명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중앙행정기관의 장, 지방자치단체의 장, 지방공기업의 장, 공공기관의 장이 포함된다.

현재까지 중대시민재해법을 적용받아 공공기관장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 처벌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다. 다만 만약 과거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지금 발생한다면 서울시장이 책임을 질 가능성이 크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건설공사 발주자(서울시)가 아닌, 도급인(건설사)에게 책임을 묻는데 비해, 중대재해처벌법은 설계·제조·설치 관리상의 결함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인정받을 경우 관리주체(서울시)의 장에게도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중대시민재해 관련 평가 규정은 도급업체 선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서울상수도사업본부가 폐기물 처리 용역 입찰에서 E사를 선정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경쟁사 F사가 E사의 기존 재해 발생 전력을 문제 삼아, 상수도사업본부의 재해발생수준 배점이 지나치게 낮다는 민원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유재명 서울시 안전총괄과장은 “중대시민재해법이 세부 지침이 없는 만큼, 엉뚱한 기준을 적용해 도급업체를 선정했다가 사고가 발생한다면 추후 중대재해법을 적용받아 기관장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결코 사소하다고 볼 수 없는 안전 문제에 노출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12일 국토교통부에 ‘중대시민재해 시행령이 규정한 기준·절차에 대해 고시 등 세부지침을 마련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각 기관이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안전 평가 항목과 평가 절차·방법을 정부가 규정해달라고 건의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박선주 국토교통부 시설안전과 주무관은 “서울시의 요청 사항을 검토 중이지만, 다양하고 광범위한 공중이용시설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세부 지침은 현실적으로 명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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