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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MBTI 과몰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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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성지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성지원 정치팀 기자

성지원 정치팀 기자

“기자님, 듣고보니 두 분 진짜 비슷해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대선을 치를 때, 한 참모에게 내 MBTI(성격유형테스트) 유형을 밝힌 후 들은 얘기다. 원 장관과 내 MBTI는 ‘자유로운 연예인’이라는 ESFP로 똑같다. 어느 블로그에서 빌려온 ESFP 유형의 특징. ‘인생은 실전. 관종(관심종자). 팔방미인. 핵인싸. 도전정신 강하지만 금방 싫증 냄.’

유튜브에 출연해 ‘국토부 장관이 전세사기 당할 뻔한 썰’을 풀고, 택시대란 해결한다고 새벽에 직접 강남에 택시를 잡으러 나가고. 취미는 현장방문, 특기가 썰풀기인 원 장관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생은 했는데 어째 종종 용두사미인 결론까지 뼈때리는 공감이다. 원 장관, ESFP 완전체다.

MBTI(성격유형테스트) 유형 중 ‘자유로운 연예인’형인 ESFP.

MBTI(성격유형테스트) 유형 중 ‘자유로운 연예인’형인 ESFP.

고백하건대 MBTI 과몰입이 일터까지 침범했다. 취재 중 상대가 왜 이러나 싶을 땐 습관처럼 MBTI 유형이 궁금해진다. 가령, 분명히 잠행 중인데 분노의 순간엔 페이스북 메시지를 몇 건씩 쏟아내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다가 MBTI를 알고 나니 반틈은 이해가 간다. 그는 솔직하고 직설적, 자존심 강함, 토론 좋아한다는 ESTP(모험을 즐기는 사업가)다.

고작 16개로 나뉜 유형 틀에 70억 인간 군상을 끼워 맞추지 말라는 비판도 익히 알고 있다. 상극처럼 보이는 두 정치인이 같은 유형인 걸 보면 그 지적도 일리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의 MBTI 유형은 대범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카리스마형 리더라는 ENFJ(정의로운 사회운동가)로 같다. 대선 때부터 웬만한 사안마다 의견이 갈린 두 사람을 취재하다 보니 같은 유형인 게 의문이 간다. 유 전 의원은 최근 당·정 상황을 겨냥해 페이스북에 ‘그건 니 생각이고’란 제목의 노래를 올렸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 10~13일에 걸쳐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MBTI 검사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35%)은 신뢰한다고 답한 비율(36%)과 비등했다. 특이한 건 20대에서만 MBTI 검사를 신뢰한다는 비율이 52%로 과반이 넘었다는 점이다. MBTI 과몰입이 세대적 특성일 수도 있다.

최근 만난 한 보수 정치인에게 MBTI를 물으려다가 아차 싶었다. “혹시 너무 과몰입 같나요”라며 눈치를 봤더니 그의 대답이 이렇다. “저는 상대를 이해하려고 MBTI를 물어본다. ‘저 사람이 왜 저럴까’ 싶다가도 그걸 알고 나면 ‘아 이런 사고 흐름으로 저렇게 행동하는 거구나’하게 된다.” 갈등 해소의 도구로 MBTI를 쓴다는 얘기다. 자신이 INTP(논리적인 사색가)라고 밝힌 그와 헤어진 뒤 그에게 받은 문자. N(직관형) 유형과 S(감각형) 유형의 대화를 유머코드로 삼은 짧은 만화다. 과몰입러는 어디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