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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가 수백만장 사들인 BTS 앨범…"대중성의 뜻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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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평론가 인터뷰 시리즈(5)

 6월 10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난 대중음악 평론가 정민재. 박상문 기자

6월 10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난 대중음악 평론가 정민재. 박상문 기자

음악 평론가 인터뷰 시리즈 다섯 번째로 대중음악 평론가 정민재(31)를 만났다.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음악평론 웹진 ‘이즘(IZM)’의 편집장을 지냈다. 저서 『케이팝의 역사, 100번의 웨이브: 케이팝 100대 명곡 리뷰』 (2022),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앨범리뷰: 젊은 평론가들의 시대를 초월한 선택』(2018) 등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K팝 가수들이 잇달아 글로벌 음악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유튜브 조회 수 수억 회를 가볍게 돌파하며, 앨범만 냈다 하면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런 노래 대부분을 한 번도 제대로 들어 본 적 없거나, 심지어 그룹 이름조차 생소한 경우가 많다. 팬덤의 충성도는 높지만 소위 ‘대중성’은 부족한 셈이다. 방탄소년단(BTS)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BTS는 과연 인기 그룹인가, 아닌가. 정 평론가는 “대중의 취향이 극도로 개인화되고 파편화되고 있다”며 “인기라는 개념 역시 새로운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앨범 판매량과 음악 비디오 조회 수, 음원 스트리밍 횟수는 K팝 가수의 인기를 보여주는 척도로 여겨진다. 얼마나 정확한 척도인가.  
그 숫자들이 우리가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인기, 그러니까 그 노래를 일반 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들었는지를 반영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음악을 실제로 들으려고 CD를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걸 생각하면 요즘 남자 아이돌 그룹이 앨범만 냈다 하면 200만장, 3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게 말이 안 된다. 대부분 팬이 수십, 수백장씩 사재기한 결과다. 그러나 이 지표들이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이 대체 뭔가. 10명의 열성 팬이 각자 한 가수의 앨범을 100장씩 사재기한다고 치자. 그럼 그 10명은 일반 대중이 아닌가. 그 가수가 그만큼 충성도가 높은 팬덤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 자체도 의미가 있다. 이런 팬덤의 영향력이 지금 K팝의 중요한 현실이다. 판매량 등의 수치가 대중성을 반영하는가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처진 얘기다.  
정민재 평론가는 2010년대 중반 남성 아이돌 그룹이 힙합 요소를 도입하고 실험적인 앨범을 선보이면서 일반 대중과 팬덤의 괴리가 시작된 것으로 분석한다. 사진은 남성 아이돌 그룹 엑소.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정민재 평론가는 2010년대 중반 남성 아이돌 그룹이 힙합 요소를 도입하고 실험적인 앨범을 선보이면서 일반 대중과 팬덤의 괴리가 시작된 것으로 분석한다. 사진은 남성 아이돌 그룹 엑소. 사진 SM엔터테인먼트

그렇다면 오늘날 정확한 인기의 지표는 뭘까.
사람들의 일상에서 많이 언급되느냐가 요새 말하는 히트곡의 기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그 곡의 어떤 요소가 널리 알려져서, 사람들이 따라 하는 밈(meme)의 소재가 되는, 소위 ‘밈화’되면 그건 성공한 거라고 본다. 걸그룹 에스파의 지난해 히트곡 ‘넥스트 레벨(Next Level)’이 그중 하나다. 사람들 사이에 ‘그 디귿(ㄷ)춤 봤어?’ ‘가사 엄청 특이하던데’라는 말이 오가며 화제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SNS에서 밈화됐고, 지난 3월 대통령선거 개표방송에서까지 패러디됐다. 밈이 되고 패러디된다는 건, 그게 뭔지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야 재미있기 때문에 인지도의 지표가 된다.
지난 2월 데뷔한 걸그룹 엔믹스는 지난해 말 그룹명과 멤버 이름을 가리고 앨범 예약 판매를 진행했는데도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사진은 엔믹스의 블라인드 패키지.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지난 2월 데뷔한 걸그룹 엔믹스는 지난해 말 그룹명과 멤버 이름을 가리고 앨범 예약 판매를 진행했는데도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사진은 엔믹스의 블라인드 패키지.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앨범은 어떤 의미를 갖나.  
앨범은 이제 팬들을 위한 기념품이 돼버렸다. 올해 2월 JYP엔터테인먼트의 새 걸그룹 ‘엔믹스(Nmixx)’가 데뷔했는데, 지난해 여름 이미 이 그룹의 데뷔앨범 한정판 예약판매가 진행됐다. 그룹 이름도 정해지지 않고 심지어 멤버가 누구인지도 전혀 공개된 바가 없었는데도 ‘블라인드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6만장 넘게 팔렸다. 그중엔 리셀을 노린 구매자들도 있었겠지만, 앨범이 이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팬들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응원을 보여주기 위해 새로 나오는 앨범을 경쟁적으로 구매한다. 발매 이전부터 가수의 커리어 하이(데뷔 이래 최고 판매량)를 찍게 해주자고 팬들이 결집한다. 특히 발매하고 첫 주간의 판매량을 뜻하는 ‘초동’이라는 수치에 상당히 집착하는데, 초동이라는 말은 일본 J팝 시장에서 온 말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꾸준히 팔리는 게 더 중요했지 초동이 얼마 나왔는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밀리언셀러다 뭐다 이런 보이는 숫자에 대한 집착의 폐해는 앨범에 담긴 음악보다 산업적인 면만이 부각된다. 그 숫자조차 팬들과 업계가 ‘봐라, 우리 이만큼 팔았다’고 자축하기 위한 요소로 전락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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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카드(멤버 사진) 같은 상품에 집착하는 팬들도 있다. 
앨범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전략 중 하나다. 2000년대 중반, 당시엔 디지털 다운로드로 음반 시장이 완전히 몰락할 거라고들 생각했었다. 그런데 2008년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동방신기’가 앨범 ‘미로틱(Mirotic)’을 50만장 넘게 판매하면서 소위 대박이 났다. 이런 판매량이 가능하다는 걸 본 기획사들은 더욱 과감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포토 카드는 SM엔터테인먼트가 2010년 ‘소녀시대’ 2집 ‘오!(Oh!)’에서 처음 등장했다. 앨범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어떤 멤버의 사진이 나올지 모른다. 소녀시대 멤버가 아홉 명이니 아홉 명 전원의 포토 카드를 다 모으려면 팬 한 명이 얼마나 많은 앨범을 사야 할지 알 수 없다. 사실 나도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100장씩 사본 적이 있기 때문에 팬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언론에서는 정신 나간 팬들이 같은 앨범을 수백장씩 사들이며 과소비하고 환경을 파괴한다는 식으로 묘사하곤 하는데, 팬들의 사랑을 악용하는 기획사들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2017년 발매된 한 K팝 아이돌의 앨범. 포토카드, 포스터 등이 들어있는 앨범 구성 내용. 앨범 패키지의 내용과 형태를 무작위로 다양하게 해서 팬들이 여러 장을 사지 않을 수 없도록 유도했다.

2017년 발매된 한 K팝 아이돌의 앨범. 포토카드, 포스터 등이 들어있는 앨범 구성 내용. 앨범 패키지의 내용과 형태를 무작위로 다양하게 해서 팬들이 여러 장을 사지 않을 수 없도록 유도했다.

K팝 시장에서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는 BTS로 생각된다. 대중성 면에서 BTS는 어떤가. 
BTS의 ‘다이너마이트’(2020)는 K팝 최초로 빌보드 ‘Hot 100’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 그 이전에도 ‘DNA’‘작은 것들을 위한 시’‘On’ 등이 빌보드 차트 상위에 올랐다. 다만 차트에 오르고 난 대부분 1~2주 뒤엔 순위가 급격히 하락했다. 보통 그런 경우에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히트가 된 곡이라기보다 팬클럽 ‘아미(ARMY)’의 강력한 ‘화력’이 작용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매하기 직전의 BTS는 갈림길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음악적 정체성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좀 더 대중의 취향에 맞는 노래로 빌보드 1위를 노리느냐 말이다. 그중에 후자를 선택한 것 같다. ‘다이너마이트’는 멤버들이 자체 프로듀싱한 곡이 아니라 작곡가한테 받은 명랑한 곡이었다. 또 가사가 영어라서 미국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상업적으로는 굉장히 똑똑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는 음악 스타일 면에서는 BTS의 지금 모습이 오래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다이너마이트’ ‘버터’ ‘퍼미션 투 댄스’는 엄청난 인기를 끌긴 했지만, BTS 특유의 음악적 색깔은 찾아볼 수 없었다. BTS가 처음 인기를 얻은 건 독특한 음악적 색채와 멤버들이 직접 작사해서 10대들의 공감을 부르는 솔직한 가사였다. 난 그런 걸 다시 보고 싶다.  
2007년 걸그룹 원더걸스가 부른 '텔 미'의 멜로디와 포인트 안무를 모르는 사람은 적었다. 하지만 취향이 파편화된 현재 이런 정도의 대중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2007년 걸그룹 원더걸스가 부른 '텔 미'의 멜로디와 포인트 안무를 모르는 사람은 적었다. 하지만 취향이 파편화된 현재 이런 정도의 대중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왜 차트 1위, 앨범판매량 수백만장과 같은 수치도 더는 대중성을 반영하지 않게 됐나.
원더걸스 ‘텔 미’(2007)를 전 국민이 따라 부르던 시절을 기억하는 한국인은 요즘 K팝의 대중성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앨범이 밀리언셀러가 돼도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과 취향이 파편화 된 지금은 대중성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과거에는 가수가 지상파 텔레비전 음악방송 몇 개와 라디오 방송 몇 군데를 돌며 신곡을 발표하면 됐다. 그러면 온 국민이 그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그런데 이제는 취향도 다양해졌고, 선택지도 많아졌다. 아이돌 그룹들은 이제 TV에 나오기보다 자신들의 유튜브 채널에 자체 제작한 콘텐트를 주기적으로 올린다. 온라인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이 많은 아이돌 그룹의 콘텐트를 다 따라잡기란 불가능하다. 모든 가수가 같은 TV 프로그램에 나오고, 모두가 그걸 시청했던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대중성이란 말이 의미가 있었을지 몰라도, 이제 대중성이라는 말은 의미가 거의 없어졌다.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그 가수를 아느냐가 인기의 기준이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 기준이다. 우리가 지금 아는 형태의 K팝이 90년대 초반 서태지와 함께 등장하기 전에는 우리나라 부모세대와 자식 세대가 이문세, 김현식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다 같이 즐겼다. 그런데 요새 10대들 사이에서 아이돌 그룹 ‘엔시티 (NCT)’가 그렇게 인기가 많다지만 20대 이상의 한국인 대부분은 엔시티 노래나 멤버 하나도 모를 거다. 그렇다고 그 그룹이 인기가 없다는 건 아니지 않나. 그냥 지금 시대에는 대중이 파편화 된 것뿐이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남성 아이돌 그룹 엔시티(NCT). 현재 가장 주목받는 남성 아이돌 그룹이지만 20대 이상 대중 중에선 이들의 노래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적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남성 아이돌 그룹 엔시티(NCT). 현재 가장 주목받는 남성 아이돌 그룹이지만 20대 이상 대중 중에선 이들의 노래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적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언제부터 이렇게 K팝과 일반 대중 사이의 괴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나.    
팬덤과 대중 사이의 괴리가 특히 두드러지는 건 남자 아이돌이다. 걸 그룹은 아직도 대중의 취향에 폭넓게 어필하는 노래를 많이 낸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샤이니·빅뱅·인피니트 같은 남자 아이돌도 전국적인 히트곡을 냈는데, 요새는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2010년대 중반부터 엑소나 BTS 같은 남자 아이돌 그룹이 힙합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수용하면서 시작됐는데, 이런 곡은 대중에게 널리 어필하기에는 너무 실험적이거나 난해했다. 대신 남자 아이돌들은 눈길 끄는 콘셉트나 칼군무처럼 압도적인 시각적 퍼포먼스로 서구의 팝스타들과 차별화를 꾀하면서 일반 대중보다 충성심 강한 팬덤을 구축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2021년 12월 발매된 NCT 앨범이 명동 타워레코드 앞에 버려져 있다. 한 팬이 멤버들의 포토카드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버린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2021년 12월 발매된 NCT 앨범이 명동 타워레코드 앞에 버려져 있다. 한 팬이 멤버들의 포토카드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버린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이 괴리를 좁히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가수의 판매량, 초동을 비교하면서 경쟁을 부추기는 팬덤 문화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기 때문에 구조적인 변화 없이 팬들의 자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어느 기획사 하나가 포토 카드를 없앤다고 하면 팬들이 ‘왜 저 가수는 포토 카드를 내주는데, 우리만 못 받냐’고 반발할 것이다. 따라서 어느 특정 기획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최근 앨범이나 포토 카드에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서 환경에 부담을 줄였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팬들이 앨범을 대량 구매하고 나서 다 내다 버리는 현상이 지속하는 한 의미가 없다. 최근 나오는 앨범은 팬들의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려고 화려한 디자인에 플라스틱·종이·천을 섞어 사용해서 재활용도 못 한다. 기획사들이 합의할 필요가 있다. 전 산업이 환경을 강조하고 있는데 K팝만 앨범 폐기물을 계속해서 쏟아낼 수는 없지 않을까.  

* 이 기사는 코리아중앙데일리 7월 6일 자 10면에 보도된 영문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코리아중앙데일리 양현주·윤소연 기자 yang.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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