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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세계 최대 고인돌 훼손 김해시…문화재청 협의도 무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06년 경남 김해시 구산동 택지개발 당시 발견된 지석묘 모습. 사진 김해시

2006년 경남 김해시 구산동 택지개발 당시 발견된 지석묘 모습. 사진 김해시

경남 김해시가 ‘모든 정비는 문화재청과 긴밀한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자문을 무시한 채 세계 최대 규모의 ‘구산동 지석묘(고인돌·경남도기념물 제280호)’ 정비공사를 벌인 사실이 확인됐다. 현재 지석묘 일부가 훼손된 상태다.

김해시가 2021년 9월 16일자로 생산한 ‘구산동 지석묘 정비사업 추진 계획 보고’ 문건을 보면 ″모든 정비(안)은 국가사적 지정과 병행하여 사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과 긴밀한 협의가 필요함″(빨간 동그라미 부분)이라는 경남도 문화재위원의 자문내용이 적혀 있다. 사진 김해시 공문 캡처

김해시가 2021년 9월 16일자로 생산한 ‘구산동 지석묘 정비사업 추진 계획 보고’ 문건을 보면 ″모든 정비(안)은 국가사적 지정과 병행하여 사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과 긴밀한 협의가 필요함″(빨간 동그라미 부분)이라는 경남도 문화재위원의 자문내용이 적혀 있다. 사진 김해시 공문 캡처

파란색으로 강조된 전문가 자문 

8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구산동 지석묘 정비사업 추진 계획 보고’ 제목의 김해시 내부 문건(2021년 9월 16일 자)을 보면, ‘Ⅲ 복원·정비방안 자문 현황’에 전문가 의견이 담겼다. 당시 경남도 문화재위원들은 “모든 정비(안)은 국가사적 지정과 병행하여 사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과 긴밀한 협의가 필요함”이라고 자문했다. 시는 자문 내용을 해당 공문에 담으면서 글자를 ‘파란색’으로 표시해 강조까지 했다.

전문가 자문은 지난해 8~9월 이뤄졌다. 전문가론 경남도 문화재위원(3명)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2명) 등 5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앞서 같은 해 4~8월에 진행된 정밀발굴조사 결과·성과를 바탕으로 김해시가 ‘구산동 지석묘 복원·정비계획’을 변경·수립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자문 의견을 냈다.

문화재청 “사전협의 없이 문화재 훼손”

문화재청 협의 없이 분리해놓은 ‘구산동 지석묘’ 박석(바닥돌) 모습. 사진 김해시

문화재청 협의 없이 분리해놓은 ‘구산동 지석묘’ 박석(바닥돌) 모습. 사진 김해시

하지만 이후 김해시는 묘역을 표시하는 박석(바닥 돌·얇고 넓적한 돌)을 제거하고 재설치하는 등 구산동 지석묘의 현상을 변경하는 정비공사를 진행하면서 문화재청과 사전 협의를 벌이지 않았다.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매장문화재법)에 따라 구산동 지석묘 묘역과 같은 매장문화재 유존지역 내에서 문화재 원형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재 현상 변경’을 하려면 별도의 문화재 보호대책을 수립·이행해야 하고, 반드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은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지난 7일 설명자료를 통해 “(구산동 지석묘) 정비공사 과정에서 매장문화재법을 위반해 무단으로 (매장문화재의) 현상을 변경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박석을 들어내는 행위 등을 할 경우 사전에 문화재청으로부터 발굴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사전협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고인돌 원형 훼손

상석 무게 350t으로 세계 최대 규모 지석묘(고인돌)로 추정된 경남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 정비사업 전경. 사진 김해시

상석 무게 350t으로 세계 최대 규모 지석묘(고인돌)로 추정된 경남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 정비사업 전경. 사진 김해시

게다가 김해시가 구산동 지석묘의 박석을 이동·재설치하는 과정에서 박석 아래 청동기시대 문화층(文化層·유물이 있어 과거 문화를 아는 데 도움 되는 지층)까지 건드려 일부 손상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5일 현장조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 구체적인 훼손 범위를 파악하기 위한 발굴조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구산동 지석묘 정비공사는 지난 1일 문화재청의 공사 중지 요청으로 중단된 상태다.

김해시는 지난 6일 입장문을 통해 “문화재청 협의를 빠트린 부분은 세세하게 챙기지 못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구산동 지석묘가) 경남도 문화재여서 경남도의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 정비사업을 시행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수작업으로 기존 박석을 보존 처리한 것으로, 한 언론의 보도처럼 중장비를 사용한 훼손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김해시 가야사복원과 관계자는 “복원·정비 사업을 진행하면서 대부분 경남도·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의 자문을 받는 등 협의를 했다”면서도 “‘문화재 현상 변경’ 관련 문화재청과 사전 협의만 놓쳤다. 그 부분은 실수이지 고의는 아니다”고 말했다.

문화재 업계·당국 “이해할 수 없는 상식 밖 행정”

상석 무게 350t으로 세계 최대 규모 지석묘(고인돌)로 추정된 경남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 정비사업 전경. 사진 김해시

상석 무게 350t으로 세계 최대 규모 지석묘(고인돌)로 추정된 경남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 정비사업 전경. 사진 김해시

하지만 문화재 조사·발굴 업계 사이에선 “이해할 수 없는 상식 밖 행정”이란 비판이 나온다. 관련 분야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단 A씨(30대)는 “유존지역 안에서 문화재의 현상변경을 할 땐 문화재청에 사전 허가를 받는 것은 상식”이라며 “사전에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도 문화재 위원의 자문도 있었는데, 정작 기본적인 절차를 생략한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관계자는 “일반 시민도 아니고 지자체 문화재 담당자가 해당 절차를 놓쳤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다”며 “김해시의 법적 절차적 문제와 관련해 시가 경남도로부터 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 위법 사항을 확인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한편, 구산동 지석묘는 2006년 김해시 구산동 택지지구개발사업 택지개발 공사 과정에서 발굴된 유적이다. 학계에서는 고인돌 상석 무게는 상석 무게 350t, 고인돌을 중심으로 한 묘역시설이 약 1600㎡에 이르러,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인돌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로 추정될 정도로 규모가 커서 당시 발굴 기술과 예산 확보 어려움 탓에 도로 흙을 채워 보존해왔다. 그러다 2019년 종합정비계획 수립, 2020년 2월 최초 정비사업 실시설계 용역에 착수하면서 복원·정비사업이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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