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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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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K엔터팀 팀장

전영선 K엔터팀 팀장

“우리는 역사 중간의 아이들. 지구를 탐험하기엔 너무 늦었고, 우주를 탐험하기엔 너무 이르지.”

영어권 인터넷 밈(meme), 그러니까 ‘짤’의 대부분이 유통되는 커뮤니트 사이트 레딧에 8년 전 올라와 유명해진 문장이다. 여기에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답변은 다음과 같다. “‘쩌는(dank)’ 밈 탐색엔 딱 좋은 시대에 태어났지.”

한국에선 밈보다 ‘짤방’(짤림방지)과 ‘짤’이 먼저 쓰였다. 밈과 짤을 구분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으나, 함께 써도 대세에 지장 없다. 짤은 온라인 사진 커뮤니티에 글을 올릴 때 사진을 첨부하지 않으면 운영진이 삭제해서 생긴 말이다. 귀여운 동물이나 연예인 사진을 첨부해 짤림을 막던 단순 형태에서 텍스트를 넣거나 움직이는 수준으로 다양하게 진화했다. 해외에서도 진원지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다. 온라인 논쟁이 길어지면 반드시 서로를 나치라고 비난하게 된다는 ‘고드윈의 법칙’을 만든 미국 변호사 마이클 고드윈이 가장 먼저(1994년) 밈 개념을 인터넷에 끌어다 썼다.

문화 유전 설명을 위해 모방(mimesis)과 유전자(gene)를 단어로 조합한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개념이 인터넷 바이럴이라는 의미로 ‘납치된’ 상황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도킨스 본인도 꽤 사랑받는 짤 재료다. 그의 얼굴이 ‘밈을 밈이라고 하는 것이 밈이야’와 같은 문장과 합성돼 온라인을 떠돈다. 어쨌든 밈은 도킨스가 46년 전 쓴 『이기적 유전자』의 핵심 논지보다 유명해졌다.

왜 사람들은 끊임없이 짤을 생산할까. 가장 큰 이유는 큰 노력 없이 내 생각을 불특정 다수에게 ‘감염’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반응이 오면 느끼는 소소한 성취감도 중독적이다.

덕분에 이젠 프로들이 이 세계에 뛰어든다. 짤은 각종 마케팅과 정치 캠페인에 어색한 형태로 등장해 흥행을 꿈꾼다. 최근 몇 개의 억지 짤과 혐오 짤을 보면서 이 문화가 세대를 넘어 유전될지 궁금해졌다. 몇몇 초등학생 부모에게 물었더니 “애들 사이에선 이제 짤을 잘 안 쓴다”는 말이 돌아왔다. 대신 메신저에서 ‘크크루삥뽕’과 같은 외계어를 주고받으며 논다고 한다. 짤의 시대, 그다음은 더욱 해석하기 힘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