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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골 오싹해지는 테러 영화? 관객에 힐링 주고 싶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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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영화 ‘비상선언’은 150명의 승객을 태운 비행기가 생화학 테러를 당한 뒤 펼쳐지는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쇼박스]

영화 ‘비상선언’은 150명의 승객을 태운 비행기가 생화학 테러를 당한 뒤 펼쳐지는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쇼박스]

“관객들에게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힐링 받는 것 같다는 얘기가 가장 듣고 싶죠.”

‘힐링을 주고 싶다’는 한재림 감독의 바람은 관객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비상선언’을 연출한 한 감독은 개봉을 맞아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재난은 두렵고 힘든 일이지만, 인간의 작은 용기와 성실함이 모인다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담고 싶었다”며 영화의 메시지를 설명했다.

‘비상선언’은 송강호·이병헌·전도연·임시완·김남길 등 충무로 대표 배우들이 총출동한 캐스팅에 더해, 국내 최초 항공재난 영화란 점에서 기대를 받아왔다. 지난해 제74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일찌감치 상영됐지만, 국내 개봉은 코로나19로 인해 수차례 연기되며 관객의 기다림은 길어졌다.

하지만 마침내 개봉한 ‘비상선언’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냉혹한 편에 가깝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박진감이 사라지고, 사회극에 가까운 전개가 장시간 이어지는 데 대한 혹평이 많다. 한 감독은 이에 대해 “전반부의 항공 테러, 스릴러 같은 요소를 기대하셨을 수 있지만, 이 영화를 ‘재난 영화’의 범주에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테러 자체보다 테러가 일어난 이후 재난을 마주한 사람들의 모습에 더 초점을 맞춰달라는 의미다.

한재림 감독

한재림 감독

기존 재난 영화 클리셰와 달리 테러범 류진석(임시완)을 일찍 특정하고, 그에게 뚜렷한 범행 목적을 부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임시완씨가 재난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재난은 언제나 쓰나미처럼 이유 없이 오지 않나”라며 “시완씨가 상징한 재난은 다른 여느 자연재해와 똑같이 아무 이유 없이 왔다 가는 것이었다. 재난 후 남겨진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 것이냐 하는 부분에 좀 더 집중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영화의 중후반부는 재난에 대응하는 여러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채워진다. 어떤 이들은 타인을 의심하고 배제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가족과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연대한다. 한 감독은 “심리적 공포로 사람들의 인간성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러면서도 재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동물이 아닌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연대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0년 전부터 기획한 각본이기에 결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영화가 묘사한 집단 이기주의나 국가 간 봉쇄 조치 등은 실제 코로나19 사태 속 우리 사회와 무서우리만치 닮아있다. 한 감독은 “‘어떻게 이렇게 영화적 상상이 현실이 되지?’라는 기가 막힌 감정도 들었고,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며 “그럼에도 우리가 성실하게 재난을 이겨내는 모습이 내 상상처럼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영화로 관객에게 새로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에 좀 억울한 부분도 있다”면서 “다음 작품을 하게 된다면 정말 (실제에서) 있을 수 없는 일로 하고 싶다”고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다큐멘터리처럼 그리고자 했다”고 할 정도로 사실적인 연출에 중점을 뒀다는 그는 ‘후반부 반전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의도적으로 극적인 반전을 주려고 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인천에서 하와이를 왕복하는 동안 지상에서 너무 많은 사건이 벌어지는 점 등 영화의 현실성을 둘러싼 의구심에 대해서도 “그 시간 안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을 충분히 계산했다”며 “한 해외 기자가 ‘(영화 속 시위대가 준비한) 플래카드를 어떻게 그렇게 빨리 만드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실제 우리나라는 한두 시간이면 제작이 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사실감에 공들인 연출은 항공 액션 장면에서 빛을 발했다. 실제 비행기 부품들로 제작한 세트장을 짐벌(gimbal, 흔들림을 최소화하는 촬영장치)에 장착해, 격하게 흔들리는 기내 모습을 현실감 있게 구현했다. 실제 같은 느낌을 극대화하기 위해 촬영 감독들이 직접 세트에 몸을 묶고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는 ‘핸드헬드’ 기법으로 배우들을 촬영하기도 했다. 한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 디렉팅도 “과장하지 말고, 사실적으로 해달라”는 것에 가장 포인트를 뒀다며 “직업인이기 이전에 그냥 한 인간으로서의 느낌을 보여주길 바랐다”고 했다.

그간 로맨스(‘연애의 목적’)부터 조폭 누아르(‘우아한 세계’), 사극(‘관상’)에 이어 이번 항공재난물까지 매번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 한 감독은 자신을 어떤 감독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냥 호기심이 많은 감독”이라는 답을 내놨다. “자꾸 이것저것 하는 것 같아서 죄송스럽기도 하고, 한 장르만 해야 하나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하나를 하면 다음에는 다른 걸 하고 싶어져요. 그냥 재미있는 걸 계속하고 싶어 하는 감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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