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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수정의 시선

국군·경찰에 희생됐다 해야 배상하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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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수정
김수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침략 맞선 희생자 국가 보상 안돼  

인민군 피해자도 군·경 희생 신고

진실 규명 아닌 왜곡, 역사 모독

김수정 논설위원

김수정 논설위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정근식)가 한국전쟁 시기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을 한창 조사 중이다. 한 개면 희생자만 133명. 인민군과 좌익 세력에 의해서다. 18명, 17명, 11명, 9명 등 가족 단위로, 교회 신자 35명도 몰살됐다. 위원회에 접수된 전남지역 민간인 피해 사건 5368개 중 하나다.
 해방과 전쟁, 좌·우익은 점령과 후퇴를 반복하며 서로 살상했다. 끔찍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일제 이후 권위주의 시기까지 왜곡·은폐된 사건 진실을 밝혀 과거와 화해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만든 기구다. 진상 규명을 통해 명예회복과 피해구제에 나서는 역할을 한다. 노무현 정부 때 1기(2005~2010년), 문재인 정부 때 2기 위원회가 지난해 1월 출범했다. 여러 사안 중 전쟁 전후 국군·경찰에 의한 불법적 민간인 희생,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적대하는 세력, 즉 북한 인민군과 빨치산 등에 의한 폭력ㆍ학살도 진상 규명한다.

지난 6월 22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열린 진실화해위 조사 개시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정근식 위원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22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열린 진실화해위 조사 개시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정근식 위원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일들이 10여년 이어져 왔다. 1기 위원회에서 진상이 규명된 유족 중 5624명이 개별 민사 소송으로 배상받았다. 희생자 1인당 평균 약 1억5000만 원, 총 7000억원(위원회 추산)이다. 한데 모두 군·경에 의한 피해자다. 정작 군·경을 도와 침략자에 맞서거나 공무원 가족, 기독교인 등 ‘반동분자’로 찍혀 인민군과 빨치산, 지방 좌익 등에 학살된 피해자는 국가 책임이 아니란 이유로 한 건도 배상받지 못했다.
우리 주변엔 좌익 활동을 했거나 월북한 친인척을 둔 집들이 많다. 굴곡진 현대사의 '민족적 비극'이다. 하지만 누가 전쟁을 일으켜 서울 거리에 ‘스탈린 대원수 만세’ 벽보를 붙이고 서울대 병원의 부상 군인과 의사 200명 등 수 백명을 학살(1950년 6월 28일)하며 붉은 통일기를 올렸는지, 누가 이에 맞서 싸워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냈는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국가의 기본이다.

침략 전쟁을 막으러 온 미군과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에 사회적 관심이 쏠린 것도 사실이다. 미군의 ‘노근리’ 오인 사격 사건, 보도연맹 사건 등은 각종 교과서에 실리고 보상과 함께 관련 재단까지 만들어졌지만, 인민군·빨치산에 맞서다 학살된 민간인은 조명조차 되지 않았다. 전남 신안군 임자면에서만 992명이 살해되는 등 세계사에 유례없는 학살이 즐비한데도 말이다.
이처럼 명예회복은커녕 배상도 못 받으니 진실 ‘규명’이 진실 ‘왜곡’ 통로가 되고 있다. 충남 예산의 사례다. 두 가족이 각각 2기 위원회에 규명 신청서를 냈다. A씨. 인민군을 도와 양민 학살에 관여했고 인민군 퇴각 후 치안복구대에 의해 총살됐다. 유족은 이 사실을 적어 “부역 혐의로 희생됐다”고 신청했다. B씨. 결사대를 만들어 인민군의 약탈을 막다 A씨에 의해 두 아들과 함께 학살됐다. 유족은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으로 진상 규명을 요청했다. 판례로만 보면 A씨는 배상받고 B씨 세 부자는 배상받지 못한다. 위원회는 ‘부역 활동’을 이유로 배상이 거부된 사례는 현재까진 찾지 못했다. 교전 중 사망한 빨치산 유족이 '무고한 희생'으로 진상규명을 요청한 사례도 상당수다.
2기 위원회에 “부친이 경찰에 살해됐다”고 신청서를 낸 후손이 있다. 조사하니 명백히 적대 세력에 의한 희생이었다. 또 1기 위원회에 ‘적대세력에 의한 학살’로 규명됐는데 2기 위원회에 군·경에 의한 희생으로 재신청한 사례도 적지 않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군복 입은 사람이 그랬다"고 부연했단다. 이대로라면 침략 세력의 대량학살은 덮어지고 군·경에 의한 학살 전쟁으로 역사가 기록될 수도 있겠다.
최근 충남 홍성의 19명이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자로 규명됐다. 결사대 태극단을 만들어 인민군을 쫓아냈는데 인민군이 재점령하면서 학살된 48명 중 일부다. 배상 가능성은 없다. “마을공동체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레지스탕스이고 국가 유공자 아닙니까. 침략 전범에 의한 희생은 외면하고 항전 과정에서 초래한 희생만 배상하는 건 세계사에 없는 일이죠. 대한민국 역사 정의에 반하는 일입니다." 김광동 위원회 상임위원의 말이다. 국회가 '배보상심의위원회'법을 만들어 전문 기구를 통해 제대로 배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70년 전 가해·피해자가 얽히고설켜 후손들이 아직도 불편한 마음으로 사는 마을도 많다. 잔혹한 전쟁이 남긴 상처다. 침략 세력에 맞서다가, 또는 종교적 이유로, 공권력의 불법 행위로 희생된 이들을 진실하고 균형 있게 평가하고 기리는 것, 역사가 은폐·왜곡되는 것을 막는 것. 치유와 국민통합의 출발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