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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펠로시 홀대는 한국 스스로에 대한 모욕행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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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이하경 주필·부사장

이하경 주필·부사장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에 온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나지 않고 전화 통화만 했다. 공항에 아무도 영접을 나가지 않았다. 미국 의전 서열 3위인 펠로시는 밀월관계인 일본·대만은 물론 동맹국도 아닌 싱가포르·말레이시아에서도 국가 정상을 만났다. 윤 대통령의 휴가 일정 때문이라지만 단단히 잘못됐다.

펠로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과도한 주한미군 방위비 인상 압력 때 제동을 걸었고, 위안부 규탄 결의안 하원 통과를 주도하며 일본의 사과를 촉구한 한국의 친구다. 소홀한 응대는 방한이 미·중 갈등의 상징인 대만 방문 직후에 이뤄지는 바람에 중국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말로는 한·미 동맹 강화 외치면서
윤, 중국 의식해 펠로시 안 만난 듯
‘혼밥’ 모욕 문재인과 뭐가 다른가
중국에 당당해야 상호존중 가능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윤 대통령이 펠로시를 냉대했다”고 했다. 한·미 동맹 강화를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외쳐 온 윤 정부 기조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자존심이 센 미국의 누군가는 보복성 청구서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이다.

과거의 뼈아픈 사례 하나. 1966년 9월,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한 닉슨 전 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악연(惡緣)이다. 닉슨은 1960년 대선에서 케네디에게 지고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패배했다. 모든 언론이 “이제 닉슨은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이 노련한 불사조는 존슨 대통령의 망가진 베트남정책을 대체할 ‘닉슨 독트린’을 대선 카드로 가다듬고 있었다. 그래서 동남아와 일본을 거쳐,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한 한국의 기류를 살피러 왔던 것이다.

브라운 주한 미국대사는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동원은 박정희에게 “사람 팔자 알 수 없습니다. 지금 그를 후대한다면 결코 우리를 잊지 못할 겁니다”고 만찬을 권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그 사람 이미 끝난 사람인데 구태여…”라며 거부했다. 반면에 동남아 국가들과 일본은 최고의 예우를 했다. 지금 윤 정부에서 흘러가는 형편과 닮은꼴이다.

불과 2년 뒤인 1968년 닉슨은 베트남전으로 수세에 몰린 험프리를 간발의 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예고한 대로 ‘닉슨 독트린’을 꺼냈고,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했다. 박정희는 국가 존망의 기로에 섰다. 그는 “모든 루트를 다 동원해 닉슨과의 면담을 주선하라”고 지시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결국 박정희는 “제주도를 미국 군사기지로 내주겠다”고 미끼를 던졌다. 그러자 닉슨은 못이기는 척하고 반응을 보였다. “좋소. 그러나 워싱턴에선 안 되고 8월, 여름휴가 때 내 고향 근처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도록 합시다.” 치욕적인 제안이었지만 자존심을 버리고 휴가지의 미국 대통령을 찾아갔다.

훗날 박정희는 이동원에게 이렇게 술회했다. “약소국의 비애를 비참하게 맛보았소. 최소한 호텔 로비에선 닉슨이 맞아주리라 기대했었소. 그러나 호텔 로비에서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내릴 때도,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도 닉슨은 나타나지 않았소. 내가 방에 들어선 후 왼쪽의 큰 문이 다시 열리길래 보니 그쪽 방 저 끝 구석에 닉슨이 선 채 날 맞이하는 게 아니겠소. 물론 걸어오지도 않았고, 마치 속국의 왕을 맞이하듯 했단 말이오. 저녁식사 땐 시시껄렁한 자기 고향친구들 불러다 앉혀놓곤 같이 식사하라는 게 아니겠소.”

이동원은 “닉슨의 ‘1박2일’이 주한미군의 첫 철수를 낳았고, 박 대통령에게 위기의식을 안겨줘 10월유신과 핵개발 등 악수를 두게 했다. 미국과의 불화는 정국 불안을 불러 결국 10·26까지 이어졌다”고 회고했다(『대통령을 그리며』 이동원). 국가 운명을 책임진 최고 지도자에게는 이렇게 단 한 순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윤 대통령은 알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실은 펠로시 의전이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며 “전화 통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주한 미국대사관 관계자를 인용해 “환대가 없어서 매우 불쾌하다”고 보도했다. 미국 국무부의  미첼 리스 전 정책기획실장은 “한국이 미국을 모욕했다”며 “공동의 가치를 수호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세계에 보냈다”고 했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부차관보는 “중국을 달래려는 시도였다 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며 “불행하게도 중국에 한국을 괴롭혀도 된다는 인식만 줄 것”이라고 했다.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보수정권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신하의 나라에는 외교가 없다”는 조선 ‘번신무외교(藩臣無外交)’의 망령이 부활한 것인가. 국빈 방문한 중국에서 혼밥을 먹는 모욕을 당하고도 침묵한 전임 대통령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제는 중국에 당당해져야 한다. 북한 위협이 존재하는 한 한국 외교의 기본은 한·미 동맹이다. 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그래야 중국이 우리를 다시 볼 것이다. 립서비스가 아닌 진짜 상호 존중이 가능해진다. 싱가포르는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의 압박을 받자 “통상국가로서 항행의 자유 원칙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맞섰다. 이런 결기가 필요하다. 펠로시 홀대의 본질은 미국에 대한 모욕이기에 앞서 한국 스스로에 대한 모욕행위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