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현예의 톡톡일본

일본 10대가 "쩔어" 한국말로 외친다…쓰시마섬 특별한 학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한국과 일본의 국경에 있는 섬, 쓰시마(對馬). 부산과는 약 50㎞ 거리지만, 가장 가까운 일본 규슈 후쿠오카(福岡)와는 약 138㎞ 떨어진 한국과 더 가까운 섬이다. 맑은 날이면 한국의 산과 해안, 집까지 볼 수 있을 정도다. 한국인에겐 대마도란 이름으로 익숙한 이곳에 ‘특별한 일’이 매년 봄 벌어진다. 올해로 20년째 이어지고 있는 ‘쓰시마고 한국어 유학’이다. 인구 2만8000여 명에 불과한 이 섬에 있는 공립학교에 일본 전역에서 매년 봄이면 15살 어린 학생들이 집을 떠나 3년간 유학을 오고 있다.

한국어 가르치니 학생들 찾아왔다

쓰시마고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 학생들이 지난 7월 교실에 모여 한국어로 한국어 공부와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쓰시마고 제공 영상 캡처

쓰시마고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 학생들이 지난 7월 교실에 모여 한국어로 한국어 공부와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쓰시마고 제공 영상 캡처

고3인 미야노 사미(宮野砂海·18) 군은 나가사키(長崎)가 고향이다. 유학을 결심하게 된 건 순전히 한국어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가 빅뱅 노래를 들려준 게 계기가 됐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제대로’ 배우고 싶어 한국어를 가르치는 쓰시마고에 진학했다.

지난 1905년에 세워진 나가사키 현립 쓰시마고는 ‘욘사마’ 배용준 씨가 출연한 『겨울연가』 붐이 일던 지난 2003년부터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낙도(落島)인 쓰시마에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공립고교 중 별도 학과를 신설해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은 쓰시마고가 유일하다.

이곳에서 7년째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김경아 씨는 “쓰시마가 한국과 가깝고, 역사·문화적으로도 접점이 많아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특색있는 교육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나가사키현립 쓰시마고가 올해 한국어를 가르친지 20년을 맞았다. 쓰시마고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사진 가운데가 이 학교에서 7년째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경아 교사. 사진 쓰시마고

나가사키현립 쓰시마고가 올해 한국어를 가르친지 20년을 맞았다. 쓰시마고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사진 가운데가 이 학교에서 7년째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경아 교사. 사진 쓰시마고

일본어와 영어·수학 시험에 심사위원 앞에서 발표까지 해야 하는 ‘선발시험’을 거쳐 매년 30여 명의 신입생을 뽑는다. 도쿄(東京)나 요코하마(横浜), 오사카(大阪) 등 일본 전역에서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학생들이 찾아온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선 학생을 배려해 연간 세 차례 집을 왕복하는 항공권과 기숙사비도 지원해준다. 한국어 인기가 높아지면서 3년 전부터는 ‘국제문화교류과’로 승격해 운영하고 있다.

김 교사는 “학생들이 K팝과 드라마를 통해 친근해진 한국어를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의욕이 남다르다”고 했다. 현재 전교생 400여 명 가운데, 77명이 매일 1시간씩 한국어를 배운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 성적도 높아, 가장 높은 급수(6급)를 따는 학생들도 상당하다. 매년 10여 명이 한국 대학에 진학할 정도로 한국 유학생도 많다.

수험생인 미야노 군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대학 입학을 준비 중인데 최근엔 사전 답사 차원에서 서울을 찾아 학교를 둘러봤다. 배우 유승호 씨가 출연한 『복수가 돌아왔다』를 보면서 대사를 따라 하며 한국어를 익혔는데, 지난 3월엔 주일 한국문화원이 개최한 말하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타기도 했다.

일본에서 지난 3월 주일 한국문화원이 개최한 전국 고등학생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은 쓰시마고 마쓰야마 양과 코니시 양. 사진 주일한국문화원

일본에서 지난 3월 주일 한국문화원이 개최한 전국 고등학생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은 쓰시마고 마쓰야마 양과 코니시 양. 사진 주일한국문화원

한국인 관광객 뚝 끊겨 아쉬워

미야노 군은 “한국어로 말하고 싶은데 한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이 없어서 아쉽다”고도 했다. 더러 한국인 관광객이 길을 묻곤 하면 한국어로 길 안내를 해주곤 했는데, 코로나로 관광객이 확 줄면서 기회가 많지 않다고 했다. 코로나 전엔 학교 차원의 관광객 대상 실습 프로젝트도 있었지만 현재는 전무하다. 실제로 쓰시마를 찾는 한국 관광객은 연간 41만 명(지난 2018년 기준)에 달할 정도였지만 요즘엔 코로나로 발길이 뚝 끊긴 상태다.

김 교사는 학생 반응이 좋은 K팝을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 ‘쩔어’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식이다. 김 교사는 “‘쩔어’는 사전엔 없는 단어지만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졸업생들은 한국 관련 기업이나 한국 무역상사나 화장품 회사 등에 취업하고 있다. 그는 “K팝을 계기로 한국어를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이제는 한국 유학을 꿈꾸고,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주일 한국문화원이 일본 도쿄에서 열고 있는 한국어교실인 세종학당 모습. 사진 주일 한국문화원

주일 한국문화원이 일본 도쿄에서 열고 있는 한국어교실인 세종학당 모습. 사진 주일 한국문화원

한국어 공부, 혐한도 반일도 없다

한국어 인기는 일본 곳곳에서 높아지고 있다. 나가사키(長崎)외국어대는 지난 2009년 스페인어 전공을 없애고 한국어 전공을 신설했다. 이곳 박영규 교수는 “20년 전 ‘욘사마’ 열풍 때와 비교하면 최근 한국어 인기 배경엔 K팝 등 다양한 한국문화가 있다”면서 “이 때문에 한국어를 공부하는 세대가 초등학생 수준으로 어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10대부터 자연스럽게 한국문화를 접하고 한국어를 듣기 시작한 학생들이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본에서의 한국어 바람엔 혐한도 반일도 없다”고 지적했다. “한·일 관계 악화는 정치 문제일 뿐 문화적 측면에선 전례 없는 호기를 누리고 있다”는 설명도 했다.

출판회사인 J리서치의 와다 요시히로(和田圭弘)씨도 “일본 내 유명 대형서점 어학서 판매 순위 200위 안에 한국어가 24권이나 들 정도로 어학서 업계에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영어나 중국어처럼 취업을 위해 공부하기보다 한국 드라마나 음악을 접한 소비자들이 취미 차원에서 집에서 홀로 공부하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출판업계에서 한국어 서적 규모도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6일 일본 도쿄 한 대형서점 한국어 교재 코너. 최근 일본에서의 한국어 공부 인기를 반영하듯 영어 교재 다음으로 많은 어학서가 전시돼 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지난 6일 일본 도쿄 한 대형서점 한국어 교재 코너. 최근 일본에서의 한국어 공부 인기를 반영하듯 영어 교재 다음으로 많은 어학서가 전시돼 있다. 도쿄=김현예 특파원

도쿄에서 주일 한국문화원이 열고 있는 ‘세종학당’ 상황도 비슷하다. 코로나로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멀리 떨어진 오키나와(沖縄)나 홋카이도(北海道)에서도 수강생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 7월 기준 전체 수강생은 523명에 달한다.
세종학당 관계자는 “일부 수업의 경우엔 수강 경쟁률이 14대1이 넘어 추첨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전했다.

온라인상에선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독학용’ 콘텐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어 통역사 출신인 유튜버 구라타 토미씨의 콘텐트 중 가장 인기 있는 건 2시간이 넘는 한국어 단어 영상이다. ‘소리’만 나오는 단순 영상인데 누적 조회 수가 130만이 넘었다. 구라타 씨는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잠자기 전에 한국어 소리를 ‘흘려듣기’하는 용도로 이용하면서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쓰시마섬은 어떤 곳?

일본에서도 한국과 가장 가까운 섬이다. 부산에서 약 50㎞ 떨어져 있는데, 배를 이용하면 최대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으며 대마도로 불린다. 산이 많으며 면적은 709.01㎢. 인구는 약 2만8000명이다.
이곳엔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웠던 두 나라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일본측 외교사절로 조선을 다녀간 유학자인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州·1668~1755)는 부산에서 한국어를 배웠다고 전해진다. 그는 쓰시마에 정착했는데 부산에서 익힌 한국어를 기반으로 조선어 입문서 교린수지(交隣須知)를 썼다. 쓰시마에 지금으로 치면 한국어학교인 한어사(韓語司)를 1727년에 열기도 했다. 한어사는 3년 과정으로 이곳에서 배출된 역관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쓰시마섬에 있는 덕혜옹주 결혼기념비. 사진 쓰시마부산사무소 홈페이지

쓰시마섬에 있는 덕혜옹주 결혼기념비. 사진 쓰시마부산사무소 홈페이지

쓰시마는 우리 역사와도 밀접하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조선 해안에서의 왜인들의 약탈이 늘어나자, 세종은 1418년 6월 이종무를 앞세워 대마도 정벌을 하기도 한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선발대가 이곳에서 출발하기도 했고, 조선통신사 일행이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은 곳이 이곳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엔 독립운동가 최익현 선생이 1906년 이곳에 유배됐는데, 이로 인해 쓰시마섬엔 최 선생을 기리는 순국비가 있다.
고종의 딸로 정략결혼을 해야 했던 덕혜옹주(1912∼1989)의 남편 소 다케유키(宗武志)가 쓰시마 출신이다. 이 때문에 쓰시마섬엔 덕혜옹주의 결혼 기념비 등이 남아있다. 한·일 교류도 상당해 400여 명에 달했던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하는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